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정상회담이라는 한계 때문에 연속성 잃어
3차 남북정상회담은 ‘상시화’, 수시로 만남 가져야

지난 2000년 6월 13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 2000년 6월 13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 2007년 이후 11년만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7일 열린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유화 무드로 바뀌었고 정상회담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후 북미정상회담이 5월말로 예정된 상황에서 앞선 2번의 정상회담과는 다른 무게감을 갖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결과가 북미정상회담의 성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제 등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 이번 회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1~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와 향후 전망에 대해 4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앞선 1·2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는 27일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1차·2차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 각각 열린 1·2차 남북정상회담은 그 나름 의의와 한계를 갖고 있다.

만남 자체가 의미…김대중-김정일 만남

1차 남북정상회담은 흔히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불린다. 2000년 6월 13~15일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가진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이다. 마지막 날인 15일 양 정상은 6.15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이는 2000년 세계 10대 뉴스 중에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주목도가 높았던 이슈였다.

1차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많은 결실을 맺었다.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및 남북 간 민간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의의는 역시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두 정상이 만났다는 점이다. 1차 정상회담이 이뤄진 이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때문이었고, 이에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한계 역시 분명 존재했다. 우선 2000년 정상회담 개최 발표 전에 현대그룹이 북한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대북송금특검이 도입됐다. 이는 동교동계와 문재인 현 대통령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계기가 됐고, 오늘날까지 동교동계와 문 대통령은 화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열린우리당 분당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까지 이어지며 양측의 골은 깊어졌다.

정치적으로 이런 한계가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개성공단 가동 등 활발한 남북교류가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1차 정상회담은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차 정상회담은 그동안 서로에게 총질을 했던 남북한이 평양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논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를 갖는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성명은 6.15 남북공동행사로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07년 10월 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처음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노무현-김정일 만남, 정권교체로 이행 못한 결과들

다음으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4일까지 평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진행된 회담이며, 10.4 남북정상회담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회담의 결과로 남북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한반도 종전선언을 이때 이후 발표하려고 했지만 북한의 도발과 우리 측의 정권 교체가 이어지면서 무산됐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상당히 진전된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당시 회담장에서 상당한 결과물이 나오는 대화들이 오갔다는 것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을 통해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넘어 해주공단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에서는 해주에는 군대가 주둔해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가 오후 회담에서 해주공단 제안을 승낙했다. 만약 이대로 해주공단이 실천됐다면 북한의 군사력은 해주 이북으로 물러나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2차 남북정상회담도 1차와 마찬가지로 임기 말에 이뤄졌고, 뒤이은 정권교체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

이어 정권교체 이후 2차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파문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서해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은 정문헌 의원을 고발했으나 대선 이후 검찰은 정문헌 의원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그 이후 2013년 6월 새누리당 정보위 위원들은 국정원에서 받은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국정원을 비난하고, 열람 행위에 대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및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대화록 열람에 대해 공방이 벌어진 가운데 국정원이 갑작스럽게 회의록 전문을 공개했다. 이런 가운데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은 김무성 의원은 대선 유세 연설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발언한 내용을 공개했는데, 이 내용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과 완전히 일치했다. 이에 김 의원은 시중에 돌고 있는 지라시(사설정보지)의 내용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3번째 남북정상회담, 문재인-김정은 만남은

이처럼 2차 남북정상회담은 그 결실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대화록 공개로 인한 정치적 공방만 벌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와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1·2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은 사라졌다.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1·2차 남북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2차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들은 곧 이은 정권교체로 사실상 폐기돼버렸다. 그 이유는 1·2차 모두 임기 말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처럼 임기 초에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면 지금쯤 한반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이처럼 1·2차 남북정상회담만 살펴봐도 남북관계 회복과 관련해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그 후속대책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도출된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남북 모두가 힘을 합쳐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최초’라는, 2차 남북정상회담은 ‘정례화’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아마도 3차 남북정상회담은 ‘상시화’라는 타이틀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정상이 이제는 수시로 만나 대화를 나눠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3차 남북정상회담은 정상회담의 상시화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한번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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