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에 빠진 대한민국①] 한국 대중문화 발전의 일등공신은 ‘빠순이’
[팬덤에 빠진 대한민국①] 한국 대중문화 발전의 일등공신은 ‘빠순이’
  • 전소영 기자
  • 승인 2018.05.12 11:2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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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문화의 시초는 조용필 ‘오빠부대’
1세대 아이돌 등장으로 본격화된 팬덤
인터넷 발전으로 진화한 팬덤 활동
대중문화개혁의 중심이 된 빠순이들

TV 속에 등장하는 화려한 스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우리는 그 스타의 ‘팬(fan)’이 된다. 과거에는 방송을 통해 스타를 보는 것에 만족했다면 이제는 팬 한 명 한 명이 모여 ‘팬덤(fandom)’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스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팬덤은 더 이상 단순히 특정 스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맞는 빠른 변화 양상을 보이며 우리 사회의 문화 중 하나로 정착했다. <투데이신문>은 ‘팬덤에 빠진 대한민국’ 시리즈를 통해 팬덤 문화가 우리 사회 다방면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룹 H.O.Tⓒ뉴시스
그룹 H.O.T.ⓒ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1980년대 국민가수 조용필,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H.O.T.·젝스키스·신화·god, 2000년대 동방신기·슈퍼주니어·빅뱅까지. 이들을 가요계 정상으로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

수려한 외모? 뛰어난 가창력? 글쎄, 스타가 가진 능력을 알아봐 주고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팬덤(fandom)’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팬덤은 열광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fanatic’의 ‘fan’과 ‘영지(領地) 또는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접미사 ‘dom’의 합성어로 특정한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몰입해 그 속에 빠져든 집단을 의미한다.

과거 팬덤은 특정 스타를 좋아하는 10대 소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소위 ‘빠순이(모든 일을 제쳐두고 스타를 맹목적으로 응원하는 여성들을 일컫는 말)’에 불과했으며 과도한 스타 추종으로 사리분별 못하는 문제집단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짙었다. 하지만 이제는 활동 반경과 방식의 변화로 한국 사회 대중문화를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빠순이가 대중문화개혁의 주축이 되기까지 한국의 팬덤 문화는 어떤 변화 과정을 겪어왔을까.

지난 2013년 4월 10년 만에 새로운 앨범 '헬로(Hello)'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의 쇼케이스 현장 ⓒ뉴시스
지난 2013년 4월 10년 만에 새로운 앨범 '헬로(Hello)'를 발표한 가수 조용필의 쇼케이스 현장 ⓒ뉴시스

1세대서 3세대까지…팬덤 문화의 변천사

한국에서 팬덤은 주로 연예인, 특히 아이돌 스타를 중심으로 형성돼있다. 한국 팬덤의 시초는 가수 조용필의 ‘오빠부대’다. 물론 조용필 이전에도  나훈아, 남진 등 인기 가수들의 팬 집단은 존재했지만 체계적이고 큰 규모의 팬덤 층이 형성된 것은 오빠부대가 최초라고 익히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팬덤의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H.O.T.·젝스키스·신화·god 등 1세대 아이돌 스타의 등장 이후 조직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팬덤의 개념이 대중화됐다. 이 같은 변화는 팬덤이 하나의 문화로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H.O.T.와 젝스키스 등 핵심 1세대 아이돌 스타들이 돌연 해체되면서 팬덤도 정체기를 맞았다. 그러다 2000년대 동방신기·슈퍼주니어·빅뱅 등 2세대 아이돌 스타의 등장과 함께 팸덤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당시는 팬덤 문화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시점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이전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는 지지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이후에는 스타 보호 및 변호, 성공을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서포터로서의 역할로 확대됐다. 또한 한국을 넘어서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팬덤의 범위가 확대됐고 이는 한류열풍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Mnet ‘프로듀스 101’, ‘프로듀스 48’, KBS2 ‘더 유닛’ 등 아이돌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의 데뷔를 위해 모바일과 온라인 투표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등 스타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팬덤이 스타를 만드는 시대가 도래했다.

‘팬질’도 진화한다

수년 전 팬덤 활동을 했던 이들 가운데는 “요즘 애들은 팬질(팬으로서 적극적인 활동) 편하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팬 활동 형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용필의 오빠부대의 팬질이 음반 구매와 콘서트 티켓 예매가 최선이었다면 1990년대에 접어들며 지금의 팬질 문화가 본격화됐다. 매스미디어 콘텐츠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팬덤 문화가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각 지역의 특정 은행에서만 판매됐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은행 앞에서 대기했으며, 음반이 발매되는 날에는 미리 예약해둔 앨범을 받기 위해 레코드점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 또 TV 재방송을 마음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해 소중히 간직하기도 했으며, 1년에 한 번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대규모 콘서트와 시상식에는 스타를 상징하는 색의 우비를 입고 풍선을 흔들며 현장지원도 불살랐다.

지금의 팬질 문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팬덤 활동도 보다 다양하고 편리해졌다. 굳이 레코드점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쇼핑으로 앨범을 구매할 수 있고 음원사이트를 통해 음원을 다운로드해 MP3에 넣어 듣기도 했다. 또 콘서트 티켓 역시 인터넷 예매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우비와 풍선에 불과했던 굿즈도 티셔츠, 야광 머리띠, 응원봉 등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편화와 SNS의 활성화로 방송 외에 스타들의 사생활까지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사진 출처 = tvN ‘응답하라 1997’ 홈페이지 캡처>

스타를 향한 어긋난 팬심

스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똑같겠지만 도 넘은 사랑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는 스타의 번호를 알아내 연락하거나 집이나 숙소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고 생활공간에 침입해 숨어있기도 한다. 이외에도 비공개 스케줄 알아내 따라다니기, 스타와 같은 비행기 예약해서 사진 찍기, 물건에 몰래카메라 달아 선물하기 등 지나친 사생활 침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밤낮없이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는 극성팬들을 ‘사생’이라 칭하는데 최근 범죄로 인식될 만큼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015년 그룹 EXO의 멤버 찬열은 자신의 SNS에 중국 고속도로에서 사생팬이 탄 20여 대의 차량이 차선을 바꿔가며 길을 막아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험을 밝혔다. 또 지난 2월 워너원의 소속사 YMC엔터테인먼트 측은 개인정보를 알아낸 사생팬들의 전화 시도, 차량용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해 비공개 스케줄에도 찾아오는 행동 등으로 워너원 멤버들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생을 넘어서 목숨까지 위협하는 테러협박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온라인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는 그룹 트와이스를 향해 ‘트와이스가 우리나라를 버렸다. 일본에서 돈번다. 두 번 다신 한국에 오지 마라. 공항에서 염산 10L가 대기 중이다’라는 내용의 글과 사진이 올라온 바 있다. 또 그룹 에이핑크는 지난해 6월부터 행사장마다 폭발물 테러를 하겠다는 협박을 수차례 받았다.

김정원 음악인류학 박사는 사생이 스타를 하나의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어긋난 팬심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사생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는 그들을 팬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팬덤이 팬 활동, 정체성 등의 모든 의미를 아우르기 때문에 사생도 팬덤으로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왜곡된 다른 형태의 팬덤 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집, 숙소 앞에서 스타를 기다리는 사생팬들은 예전부터 있었다. 개인의 공간에 침범해 물건을 훔치거나 접촉을 시도하는 등의 악질 사생이 늘어난 이유는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라며 “방송 외의 스타의 사적인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많이 보여지다보니 사생활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사생은 스타를 상품으로 보는 시각”이라며 “스타를 돈 주고 구매하는 상품, 때문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부·대중문화개혁 중심에 선 빠순이들

한편에선 바람직한 팬덤의 모습이 곧 스타 이미지가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팬덤 자체적으로 ‘성숙한 팬 문화’를 정착해나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10대 소녀들이 부모님들이 주신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스타를 위한 고가의 선물을 해 많은 비난을 받아 온 ‘조공문화’는 이제 스타의 이름으로 성금, 쌀 화환, 숲 조성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 및 봉사와 사회공헌 활동 등으로 변화했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팬덤 ‘서태지 마니아’는 데뷔 20주년을 맞은 2012년 기금을 모아 환경파괴로 훼손된 브라질 열대우림에 ‘서태지 숲’을 조성했으며 2016년 서태지의 45번째 생일을 기념해 개최한 굿즈전에서 모인 수익금 1300여만원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했다.

또 그룹 ‘EXO’ 팬들은 데뷔 3주년을 맞아 월세와 운영비로 어려움을 겪었던 부산 위안부 역사관을 위한 후원을 진행했다. 또 멤버 디오와 카이의 생일을 맞아 디오의 팬덤 ‘리플랙션’에서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 건립을 위한 후원금으로 112만원을 기부하고 팬 페이지 ‘Waning Gibbous 112%’에서는 밥상공동체 복지 재단에 사랑의 연탄 112개를 기부했다.

대중문화개혁의 중심에도 팬덤이 있었다. 2001년 문화연대가 스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저항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 운동’을 벌일 당시 조용필, 서태지와 아이들 등 여러 팬덤 공동체가 주축이 돼 큰 힘을 보탰다.

또 JYJ 팬덤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불공정 계약을 적극 고발했고 이후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약상의 수익 분배, 인권 문제 등을 고려한 표준 전속 계약서를 내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타 개인에게만 집중하던 팬덤 문화가 그 주변과 사회로 활동 반경이 확대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김 박사는 이 같은 사회 참여 활동이 팬덤이 갖는 가장 큰 순기능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은 대표적인 팬덤 문화의 순기능”이라며 “가령 콘서트 전후에 팬들이 모은 돈으로 구호물품을 구입해 기부하고, 이런 활동들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팬덤 사이에선는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줄 서서 노래 부르는 일 등이 집회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다’고 말이 나오기도 했다”면서 “단순히 생산과 소비에서 끝나지 않고 기부 등과 같은 사회참여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은 매우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룹 젝스키스 단독 콘서트 ‘YELLOW NOTE’ ⓒ뉴시스
그룹 젝스키스 단독 콘서트 ‘YELLOW NOTE’ ⓒ뉴시스

대중문화와 팬덤, ‘불가분’ 관계

김정원 박사는 팬덤 활동 방식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매체의 발전’이라고 답을 내렸다.

김 박사는 “인터넷 문화의 발전, 특히 SNS의 발달로 개인 미디어 시대가 됐다”며 “과거 공식 팬클럽이라는 허브를 통해 이뤄졌던 활동들이 이제는 개인적인 인터넷 공간을 통해 스타와 관련한 콘텐츠를 올리고 공유하는 활동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팬덤의 역할에 대해 “대중문화 생산자들이 팬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고 스타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스타에 대한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재미없거나 잘못된 활동은 포기하는 형태로 팬덤 문화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는 SNS의 발달이 팬덤 문화 발전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원로 스타들이 활동할 때도 팬덤 문화는 존재했다. 다만 이제는 그 규모가 훨씬 커졌고 단순히 스타를 숭배하는 것이 아닌 팬들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팬덤 문화 발전에 대해 “SNS가 발달의 영향이 크다”면서 “팬덤 문화의 중심인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SNS에 노출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팬덤 문화 형성이 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사회에서 팬덤 문화가 없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다만 (팬덤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팬덤과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가 문제를 공론화하고 균형을 맞춰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