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연의 그린라이트㉖] 절박해지지 말자
[안소연의 그린라이트㉖] 절박해지지 말자
  • 안소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28 10:5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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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잘 지키는 타입은 아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약속 장소에 5분 10분 늦는 일이 더 많은 밉상 인간이다. 그럼에도 원고 마감 시간만큼은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던 것이 유일한 나의 자랑이었는데... 슬프게도 지난 주 평생의 규칙을 깨고 말았다.

고백하자면 지난 몇 주 마음이 어지러워 글을 쓸 수 없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대한민국에 와 있는 탈북민들과 인터뷰 방송을 진행해왔다. 햇수로 8년, 만난 숫자가 4백에 가깝다. 그 많은 만남을 통해 북에 대해 얻은 지식에 실향민인 부모님을 가졌다든가 하는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치고 보니 대북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객관적이기가 늘 힘들었다. 덕분에 지난 몇 주, 널뛰는 국제 정세를 지켜보며 ‘이 시국에 연애타령이라니’, 하는 마음속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늦어진 원고에 대한 변명을 하거나 나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감정의 과잉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내 유일한 자랑을 없던 일로 만든 감정의 과잉에 대해.

감정이 무르익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일 때, 우리는 절박하다, 라고 말한다.

절박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 말이 제일 어울리는 사람은 아마도 청와대 앞에 와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손으로 직접 쓴 절절한 핏빛 사연을 들고 (때로는 샌드위치맨처럼 앞가슴과 등판에 자신의 주장을 입기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 자리에 홀로 외롭게 서서 소리 없는 절규를 토하는 그들.

그런데 그 소리 없는 외침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거의 모두가 의도적으로 외면을 한다.

길에 넘어져 무릎이 까진 어린 아이만 보아도 마음이 아파 손을 내밀고, ‘이 돈이 과연 어려운 이웃들에게 가긴 하는 걸까’, 의심이 드는데도 기꺼이 구세군 냄비에 동전을 던지던 착한 이웃들이, 억울해 죽겠다는, ‘대통령님 제발 좀 살려주세요’, 하고 저리 처절하게 울부짖는 사람들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 아이러니는 어디에서 오는가.

절박함이다.

사람들은 너무 절박한 사람을 보면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 더러운 것 피하듯 먼 길을 돌아 가버린다. 아마도 그들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기 때문일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잘 못 다가갔다간 나까지 물에 빠진다.

부부싸움이나 연인간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더 절박한 쪽이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쓴다. 그러면 상대는 그 마음을 함께 아파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할까? 아니다. 진절머리를 치며 피해버린다. 같이 목청을 높인다면 그래도 그 커플은 희망이 있다. 절박함의 강도가 서로 비슷하면 적어도 일방적으로 팽 당하진 않으니까.

문제는 한쪽만 절박할 때다. 모든 것이 상대의 잘못이고 나는 오로지 피해만 보았다고 해도 청와대 앞의 1인 시위자처럼 절박해지면 내 뜻을 전달할 수가 없다. 상대는 무조건 달아나게 되어있다.

정말 힘들겠지만 절박할수록 캄 다운(calm down)이 필요하다.

지금 내 마음을 찢어버릴 듯 아프게 하는 그 사람, 미워 죽겠는 그 사람. 그러나 이 아픈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들고 있는 유일한 그 사람.

그를 일단 옆 자리에 앉혀야 한다.

절박해지지 말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들키지 말고.

도대체 어떻게?

정답은 나도 모른다.

언제나 총론은 쉽고 각론은 어렵다.

절박해지면 절대 안 되요, 외치는 이 글도 너무 절박해서 외면당하는 건 아닐까?

이런 의구심이 들지만 일단 글을 마친다.

쿨한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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