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로까지 확산된 팬덤 문화
지지·응원서 현실 정치 참여로 확대
시민들의 정치 관심도 향상시켜
올바른 정치팬덤 위한 시민교육 필요

ⓒ뉴시스
지난해 4월 27일 대선후보 시절 성남시 야탑역 광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정치인들은 팬덤 군단을 몰고 다니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한몸에 누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팬’,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안철수 의원의 ‘안팬’,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이재명 의원 ‘손가혁’(손가락혁명군),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유승민 의원의 ‘유심초’,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심크러쉬’ 등 팬클럽 이름까지 만들어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와 응원에서 시작된 정치팬덤은 이를 넘어서 선거나 정책 결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등 정치 풍토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위치로까지 올라섰다. 정치인들에게 팬덤은 권력이 된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그동안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반가운 반면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일부 열성팬들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사회적인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치계의 ‘양날의 검’이 된 팬덤,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정치팬덤 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사진 출처 = 노사모 홈페이지 캡처
<사진 출처 = 노사모 홈페이지 캡처>

인터넷 발전이 이룩한 정치팬덤 ‘붐’

대한민국에서 팬클럽이란 타이틀을 달고 최초로 형성된 정치팬덤은 2000년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이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팬덤인 박근혜를 사랑하는  ’(이하 박사모)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정치팬덤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노사모보다 훨씬 이전부터 정치팬덤이 존재했다는 시각도 있다.

김성수 정치평론가는 “노사모의 출연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지만 가장 강력한 팬덤인 박사모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그 배경에는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팬덤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팬덤 문팬이 정치팬덤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지지자들로부터 아이돌 스타 저리 가라할 정도의 인기를 얻고 있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이 착용했거나 그가 등장한 상품은 이른바 ‘문템’으로 불리며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이 오랫동안 착용해 온 안경은 70~80만원 선으로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니 굿즈’라고 불리며 판매량이 2배나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문 대통령의 팬카페에서는 문 대통령의 캐릭터와 사진이 들어간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팬덤은 규모나 활동 방식의 변화는 있으나 최근에 유행처럼 불거진 현상은 아니다. 이미 오랜 과거부터 존재해왔지만 그 활동 범위와 영향력, 파급력이 커진 것이다. 김 평론가는 팬덤문화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며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현상과 정치가 결합해 탄생한 것이 정치팬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팬덤문화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문화 자체의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렵다. 밀레니엄 시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다. 당시에는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특정한 스타들이 우리 사회의 롤모델을 결정했다.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롤모델을 사랑하고 그가 누리는 것들을 대리만족하는 심리인데 이는 소비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와 결합된 것이 바로 정치팬덤이다라고 설명했다.

경희대학교 송경재 교수는 최근에 정치팬덤 붐이 일기 시작한 이유를 3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의 발달이다. 과거에는 정치인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다. 선거 사무실이나 정당 사무실에 직접 가야 하거나 그렇다 하더라도 만남이 성사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용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더라도 정치인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시민의식의 변화다.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 시대에는 특정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드러내고 지지할 수 있을 만큼 시민권이 향상됐다.

마지막으로 정치제도의 급격한 변화다. 1987년 이전에는 대통령선거가 간선제였으며 국회의원 선거도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이 나오는 중·대선거구제였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바뀌고 국회의원 선거도 소선거구제로 바뀌며 정치인에 대한 지원과 후원 행위가 분명해졌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민주화 이후 시민의식 향상, 정치 제도의 급격한 변화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등장한 정치팬덤이 지금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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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퇴진 반대를 촉구하며 맞불집회를 열고 있는 박사모 ⓒ뉴시스

‘정치팬덤, 약일까 독일까’

정치팬덤을 바라보는 시각은 현저하게 양측으로 나뉜다.

우선 시민의 주권 의식의 일상화됐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지지자들이 나서서 후보의 공약과 정책을 홍보함으로써 유권자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를 향상시켰으며 또 정치 후원금을 모으는 데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후원계좌를 개설한 지 이틀 만에 후원금이 약 7억원이 모였다고 밝혔다. 정치에 대해 냉소하고 무관심했던 국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를 이끌어낸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다.

반면 정치팬덤의 영향력 향상과 맹목적인 지지가 정치인들 사이의 갈등을 촉발시키고 사회통합과 올바른 정책 경쟁을 방해한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국민으로서 잘못된 정책을 감시하고 꼬집는 역할을 상실하고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말이라면 맹목적으로 신뢰하기도 한다. 이는 온라인상에서 타 정치인을 비방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악성댓글을 다는 등 사이버테러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치팬덤 현상을 악용, 매크로를 이용해 포털 사이트 댓글 여론을 조작한 브로커 이른바 ’드루킹‘ 사태가 불거지며 다시금 정치팬덤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가 재고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송 교수는 정치팬덤은 긍정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다고 평가했다.

송 교수는 “바름과 잘못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부 과잉 지지집단의 정치참여 방식은 분명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정치팬덤 현상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눌 때 전자가 8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투표율이 높아야 하는데 사실상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우리나라의 투표율은 하락하는 추세”라며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투표율을 높이고 정치 참여 기회를 제공한 것이 민주주의 측면에서 정치팬덤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다.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평론가는 지지하는 정치인이 위기를 맞았을 때 팬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는 “특정한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며 그 가운데 내가 지지하는 롤모델(정치인)이 부정적 가치가 덮쳐 매도당했을 때 팬덤은 강력한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그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장벽이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인 ‘문빠’를 예로 들어 “문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완벽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팬덤 가운데 나쁜 마음을 먹은 이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영향력은 차단돼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도덕적 프레임 안에서 타인을 공격하는데 굉장히 익숙해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며 팬덤에 대한 날 선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정치와 팬덤이 결탁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건강한 정치팬덤 위한 시민교육 필요”

최근 연예인 팬덤은 과거 맹목적인 숭배를 벗어나 좋아하는 스타의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그룹 ‘JYJ’의 멤버 박유천씨의 팬들은 공개적으로 지지철회를 선언했으며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강인이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적발되자 일부 팬들은 팀 퇴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팬덤은 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된 최초 정치 팬클럽으로 알려진 노사모는 노무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위기를 안겨준 장본인으로까지 평가받는다. 하지만 최근 정치팬덤은 사리분별하지 못한 무조건적인 지지로 되레 정치를 퇴행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송 교수는 올바른 정치팬덤 문화 형성을 위해 성숙한 시민들이 정치와 관련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지지집단을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팬덤을 제지하는 어떤 법안도 발의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이 나서서 고민해야 된다. 정치참여를 억압받은 과거가 있다 보니 좋아하는 정치인에 과도하게 몰입해 잘잘못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잘한 것은 칭찬하고 못한 것은 비난하는 합리적 지지자들이 늘어나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 정치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민교육에 대해 장기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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