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과 일반시민 500여이 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대한항공 직원들이 한진그룹 총수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근절과 퇴진을 요구하며 개최한 촛불집회에 일반시민들이 대거 참여하며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도는 5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대한항공 직원들로 구성된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지난 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촛불집회’를 열었다. 집회 규모는 당초 100명가량으로 신고됐으나, 대한항공 직원 외에 일반시민의 참여가 늘면서 총 500여명의 참가자가 계단을 가득 메웠다. 

집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조씨 일가 욕설 갑질 못 참겠다”, “갑질 폭행 이명희를 구속하라”, “갑질 원조 조양호는 퇴진하라”, “조씨 일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제창하며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를 규탄했다.

또한 “자랑스런 대한항공, 사랑한다 대한항공, 지켜가자 대한항공”이라는 구호를 통해 이번 집회의 목적이 부조리에 대한 맹목적 규탄과 분노 표출이 아닌 ‘대한항공의 정상화’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날 대다수 참가자들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한 저항의 상징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는 회사 측의 참석자 색출할 것을 우려해 가면이나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기로 사전에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갑질! 어디까지 해봤니?’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은 가면을 쓴 채 집회의 사회를 맡았고, 집회에 참석한 직원·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얼굴을 드러낸 시민뿐 아니라 대한항공 직원들도 발언에 나섰다.

박 전 사무장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제가 누군지 아실 것”이라며 “대한항공을 음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항공을 사랑하기에 이 자리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힘든 시기도 있었다”면서 “이 길을 걸어오는 것이 저 혼자만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면서 험난했던 그간의 소회를 내비치기도 했다. 

집회가 무르익을 무렵 흰 마스크를 쓴 중년 남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조씨 일가가 마음껏 갑질을 하도록 내버려둔 방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15년 전 어용노조에 패배한 뒤 침묵했으나 여러분의 열정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다”면서 “조양호 회장이 퇴진하는 그날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발언 도중 그는 이제는 당당히 나서겠다며 마스크를 벗으며 신분을 밝혔고 커다란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뒤따라 박 전 사무장도 가면에 가려졌던 얼굴을 드러내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4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제1차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대한항공을 상징하는 민트색 재킷을 입은 한 여성은 자신을 승무원이라고 밝혔다. 그는 발언에서 “썩은 부분이 있으면 도려내야 하고 쓰레기통이 차면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동안 방만한 경영과 폭력적인 모습으로 직원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조씨 일가는 버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한항공에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며 “대한항공 이미지를 가장 망친 것은 경영진이며, 이제는 정상적인 경영진을 데려와서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다시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는 모든 참가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참여하는 민주적인 방식도 돋보였다. 발언자가 미리 확정돼 식순에 따라 진행되는 여타 집회와 달리, 즉석에서 발언을 원하는 사람을 뽑아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는 방식이라 여러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공유되는 자리였다.

많은 시민들이 집회 현장을 찾은 만큼 현직 경영진의 전면 퇴진을 요구 중인 무거운 분위기에도 집회를 즐기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아! 대한민국’을 개사한 노래와 ‘떴다 떴다 비행기’ 등을 함께 불렀고, 스포츠 응원을 하듯 박수를 치며 대한항공을 연호하는가 하면, 박 전 사무총장의 주도로 파도타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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