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뿐 아니라 축산 가축도 보호 필요
동물권 국민의식 높아지고 있지만 제도 미흡
하루빨리 동물보호·복지 제도개선 이뤄져야

지난 2014년 2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개최한 '공장식 축산 폐기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동물복지 축산 전면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4년 2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동물보호연합,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동물사랑실천협회가 개최한 '공장식 축산 폐기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동물복지 축산 전면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세계동물권리선언 제1조)

1978년 10월 15일, 파리 유네스코에서는 세계 동물권리 선언문이 공포됐다.

이 선언문에는 인간이 다른 동물 종의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모든 종이 상생할 수 있는 바탕이며, 인간은 모든 동물을 관찰, 이해, 존중, 사랑하도록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동물이 주체적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인식은 국제적으로 선포된 지 30년도 더 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행법은 동물의 소유자를 ‘동물의 소유자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물을 물건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법에 명시하고 있다. 또 영국은 동물복지법에서 ‘동물을 책임지는 사람’이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동물을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하고, 동물을 소유한 사람은 그 동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항상 간주된다고 규정하는 등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친숙한 동반자적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서도 동물권 보호 인식 확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 10명의 의원은 지난해 9월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동물보호법 상의 ‘소유자 등’을 ‘보호자 등’으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은 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 의원 측은 “마하트마 간디가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듯 동물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아니”라며 “동물을 그저 재산이 아닌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가진 주체로 보고 인간과 공존하는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며 “동물의 권리 확대는 인권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동물권 확대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헌법상 동물권 명기, 민법에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 신설, 반려동물 복지 강화, 공장식 축산의 동물복지 농장 전환 등 동물복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원외 정당 중 동물권 강화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정당으로는 녹색당이 있다.

녹색당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동물복지 축산, 동물실험 축소, 동물산업 규제 및 동물보호법 강화, 헌법상 동물권 명기 등을 핵심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녹색당 김지윤 정책팀장은 “녹색당 후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동물 학대사례 처벌 및 단속 강화, 동물 전시 관련 전수조사 실시 등 동물권 강화를 공통공약으로 내걸었다”며 “반려동물뿐 아니라 축산업까지 확대해 공장식 사육을 지양과 동물복지 농장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에서 사육되고 동물복지 운송 · 도축을 거쳐 생산된 축산물에 표시되는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 마크 사진 출저 =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홈페이지
동물복지 축산농장에서 사육되고 동물복지 운송·도축을 거쳐 생산된 축산물에 표시되는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 마크 <사진 출처 =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홈페이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있지만 비율 낮아

그간 정부의 동물보호 정책은 반려동물의 보호에만 치우쳐 반려동물 관련 산업 육성과 농장·실험동물 정책 추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정의당과 녹색당 등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동물복지 농장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가축농장을 말한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는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돼지·닭·오리농장 등에 대해 국가에서 인증하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마크’를 표시하는 제도도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현재 119개 농가가 인증을 받았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농장 내 일반(공장식) 사육 방법을 적용한 축사가 없어야 하며, 항생제·성장촉진제 등 동물용 의약품이 첨가된 사료 및 음수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생산자들은 동물복지 관련 정기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등의 일반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또 축종별로 마련된 사육시설 기준과 사육밀도 기준, 사료·음수 기준, 가축 건강상태 평가 등 현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사육농가 수 대비 축종별 동물복지 축산농장 비율은 산란계 8.5%, 육계 0.67%, 돼지 0.26%, 젖소 0.11% 등으로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생산성과 비용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1978년 동물복지 관련 입법 및 정책 도입이 이뤄졌으며 1999년 암스테르담조약에서 EU집행위원회가 동물복지 관련 정책을 결정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면서 구체적인 동물복지 기준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66년 반려동물과 실험동물을 중심으로 한 동물복지법을 제정했다. 최근에는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동물복지 도축장 표준가이드라인 설정 및 EU 등 국제 기준의 농장동물 복지정책의 흐름에 따라 동물복지 축산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은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제가 마련되진 않았으나 2001년 유기농산물 인증제를 마련하고 2005년 유기(방목)축산 인증기준에 대부분의 동물복지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유기축산물 일본농업규격(JSA)’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또 2007년 산란계, 돼지, 육계, 젖소의 동물복지 사양·관리 지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 여러 국가들은 시민들의 동물권 인식 향상과 농장 가축들의 복지를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해 11월 한국자연환경연구소(주)가 전국 만 20~64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동물보호 복지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에 대한 인지도는 35.4%로 2012년 13%에 비해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의 홍보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6월 22일 경남 거창군의 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돼지 농가에서 농장주가 돼지들을 돌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22일 경남 거창군의 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돼지 농가에서 농장주가 돼지들을 돌보고 있다 ⓒ뉴시스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팀’ 신설…동물보호·복지 전담

이 같은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반영한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0일 기존 축산정책국 산하 축산환경복지과를 축산환경과, 동물복지정책팀으로 분리한다고 밝혔다.

동물복지정책팀은 축산환경복지과가 수행해 온 ▲동물보호·복지 기본계획 수립 및 시행 ▲동물학대 방지 및 유실·유기동물 보호 ▲반려동물 보호 기반마련 및 지원에 관한 사항 ▲동물복지 축산 확대와 동물복지 축산농장 지원 ▲윤리적 동물실험에 관한 사항 ▲동물보호법 및 한국 진돗개 보호육성법의 운영 ▲반려동물 관련 산업 육성 및 관리 등을 전담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국민들의 동물보호·복지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높아지는 반면 제도와 정책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며 “반려동물뿐 아니라 농장 가축, 실험동물 등에 대한 보호·복지 정책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동물복지정책팀 신설로 이런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모든 동물의 보호·복지를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동물권 인식에 발맞춰 제도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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