신촌, 2014년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 지정으로 분쟁 시작
상인들 “비슷한 조건으로 장사할 수 있도록 보상돼야”
홍대·이태원 등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거주민 내몰려
세입자 권리보장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시급

홍대, 이태원, 서촌, 삼청동 등 소위 ‘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에는 세입자와 건물주의 분쟁이 따라다닌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도심에 가까운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주거시설이 들어서면서 임대료가 상승해 선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은 건물주의 이익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 문제는 건물주가 이익을 얻기 위해 적절한 보상 없이 임차상인들을 쫓아내는 데 있다.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진행하고 강제집행이 되면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임차상인들은 아무 대책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된다.

<투데이신문>은 임차상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건물주 vs. 세입자 갈등, 해결책은 없나를 기획했다. 1편에서는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물주와 임차상인의 분쟁을 소개하고, 2편에서는 임차상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의 필요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신촌역 3, 4번출구 인근에 위치한 건물주와 분쟁 중인 가게들 ⓒ투데이신문
서울 서대문구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에 위치한 건물주와 분쟁 중인 가게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 장사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지난 3월 28일, 기자는 신촌역 3, 4번 출구 인근의 도시환경정비구역을 찾았다. 신촌역에 인접해있음에도 신촌 특유의 젊고 활기찬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이 곳에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 횡포에 힘없는 임차인 다 죽는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2008년부터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A씨는 “건물주 측에서 4월부터는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호소했다.

상황은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고 있는 다른 2명의 상인들 모두 마찬가지다.

이 곳에서 2007년부터 순대국 장사를 하고 있는 B씨는 “노후 설비도 수리하고 빗물이 새는 것도 고쳐야하는데 쫓겨난다고 생각하니 가게에 투자를 할 수가 없었다”며 “늘 초조함 속에 장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장사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지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대문구는 이 곳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하고 호텔을 신축하기로 했다.

A씨는 “당시 서울시에서 호텔을 지으면 여러 특혜를 준다고 해 건물주가 이곳을 팔려고 했다”며 “2014년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진행했고 이듬해 법원이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3월 12일 건물주의 법률대리인이 강제집행을 시사하는 이주확약서를 내용증명으로 보내 3월 31일까지 이에 서명하지 않으면 4월부터는 강제집행을 하겠다고 했다”며 “그때까지 나갈 경우 보증금에 200만원을 얹어 주고 7월까지는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은 해인 2008년부터 수제비를 팔고 있는 C씨는 “우리가 200만원이 없어 못 나가겠나. 최소한 비슷한 조건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보상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 이전에도 건물주의 갑질이 있었다고 했다. B씨는 “2009년 암에 걸려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했으나 건물주가 설비며 인테리어며 모두 놓고 나가라고 했다”며 “이 때문에 지금까지 8년째 볼모로 잡혀있다”고 억울함을 나타냈다. 건물주가 양도·양수를 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같은 해 비슷한 일을 겪은 C씨도 “남편이 쓰러져 장사를 접으려고 했고 계약자까지 있는 상황이었는데 모두 무산됐다”며 “들어올 땐 내고 들어온 권리금을 받지도 못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건물주가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왼쪽부터) ‘신촌명물순대국’ 사장 B씨, ‘장다리의 하루’ 사장 C씨, ‘닭잡는파로’ 사장 A씨, A씨의 아내 E씨 ⓒ투데이신문
(왼쪽부터) 신촌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장사하고 있는 B씨, C씨, 사장 A씨, A씨의 아내 E씨 ⓒ투데이신문

서대문구 “계약 당사자 간의 일…개입 어려워”

2014년 건물주의 명도소송이 진행되던 중 A씨 등은 ‘아무런 대책 없이 구역으로 지정해 내쫓기게 됐다’며 이 곳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한 서대문구에 항의를 했다. 이에 서대문구는 계약이 되면 건물주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A씨는 “미국에 있는 건물주는 협의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당시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안다”면서도 “담당자가 바뀌고 자료를 찾을 수 없어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주와 세입자의 계약관계 문제이기 때문에 구에서 개입할 권한이 없다”며 “세입자들이 요청한다면 자리를 마련하는 정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나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A씨 등에 따르면 건물주 측은 지난 3일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한 상태다. 상인들은 강제집행을 막으면서 건물주와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상가‘임대인’보호법”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과 같은 상황에서 세입자들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권리금을 내고 가게를 얻어 열심히 영업을 하면서 건물 가치를 올리는데 일조했음에도 임대인이 매매나 재건축을 이유로 세입자들을 내보낼 때는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모든 이익을 건물주가 고스란히 가져간다는 것이다.

세입자들이 요구하는 적절한 보상은 이뤄질 수 있을까. 세입자들이 기댈 곳은 건물주와의 협상뿐이다. 건물주의 ‘선심’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대입구역 9번출구 인근 홍대거리 ⓒ투데이신문
홍대입구역 9번출구 인근 홍대거리 ⓒ투데이신문

‘핫 플레이스’마다 따라붙는 젠트리피케이션

이 같은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촌, 홍대, 경리단길, 서촌 등 소위 ‘핫 플레이스’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는 항상 젠트리피케이션이 따라다닌다.

지난 2016년 8월 서울시가 발표한 ‘젠트리피케이션 데이터 분석결과 보고’에 따르면 홍대(연남·상수)와 이태원(경리단길·이태원역 인근)의 요식업 입주 건물 외지인 소유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상수의 경우 2006년 49%이던 외지인 건물주가 2015년 66%, 연남동은 2001년 38%에서 2015년 60%로 늘어났다.

또 이 지역에서 주거용 건물을 근린생활시설(슈퍼마켓·대중음식점 등 주민 생활에 편의를 줄 수 있는 시설물)로 용도변경 하는 등 건축행위(신·증·개축/대수선) 건수가 증가했다.

이 지역의 음식점 개업신고 수는 2012년 경리단길 82건, 이태원 165건, 상수 170건, 연남 58건이던 것이 2015년 경리단길 190건(132% 증가), 이태원 307건(86% 증가), 상수 344건(102% 증가), 연남 171건(195%)으로 급증했다.

이 보고서는 부동산거래에 이은 음식점 진입, 건축행위의 동반으로 공간의 성격이 변화해 젠트리피케이션 초기단계인 ‘거주민의 내몰림’ 현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외지인이 임대업을 목적으로 주거용 건물을 사들여 용도를 변경하고 음식점이 증가해 2030 주민이 빠르게 감소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 상권을 형성한 상인들의 기여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건물주의 재산권 행사가 세입자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 이제는 건물주와 세입자가 상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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