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탠디 하청업체 박완규씨
본사 앞 20일째 집회 이어가
8년째 동결된 공임 정상화 요구
하청물량 때문에 항의 못 해
직접고용해야 근본적 해결될 것

탠디의
▲ 지난 25일 오전 탠디 하청업체 제화공 박완규씨가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최저임금 7530원의 시대다. 그런데 탠디에 구두를 공급하는 하청업체 제화공들은 구두 한 켤레를 만들면 6500원을 받는다. 8년째 동결된 금액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매년 임금이 깎이고 있는 셈이다.  

탠디의 5개 하청업체 제화공 100여명은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 앞에서 20일째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공임의 정상화, 그리고 직접고용이다. 

하지만 탠디는 집회 초기 한 차례의 대화 시도 외에 대응하지 않았으며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가한 제화공들은 경력 30년 이상 베테랑 기술자들로, 50대 이상 장년층이 대다수다. 이들이 하루 15~16시간을 꼬박 일하고 손에 쥐는 건 시급 1만원 수준이다. 탠디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화공들은 다른 수제화브랜드의 실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5일 32년 경력의 제화공 박완규씨(50)를 만났다. 박씨는 제화업계의 기형적인 하도급 구조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본사가 작업 물량을 배정하기 때문에 하청업체들은 불합리한 상황에 저항하지 못한 채 본사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탠디 하청업체 제화공 박완규씨가 굳은살이 박힌 손을 보여주고 있다.
▲ 지난 25일 박완규씨가 탠디 본사 주변 카페에서 굳은살이 박힌 손을 보여주고 있다 ⓒ투데이신문

하청업체 소속 개인사업자

Q. 제화공으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됐나.

올해로 32년째 구두를 만들고 있다. 구두 밑창을 만드는 저부 기술자다. 여러 업체를 거쳐 지금은 탠디의 하청업체인 대화기업에서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Q. 업체 직원인데 개인사업자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소사장제를 의미한다. 우리는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노동자로 고용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제화공 개인을 사업자로 등록해 소사장으로 만들었다. 말이 좋아 사장이지 4대보험, 퇴직금 등 노동자로서 보호는 못받고 세금 부담만 떠안고 있다. 게다가 탠디 외에 다른 업체에는 물건을 공급할 수 없다. 

Q. 이런 불합리한 고용 형태는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

탠디는 90년대 백화점에 입점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시기 신용카드 사용량이 늘면서 세금 문제가 화두가 됐다. 현금 결제가 주를 이뤘던 과거에는 손쉽게 탈세를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 소사장제가 세금 부담을 떠넘기는 편법으로 등장했다. 업체에서 일괄적으로 제화공들을 사업자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았다. 

Q. 8년 동안이나 공임이 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인상 시도는 없었나.

이전에도 문제의식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은 처음이다. 탠디 본사에서 작업 물량을 배정하다 보니 불합리한 상황이 있어도 항의하기 어려운 구조다. 본사에 밉보이면 일거리가 줄어든다. 하청업체가 여러 곳이라 경쟁이 치열하다. 만약 본사에서 월급제였다면 이렇게 열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Q. 할당량을 정해놓는 ‘개수임금제’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문제다. 작업 효율을 핑계로 하루 할당량만 소화하면 된다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은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한다. 억지로 일을 시키는 사람이 없는데도 물량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꼭두새벽에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고 점심시간은 5분도 안 된다. 

Q. 월급제를 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월급제로 바뀌면 임금 협상, 처우 개선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본사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에 금강, 에스콰이어, 엘칸토 등에서 월급제를 도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폐지됐다. 작업 물량이 많은 성수기 때는 월급을 주다가 일감이 적은 비수기가 되자 다시 개수임금제로 돌아갔다. 본사가 조금의 이득이라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다.

▲ 지난 25일 오전 민주노총 서울일반노동조합 제화지부(지부장 정기만) 소속 5개 하청 업체의 제화공 80여명이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투데이신문 

8년째 동결된 공임

Q. 공임 2000원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요구하는 인상 폭이 적당하다고 보는가.

지난 8년간 물가는 매년 올랐다. 그런데 공임은 사실상 역행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공임의 정상화다. 집회에 나선 제화공들은 경력이 30~40년인 기술자들이다. 최저임금을 고려해도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Q. 다른 업체들의 실정은 어떤가.

비슷하거나 더 나쁘다. 일례로 M사는 한 켤레당 공임으로 6000원을 준다. 그런데 물량의 70%는 저단가 제품이라는 명목으로 5300원을 준다. 공임을 적게 주기 위해 꾸며낸 말이다. 성수동에서 자체브랜드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있다. 이 업체들은 공임 7000원을 준다. 다만 유명 브랜드에 비해 물량이 적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 집회에는 탠디의 5개 하청업체 제화공만 참여했지만 다른 업체 제화공도 모두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여러 곳에서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지지와 지원을 보내주고 있다.

Q. 몇 년 전 특수공임도 폐지됐다고 들었다.

특수공임은 구두 앞코에 쇠로 된 장식을 대는 등의 까다로운 작업을 해야 할 때 추가로 받는 공임이다. 일반 디자인보다 작업 소요가 많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게다가 소비자가 신다가 밑창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큰데, 그러면 환불 등의 처리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돌아온다. 특수공임은 못 받고 책임만 떠안고 있다.

Q. 공임과 관련된 다른 문제는 없는가.

작업지시서에 따라 같은 신발에도 다른 공임이 책정된다. 고가 브랜드, 저가 브랜드의 공임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다. 탠디, 베카치노, 블랙탠디 등의 고가 브랜드에 출시하는 디자인은 수명이 4~5년 정도다. 시간이 지나 판매가 시들해지면 같은 신발에 미셸, 멜빈 등 저가 브랜드 라벨을 달아서 판매한다. 제화공 입장에서는 같은 신발을 만들고도 적은 공임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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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오전 탠디 본사 관계자들이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 앞에서 하청업체 제화공들의 집회를 지켜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해결책은 직접고용

Q. 직접고용이 왜 중요한가.

이번 집회에 나선 제화공들은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탠디 본사 직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본사에서 기계와 재료 등을 모두 제공하고 모든 물량을 탠디에만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공임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형적인 하도급 구조와 소사장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 8년이나 공임이 오르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Q. 이번 사태에 대해 탠디 측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탠디는 제화업계의 삼성이다. 노조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당장의 손해보다 노조의 힘을 인정한 뒤 향후 얻을 불이익이 더 크다고 보는 것 같다. 제화공은 직업의 특성상 이직률이 높다. 하청업체들도 여차하면 다른 직원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방관하는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집회에 하청업체 제화공 모두의 처우가 달렸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따라 갑질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본사에서 공임을 올려줄 여력이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집회가 열리자 S사는 집회 참여를 우려해 공임 500원을 바로 올려줬다고 들었다. 탠디도 의지만 있다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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