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가 토론중심 공공상식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상식의 개념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상식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을까?’를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학생은 변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어떤 학생은 변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필자가 한 답은 둘 다였다. 특정 분야에 국한해서 상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상식은 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천동설(天動說)과 지동설(地動說)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한 이후 지동설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종교재판 등을 통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이 정설이 되었고, 그렇게 지동설은 상식이 되었다. 지금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상식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우지 않고도, 혹은 약간의 교육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상식은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된다는 것, 불은 빛과 열을 낸다는 것,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 등일 것이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되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거나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바뀌는 사례도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페스트가 인간에 대한 신의 형벌인 것으로 착각하고 무차별한 마녀사냥을 하던 것에서,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임을 알게 되면서 마녀사냥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성의 생리,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과학기술과 인권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성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좋은 예이다.

아는 것라는 말을 한자로 바꾸면 지식(知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라는 것과 ()”이라는 말이 둘 다 알다라는 뜻이지만,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이 팟캐스트 전우용과 이박사의 대한민국근현대사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는 화살을 뜻하는 ()”와 입을 뜻하는 ()”라는 글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이것은 화살을 입에 갖다 대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상상해보자. 화살을 입에 갖다 대면 위험하다는 것을 배워서 아는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아는 것일까? 아마도 배우지 않고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일 것이다. 라는 한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상식 가운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의 경우 말씀 언(), 소리 음(), 창 과() 등 세 개의 한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이것은 말을 하고, 듣고, 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아는 것이라는 의미다. 즉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아는 것이라는 뜻이다. “특정분야에 국한된 변할 수 있는 상식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식이 없는 사람을 일컬어 무식(無識)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식한 것은 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배우려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그 결과 무식한 사람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의미를 고려했을 때 무지(無知)”는 죄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을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에서 시작된 행동은 처벌 받아야 되는 죄가 된다.

20184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 된 날이었다. 아마 세월호 참사는 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더욱 후벼 파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이 참사의 이유를 밝히라면서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던 현장 옆에서, 소위 폭식투쟁을 벌인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 유저들의 그야말로 무지한 행태였다. 이번 주 강의 내내 지식과 상식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솟아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참는 것이 큰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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