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경영 조씨 3남매, 갑질 도돌이표
창업이념 배치, 견제없는 권력 승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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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까도까도 끝이 없다. 한진그룹 오너일가 갑질 이야기다. 한진 일가 막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오빠 조원태와 언니 조현아의 과거 사건이 다시 소환되는가 하면 나아가 어머니 이명희 여사와 그룹 총수인 아버지 조양호 회장까지 일가 전체로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창립 73년 인화경영을 강조했던 한진그룹이 오너일가의 반사회적 행태로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트럭 1대 신화, 퇴색된 창업이념

한진그룹은 지난 1945년 11월 설립된 한진상사를 뿌리로 하고 있다. 고(故) 조중훈 회장이 당시 25세 나이에 트럭 1대를 가지고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를 설립하면서 한진가의 경영도 시작됐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 미8군의 군수물자 수송업무를 맡으면서 성장가도를 달리다 1960년 한국항공을 설립해 비행기 대절사업을 시작하면서 항공업의 물꼬를 텄다. 이후 월남전의 미군 군수물자 수송사업에 뛰어들면서 고속 성장 해나가며 1960년대 후반부터 동양화재해상보험 인수, 한국공항과 한일개발 설립, 인하학원 및 인하공대, 국영 대한항공공사(현재 대한항공)를 인수하면서 지금의 한진그룹 기틀이 마련된다.

창업주 조중훈 회장은 2002년 82세 나이로 별세하기 전까지 한진그룹을 우리나라 물류 대표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중훈 회장은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창업이념으로 임직원들이 하나로 뭉친 인화경영으로 한민족의 전진을 뜻하는 ‘한진(韓進)’ 그룹을 만들었다.

지금의 한진그룹은 지주회사 한진칼을 중심으로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 (주)한진, 한진해운, 정석기업, 칼호텔네트워크 등 28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4위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뉴시스
(왼쪽부터)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뉴시스

 

삼남매 폭주, 갑질 가족 오명

한진그룹의 경영은 1990년대 들어 창업주 조중훈 회장에서 대한항공을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 이어졌다. 차남인 조남호 회장은 한진중공업을 맡고 셋째인 한진해운은 고(故) 조수호 회장이, 지금의 메리츠금융지주가 된 한진투자증권은 넷째 조정호 회장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진그룹의 경영은 다시 조양호 회장에게서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3자녀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화의 경영 체제가 허물어지고 있다.

둘째이자 한진가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자랑한다. 조 사장은 사실상 한진그룹 후계자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05년 승용차 운전 중 70대 할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 지난 2012년 자신이 이사로 몸담고 있는 인하대학교 안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그래, 개XX, 내가 조원태다. 어쩌라고?”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은 세간에 크게 회자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녀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의 ‘땅콩회항 사태’가 벌어졌다. 조 사장은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2014년 12월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을 서비스 매뉴얼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사무장과 여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난동을 부렸다. 결국 화를 못참고 비행기를 회항 시켜 승무원을 내리게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또 출산을 2개월을 앞두고 미국 지사로 전근발령을 받기도 해 원정출산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땅콩회항 사태’는 재벌 3세의 대표적인 갑질로 인식됐고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주목받았다.

그리고 막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 대행사 직원에게 물을 뿌리면서 다시 ‘갑질’ 사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언니인 조현아 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당시 “복수할거야”라는 문자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던 조 전무는 최근 의뢰한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행사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급기야 물을 뿌리고 물컵을 던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조 전무는 과거에도 방송을 통해 대한항공 승무원에게 얼굴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도록 시켰다는 폭로가 공개되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조현민 전무의 이번 사건은 한진 오너일가 갑질 행태를 재조명하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결국 안팎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한진 오너일가의 갑질 폭로가 이어졌고 3남매를 넘어 논란은 현 경영진인 부모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세 남매의 어머니이자 조양호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에서 2013년 실시된 조양호 한진 그룹 회장의 자택 리모델링 공사에서 이 이사장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작업자들에게 욕을 하는 목소리가 공개됐다. 해당 여성은 작업자들을 향해 “세트로 다 잘라버려야 해. 잘라. 아우 저 거지같은 놈. 이 XX야. 저 XX놈의 XX. 나가”라고 고함과 욕설을 퍼붙고 있었다.

이 이사장이 작업자를 무릎 꿇리고 따귀를 때리는 등 폭행을 가했다는 증언도 일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얼마 안 있어 큰 딸 조현아씨가 대표로 있는 인천 하얏트 호텔 직원이 이 씨를 몰라보고 할머니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는 4년 전 일화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갑질 폭로에 조양호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큰 목소리로 인사한 직원을 자신을 창피하게 했다는 이유로 면직 시켰다는 사례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여기에 총수 일가 여성들이 해외에 나갈 때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쇼핑을 즐기고 우리나라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 대한항공 직원들을 동원했다는 내부 폭로까지 이어졌다.

한진 일가의 주체할 수 없는 갑질 폭로가 이어지면서 견제없이 세습된 우리 재벌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조씨 일가의 개인적 일탈에서 그치지 않고 기업에도 막대한 피해 끼치고 있다. 조 전무의 갑질 논란 이후 한진그룹은 상장사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가총액만 총 3000억원 이상 증발했다. 별다른 악재가 없었던 만큼 명백한 ‘오너리스크’에 의한 손실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뉴시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뉴시스

무견제‧무검증 세습, 되풀이되는 갑질

조 전무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커지면서 대한항공 국적기 자격박탈과 조 전무의 경영 사퇴 요구도 커졌다.

경찰도 대한항공과 피해 광고대행사의 압수수색에 나서고 조 전무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미국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조 전무의 국적항공사의 경영 자격을 두고 전면적인 조사에 나섰다.

정부와 사정기관까지 나서고 있지만 사회적 공분에 부합할 만한 결과로 도출될지는 회의적이다.

만약 조 전무가 사람이 없는 곳에 물컵을 던졌다고 결정된다면 피해자와 합의할 경우 처벌키도 어렵다. 컵이 사람을 향했다면 합의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한 특수폭행에 해당되지만 회의 참석자의 진술에 기반해 혐의를 가려야하는 상황에서 진술도 엇갈리고 있어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일각에선 벌써부터 오너 일가의 갑질 행위 이후 불기소 처분되는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과거 조현아 사장도 ‘땅콩회항 사태’로 재판대에 올랐지만 쟁점이었던 항로 변경죄가 무죄가 되면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대한항공 부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지만 지난달 보란 듯이 한진칼의 자회사인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이번에도 파문이 일자 대한항공은 조 전무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본사 대기 발령 조치했지만 다시 조현아 사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슷한 물의를 빚었던 장남인 조원태 사장은 아무런 제재 없이 현재 사실상 그룹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서 있다.

조 전무의 적법한 법적 처벌을 위해선 피해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을에게 이 같은 용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전례에 비춰보면 욕심에 가깝다. 조현아 땅공사태 당시 나섰던 박창진 사무장은 용기 있는 행동 이후 보상은커녕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고 회사와 소송전을 벌이는 등 오랫동안 고충을 겪는 모습을 익히 잘 봐왔다.

사실상 공개적인 을의 반격을 기대키 힘든 구조인 셈이다. 정작 피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광고대행사 또한 광고주라는 관계 때문에 쉽게 입을 열기 힘들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게다가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있는 내부 폭로 또한 이름을 가린 채 겨우 목소리를 내는게 현실이다.

회자되고 있는 조 전무의 갑질 사태와 조현아 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창업주의 손녀이자 조양호 회장의 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분과 직책 또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주어진 것이다.

주식회사 대한항공은 조씨일가의 주식 지분율이 33.34%, 지주사인 한진칼은 28.96%에 불과하다. 최대주주로서 사내 등기이사에 올라 경영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다. 하지만 능력과 인성 등이 증명되지 않은 채 세습되는 재벌 경영 풍토가 이 같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당장 대주주를 견제해야 하는 이사회가 거수기 노릇에 그치고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영 문화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지난 17일 “오너의 잘못으로 주가가 하락해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달라”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그 다음날에도 “국민연금공단이 주주총회를 개최해 대한항공 경영진을 교체하라”는 청원과 “불법을 자행한 대주주의 경영 참여 제한 법안을 마련하라”는 등의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법 개정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비례대표)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대한항공 임원 복귀를 막는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채 의원은 항공안전법·항공보안법 등 항공사 업무와 직접 관련된 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았을 경우 집행종료(또는 면제)일로부터 5년간 항공사의 임원이 될 수 없도록 임원의 결격사유를 강화하는 한편, 결격사유를 판단할 때 집행임원, 업무집행지시자 등 미등기임원도 포함하도록 하는 ‘항공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채 의원은 ‘항공사업법’ 외에도 근본적인 제도개선 차원에서 ▲임원의 범죄에 대한 시장 정보제공을 강화하고 ▲불법의 정도가 심각한 경우에는 아예 임원 자격을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을 추가로 준비 중이다.

채 의원은 “임원이 업무와 관련해서 또는 회사 직원들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면 임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상식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당연한 상식을 법률로 강제해야만 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며 “그러나 최근 조현민 전무의 갑질 논란과 특수폭행 혐의를 볼 때, 최소한 한진그룹과 조양호 일가 스스로는 반성과 자정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불법행위자의 경영참여를 통제하는 <조현아법>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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