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 후 ‘Club H.O.T.’ 5기로 팬덤 입성
무대와 공연을 응원하는 게 팬으로서 주된 역할
가치관 형성에 H.O.T. 음악이 미친 영향 매우 커
팬덤과 스타, 서로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존재

사진 출처 =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홈페이지>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거실에 놓인 작은 TV 속에서는 등장하는 놀라운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내는 그룹 H.O.T.를 보고 열광하던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소녀는 어느덧 20대 후반의 직장인이 됐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팬클럽에 가입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혼자 힘으로 멤버들의 팬미팅에 함께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도 갖출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H.O.T.를 향한 열정적인 팬심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H.O.T.의 공식 팬클럽 ‘Club H.O.T.’ 5기 출신인 직장인 김혜원(29·가명)씨는 H.O.T.가 공식적으로 해체한 이후 현재 멤버 장우혁의 공식 팬클럽에 가입해 활동하며 꾸준히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누군가는 ‘어린 학생도 아니고 아직도 가수나 좋아하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혜원씨에게 H.O.T.는 단순한 TV 속 스타의 의미가 아닌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활력소 같은 존재다.

<투데이신문>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국내 팬덤 문화를 만들어낸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Club H.O.T.’ 혜원씨의 ‘팬덤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다.

<사진 제공 = 김혜원(가명)씨>
<사진 제공 = 김혜원(가명)씨>

Q. ‘Club H.O.T.’ 5기로 활동했다. H.O.T. 팬덤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H.O.T.가 데뷔했을 때 내 나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H.O.T.를 좋아했던 언니를 따라 노래를 듣고 H.O.T.가 출연한 방송 녹화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팬이 됐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이후 부모님을 졸라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Club H.O.T.에 가입했는데, 가입하자마자 H.O.T.가 해체됐다. 때문에 다른 기수와는 다르게 팬클럽 창단식이나 팬미팅조차도 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마지막 Club H.O.T.였다고 볼 수 있다.

Q. 당시 팬덤 간의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H.O.T.와 젝스키스의 경쟁도 빼놓을 수 없는데.

유독 과했던 팬들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가 콘서트장 주차장에 있던 리포터 조영구씨의 차를 망가뜨렸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된 적이 있다. 굳이 그런 행동들을 이해해보고자 한다면 ‘내 가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어린 마음에 누군가 내 가수를 욕하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 좋은 말을 했을 때 속상한 마음에 집에 와 울고불고 했던 적이 있었다. 내 가수가 가장 돋보여야 하는데 비슷한 콘셉트의 또 다른 가수와 팬덤이 있으니 신경 쓰였던 거 같다.

Q. 팬덤과 스타의 관계를 정의한다면.

다른 가수의 경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H.O.T. 팬들에게 물어본다면 서로 고맙고 미안한 존재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할 것 같다.

Q. 팬덤의 주된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팬덤의 역할은 내가 팬클럽에 가입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방송이나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으나 어느 순간 나에게 기대 이상의 큰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데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드림콘서트나 TTL콘서트 등 여러 가수들이 모이는 콘서트장에 가면 내 가수의 팬이 가장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전장에 나가는 마음가짐으로 한 데 뭉쳐서 큰 목소리로 내 가수의 무대와 공연을 ‘응원’하는 게 팬으로서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홈페이지><br>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홈페이지>

Q. 90년대 1세대 아이돌, 2000년대 초 2세대 아이돌, 그리고 현재 3세대 아이돌 팬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재 3세대 아이돌 팬덤 활동을 보면 부러운 점도 놀라운 것도 굉장히 많다. 내가 팬클럽 활동을 할 땐 정말 순수하게 응원만 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선물이나 기부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내 가수를 지원하는 것 같다.

Q. 1세대 아이돌 팬덤이 지금의 팬덤 문화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사소하게는 가수마다 응원할 때 사용하는 풍선 색을 정하는 것이 있겠다. 팬 규모가 굉장히 큰데 비해 정보 공유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각 지부(서울, 경기, 인천 등)별로 사서함 번호가 있는데, 그 사서함에 남겨진 공지사항을 수시로 확인해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만나서 공연 응원을 다니곤 했다. 그 당시 H.O.T.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누가 물어보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들을 다 합쳐도 안된다는 한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Q. 팬덤의 규모와 역할이 과거에 비해 많이 커졌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인터넷 보급과 SNS를 통한 정보 공유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대표 사서함 번호를 통해서 H.O.T.의 공식 스케줄을 알아내는 것이 팬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Q. 10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팬덤 활동이 최근에는 20·30대까지 연령대가 넓어졌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 끝에 자리를 잡고 정신없이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멤버 토니나 장우혁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을 보다 보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에는 MBC '무한도전 - 토토가'를 통해 17년 만에 멤버 다섯명이 함께 무대에 선 모습을 봤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은 다섯명이 함께 선 무대를 보려면 유튜브에서 세기말 화질로 보는 게 전부였다. 그 무대를 본 대부분의 30대 팬들은 ‘그 당시로 돌아온 기분이다’라는 말을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즐거움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Q. 팬덤의 순기능은 무엇일까.

인터넷 보급이 거의 되지 않았을 당시를 생각해보면 가수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비판을 노래하곤 했다. 이를 통해 팬들도 그 이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를테면 H.O.T.의 ‘전사의 후예’나 ‘아이야’같이 함께 손을 잡고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가사말처럼 살고자 실제로 노력했던 거 같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나로서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데 H.O.T.의 음악이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고 확신한다.

<사진 출처 = tvN 응답하라 1997 홈페이지 캡처>

Q. 팬덤 부작용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생팬’인데, 이는 우리 사회 큰 문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이건 어떤 경우에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한 집단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스타의 집 앞을 서성이는 등의 사생팬은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집에서 사용하던 변기를 떼어오는 등 과거의 사생 문제는 최근 TV에서 유머 소재로 쓰이고 있는 거 같다. 지금은 가수가 공연 한 번 하고 나면 관련 영상이나 이른바 대포 카메라로 촬영한 고화질 사진이 수백개씩 올라온다. 마음만 먹으면 직접 가서 본 것보다 안방 1열에서 더 잘 볼 수 있다. SNS로도 그들과 하루를 공유하는 것처럼 항상 함께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직접 공연장에 가는 것 아니고서는 가수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적었다. 그래서 몇몇 지나친 팬들의 과한 행동을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Q. 팬덤 내에서 사생팬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굉장히 안 좋게 본다. 심지어는 최근 ‘무한도전-토토가’ 공연을 마친 후 멤버 장우혁이 늦게까지 기다린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같이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이 그의 손을 계속해서 조몰락거리는 영상을 봤다.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데 남성 팬들이 다가와 몸을 만지거나 주무른다면 당연히 문제 될 일이다. 그런데 남자 가수라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실제 팬들은 H.O.T. 눈앞에서 보면 말도 제대로 못 붙인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다.

<사진 출처 = MBC 무한도전 홈페이지>

Q. H.O.T.가 해체를 선언하고 일부 극성팬 중에는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취미 활동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만 당시에는 누릴 것들이 많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레코드 가게에 줄 서서 새로운 음반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구매 후 하루 종일 가사집을 들여다보며 음악을 듣고 방송 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늘어날 때까지 보는 게 전부였다. H.O.T.가 해체됐을 때 충격은 아직도 선하다. 당시 굉장한 그룹이었고 그런 식으로 해체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또한 누구를 향한 원망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큰 배신감과 원망이 들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은 어른들이 어느 정도 이해해줬어도 된다고 본다. 한 예로 멤버 문희준이 리프트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받은 충격으로 아직도 사고 당시 부른 노래는 잘 듣지 못한다. 그만큼 예민하고 어린 시기였다는 걸 말하고 싶다.

Q. 팬덤이 가수의 데뷔일이나 멤버의 생일을 기념해 지하철, 전광판, 버스 등에 광고를 내기도 하는데 팬들은 축하의 의미지만 일부는 ‘돈자랑’, ‘불필요한 경쟁적 소비’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 시선들 때문에 최근에는 다 함께 모금한 돈을 가수의 이름으로 숲을 조성하거나 기부를 하는 거 같다. 축하한다는 의미로 팬 개인당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일정 금액을 모아 마음을 전하는 일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경쟁적 구도로 큰 금액을 강요받거나 학생이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은 큰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 무리하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

Q. 몇몇 부정적 측면 때문에 팬덤을 연예인의 뒤만 따라다니는 ‘빠순이’라고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많은데.

제 할 일을 제쳐두고 연예인의 뒤만 따라다니는 건 나 역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팬덤의 대부분은 일상을 충실히 살아간다.

Q.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 문화도 활발했다. 스타들은 동성 간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도 하는 팬픽 문화를 반기지만은 않는 듯한데.

모든 문화에 옳고 그름을 정의할 순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취향도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 주인공이 되는 당사자가 싫어하는 거라면 하지 않는 게 옳다고 본다.

Q. 반면에 팬덤을 대중문화개혁운동의 주체라고 보는 시각도 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 한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매개체가 생겨나면서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다. 현재도 옳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팬들끼리 기간을 정해두고 투표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하나의 의견으로 정리해 목소리를 내는 일도 많다.

<사진 제공 = 김혜원(가명)씨>

Q. 팬덤 활동이 본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앞서 말했듯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직장생활을 하는 데 큰 활력소로 작용한다. 얼마 후 멤버 장우혁과 토니의 생일을 기념한 팬미팅이 있을 예정이다.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Q. 올바른 팬덤 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오픈 채팅방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페 커뮤니티 등 팬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다양한 좋은 세상이다. 지금처럼 팬덤 스스로 자중하고 각자 의견을 내면서 조율하고 투표하는 등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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