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훈 교수 “마르크스, 오늘날 소득 불평등 문제에 통찰 제시해”
홍훈 교수 “마르크스, 오늘날 소득 불평등 문제에 통찰 제시해”
  • 남정호 기자
  • 승인 2018.06.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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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세대 경제학부 홍훈 교수
마르크스경제학자가 말하는 마르크스
200살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총체주의’와 ‘사회성’ 강조한 마르크스
경제학 외 다양한 분야서도 관점 제시해
주류경제학의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
총체적 시각 받아들여 인식 확장해야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 ⓒ투데이신문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2018년,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200살을 맞이했다.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철학자 또, 정치혁명가였던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간 마르크스에 대해 다양한 이념적 굴레를 씌워 ‘빨간 딱지’를 붙였고, 그의 대표적 저서인 ‘자본론’은 ‘금서의 대명사’였다.

마르크시즘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던 동구권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의 사상은 비주류가 됐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세계금융위기 등 자본주의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마르크스는 다시금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 물론, 세계적 화두가 된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관심은 커져가고 있다.

저서 '자본론'에는 이런 마르크스의 생각이 집대성돼 있다. 산업혁명 초기, 당시 화려한 발전의 이면에 있던 극빈층 하위 노동자 계층의 양산을 본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한 노동자들의 착취를 밝혀내기 위해 상품의 가치에 주목했다. 자본가들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까닭은 자본가들이 생산수단과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해 이윤극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급하면 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권력의 상하관계 속에서 최대한의 생산을 해야하는 처지라는 것. 그리고 이 관계에서 발생한 노동의 결실(상품)로부터의 소외로 인해 착취가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마르크스가 언급한 착취와 소득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이와 함께 그가 강조했던 사회성과 총체주의 역시 기존의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주류경제학이 보지 않던 곳을 바라본다. 이외에도 오늘날 200살의 마르크스가 다시금 언급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에 <투데이신문>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석학인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를 만나 마르크스의 사상적 핵심과 현대 경제학에 시사하는 바에 대해 들었다.

지난 5월 5일 독일 트리에에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워진 마르크스의 동상 ⓒAP
지난 5월 5일 독일 트리에에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워진 마르크스의 동상 ⓒAP

마르크스, 총체주의를 말하다

Q.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핵심은 어떤 것인가

자본론의 핵심은 인간,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 모든 것의 사회성, 그중에서도 자본주의적인 사회성이다. 이는 개인이나 개체에 집착하는 신고전학파와 대립을 이룬다. 신고전학파는 사회성을 시장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비시장적인 것으로 간주한 후, 다시 개체로 환원하거나 해체해 내생화하려 노력한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사회성의 기준이 개별영역에서의 이런 노력에 대한 비판적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내세운 사회성은 단순히 개체나 구성요소의 외형이나 부분을 이루는 게 아니라 개체나 구성요소에 내면화돼 필연적 관계와 구조를 이룬다. 상품의 가치가 상품의 실체와 형태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자본가의 이윤추구는 이들이 추구하는 여러 목표 중 하나거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이들에게 내면화돼 이들의 행동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근원적이다. 자본주의의 사회성은 자본주의의 이념으로 이어진다. 신고전학파에서 개인의 합리성과 시장에 대한 집착은 이론의 기반이면서 이념이다. 특히 ‘경제학의 제국주의(Economics Imperialism, 경제학이 다른 학문들을 잠식하는 현상)’를 주도하는 시카고학파(신자유주의 학파)에서 이런 경향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자본주의 경제학이 지닌 이념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신고전학파에 대한 이해와 비판에 도움을 준다.

Q. 마르크스의 총체주의는 자본론에 어떻게 녹아있나

자본론 체계는 총체적이어서 시작, 과정, 끝을 포함한다. 이런 이유로 이 체계의 주요 요인들은 모두 내생적이다. 자본주의체계도 외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적인 요인에 의해 재생산되고 호황이나 공황에 진입한다. 체계의 총체성이나 내생성에 있어 마르크스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영국의 경제학자로 주류경제학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케인즈안’의 이론을 창시)보다 더 철두철미하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의 체계가 폐쇄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론 체계와 대척점에 있는 일반균형체계(일반균형이론, 경제를 구성하는 많은 시장에서 일련의 경제변수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균형이 성립되는 조건·가격결정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이론)는 현실의 너무 많은 것들을 외재적, 외생적이라고 가정해 동태적(動態的) 현실을 정태적(靜態的)으로 바꿔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 신고전학파가 선호, 기술, 제도 등을 설명하고 내생화하고 있다는 점이 이런 생각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Q. 마르크스 경제학의 경제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사회주의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눈이나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시각, 현상이나 체제의 관점에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써의 사회주의, 또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재로서는 대안적인 무언가를 제시하는 측면보단 비판의 차원이 더 의미를 가질 것 같다.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 경제학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판 등이 현재로서는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Q. 이 같은 마르크스의 사상은 현재 경제학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

체제의 관점에서는 그간의 세계화 과정을 보면 금융체제의 불안정성, 소득 불평등, 환경문제 등이 중요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를 교조적으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적절히 변형·수정한다면 이런 문제와 같은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해 대안을 제시하는 건 많지 않더라도 나름의 비판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금융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해선 마르크스가 케인스 등과 함께 많은 지적을 했다고 본다.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마르크스 뿐 아니라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로 노동가치이론, 비교우위론, 차액지대론 등을 주장) 등도 말했지만, 마르크스의 관점을 뺄 순 없다. 최근 소득 불평등에 대해 지적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프랑스의 경제학자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진다는 부의 불평등에 대해 주장)의 책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피케티가 마르크스의 생각을 계승했다고 보기엔 여러 차이점이 많지만 여전히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했던 여러 가지 중 하나일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문제를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마르크스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Q. 마르크스의 사상은 경제학 외의 부문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나

환경문제에 있어 마르크스가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한테도 서양인들이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정복 등의 관점이 없진 않았다. 그렇더라도 총체적으로 경제와 사회, 자연 생태계를 한꺼번에 보는 시각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이 타인을 착취·수탈하는 것뿐 아니라 생태계를 착취·수탈하는 것 역시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테다. 그 총체적 시각을 마르크스가 제공한다고 보면, 넓은 의미에서 생태계 문제에 대해서도 마르크스가 어떤 관점을 제공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경제학에서는 동구권의 몰락이후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서양이든 한국이든 많이 후퇴했다. 그렇지만 심리학, 인류학, 환경문제, 생태문제 등에서는 꽤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자연, 사회주의(Capitalism Nature Socialism)>이라는 학술지가 있는데, 이 잡지는 마르크스를 기계적으로 따라가진 않지만, 마르크스의 관점을 꽤 많이 수용해 좌파적인 환경이론을 20년 이상 나름 활발하게 제시하려하고 있다. 그런 걸보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적절히 변형하면 환경문제에 대한 관점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 ⓒ투데이신문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 ⓒ투데이신문

착취와 사회관계 속 인간

Q. 마르크스 경제학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인 '노동가치설'에 대한 증명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노동가치이론(노동가치설. 상품가치의 크기는 해당 상품의 생산에 소요된 노동량이나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이론)을 계속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 있긴 한데 유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결국은 생산의 영역과 교환의 영역이 같이 결합돼 가치와 가격이 결정되는 쪽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원래부터 많은 사람들이 고집했던 게 아니라, 달리 생각하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소득의 근거로서의 노동은 어느 정도 그 근거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지난 몇백년간 변하지 않은 건 소득을 가지려면 뭔가 활동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 것 같다. 그게 꼭 노동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때문에 불로소득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소유에 근거한 소득을 거부한다면 뭔가 노동이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피케티의 논의도 명확한 분배의 근거는 없지만, ‘CEO가 왜 이리 돈 많이 받느냐’는 결국 이론을 빼고 단순히 얘기하면 ‘그만큼 활동을 많이 했느냐’다. ‘그만큼 활동 안하고 돈을 그렇게 받아? 이거 안 되지 않아?’라는 생각들은 계속 있는 것 같다. 막연한 의미에서 그게 주류경제학에서 얘기하는 한계 생산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그냥 노동의 대가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뭔가 활동이 수반되고 그것에 상응해 소득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있는 것 같다. 노동가치를 논증하기 어렵다고 해서 노동이나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진 않다.

Q.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는 현재 어떻게 바라볼 수 있나

자본주의의 사회관계와 관련해 마르크스가 제시한 건 교환과 착취관계에서의 문제다. 이중 교환관계는 표현은 다르지만 교환을 통해 화폐가 움직이는 관계는 가장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정되는 것 같다. 문제는 착취다. 앞서 말했지만 노동가치이론에 근거한 착취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긍정적으로 유지하려 하지만, 실제로 숫자로 측정해 착취를 구하는 등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점차 경제가 선진국화되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면서 감정노동에 대한 관심이 꽤 많이 늘었다. 그것도 수량으로 측정하긴 상당히 어렵지만, 사람을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량적으로 측정하는 건 어려울지라도 착취 개념의 확산, 자연과 감정, 자기 자신에 대한 착취 등을 보다 중시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Q. 마르크스가 강조한 착취는 어떤 것인가

마르크스는 이 같은 착취를 강조하면서 화폐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경제활동을 중시했다. 시장-가격-화폐가 한 묶음이고, 공장-착취-노동가치가 한 묶음인 거다. 전자에 대해 화폐의 역할을 중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류경제학,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들어가면 그들의 이론적 정당성으로 인해 화폐의 존재가 거의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한다거나 즐긴다의 차원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돈을 벌겠다는 목적도 있다. 이걸 강조했던 소수의 경제학자 중 대표적인 인물이 마르크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케인스도 어느 정도 강조했지만 마르크스만큼 치열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Q. 보다 상세하게 말해준다면

의식주 해결 등 생계나 생활을 위주로 하는 경제와 돈벌이를 위주로 하는 경제 중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후자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돈벌이 위주의 경제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반발은 서양사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시장경제를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화폐를 추구하는 경제와 생계를 추구하는 경제의 문제인 것이다. 이걸 마르크스가 가장 격렬하고 치열하게 반대했던 이유는 자본주의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화폐를 추구하는 경제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나중에 협동조합 등과 관련해 사회적 경제를 주창한 칼 폴라니(Karl Polanyi,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로 ‘사회적 경제’를 주창) 등이 생활을 위주로 하는 실질적 경제를 추구했다. 이런 관점에서 화폐, 금융 중심의 경제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삶, 그런 경제활동에 대한 비판이 나름대로 마르크스가 주는 관점일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대안적 경제로써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경제나 공유경제 등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결국 생활 전체를 경제로 뒤덮지 않는 것, 즉 제한적인 경제활동 이후의 나머지 생활은 경제가 아닌 다른 걸 추구하는 삶일 것이라고 본다. 기본소득도 마르크스가 직접 얘기했다고 할 순 없지만, 이 같은 갈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보며, 이는 마르크스와 친화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Q. 자본론에서 핵심으로 꼽은 사회성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마르크스는 사회관계를 강조했다. 사람은 개개인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사회구조와 사회관계, 사회성을 얘기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가장 큰 공헌은 사회학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 사회성을 빼고는 마르크스를 얘기할 수 없다. 물론 자본주의 고유의 사회성과 일반적인 사회성은 구분해야 하지만, 그런 구분을 떠나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관점, 사회관계 속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개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져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 그런 관점으로 넓혀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사회심리학, 사회학, 경영학 등에서 굉장히 많다. 심리학이나 인류학에서는 서양인은 개인주의적이며 독립적인 자아고, 동양인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얘기가 널리 퍼져있다. 물론 서양도 상호의존적인 자아가 없진 않고, 생각보다 꽤 광범위하긴 하다. 다시 뒤집어보면 주류경제학이 양보할 수 없는 공준(公準, 자명한 명제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개인주의다. 개인이 효용과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들이 모여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이게 흔들린다면 주류경제학의 주장은 상당히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상호의존적이라던가 관계적 인간, 나아가 사회관계를 얘기한다면 거기서 중요한 한 사람을 마르크스라고 보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 ⓒ투데이신문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홍훈 교수 ⓒ투데이신문

주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시사점

Q. 마르크스가 한국 경제학에 시사하는 바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체제와 인식의 문제, 두 가지가 다 있겠지만, 마르크스는 서양의 경제사상이나 체제를 받아들일 경우, 이를 수용하는 방식에 대한 방향성을 어느 정도 제시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최근 드는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동양 사상은 총체적이고, 관계를 중시하는 등 전체를 바라보는 것인데,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독일의 철학자로 독일 관념론을 완성. ‘변증법’이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제시)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이나 총체적 관점하고 꽤 친화력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중국이나 일본,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마르크스가 지녔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체제나 인식에 대한 비판도 중요할 것 같다. 우리의 경우에는 주류경제학,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받아들일 때 너무 파편화돼 있다든지, 단편적으로 받아들인다든지, 개념 위주보다는 방법 위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는데 총체적, 전체적, 포괄적으로 보면서 수용하는 관점을 마르크스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한국 경제학에서의 총체성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학문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각자 서양의 잔가지들을 들고 오기 때문에 이걸 전체적으로 전혀 연결이 안된 상태로 해방 이후 몇십년을 왔다고 본다. 이런 상황은 경제학도 심하고 다른 학문도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다. 나무 전체를 보고 줄기를 찾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이건 총체성을 지향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저 역시 그런 관점에서 원래 마르크스나 헤겔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게 제가 기존 경제학에 비판적이 됐던 이유기도 하다. 비판해왔던 그 문제는 저로서는 아직 변함없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계속 마르크스의 비판정신, 총체적인 것들이 유지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주류경제학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주류경제학은 방법론적 개체주의에 근거해 사회관계를 중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류경제학도 조금은 인식하고 있지 않나 싶다. 총체성까지는 아니지만 사회관계나 인간관계, 사회적 자본 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자본을 경제학자들도 인식은 하고 있다. 게임이론(경쟁상대의 반응을 고려해 최적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이론)이니 이런 걸 계속했지만 거기서도 수시로 개인 간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주류경제학 내에서도 사회관계 등에 대한 인식이 생기지 않고 있나 싶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주류경제학자 케네스 애로(Kenneth Joseph Arrow, 미국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로 후생경제학과 일반균형이론에 대한 공로로 1972년 최연소(51세) 노벨 경제학상 수상)는 지난 1999년 ‘명시적으로 사회관계는 사회 현실에 이롭다’고 얘기했다. 경제학에서 사회 현실 속에 사회관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말로, 이런 걸 보면 사회관계 등에 대한 인식이 주류경제학 내에서도 어느 정도 확장되고 있다고 본다.

Q. 앞서 언급한 ‘사회관계’와 같은 경제학 내의 변화모습이 또 있나

행동경제학에서는 본격적으로 사회를 얘기하진 않지만, 희석된 방식으로 사회성을 수용하고 있고 이에 근거해 기존 경제학을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적 선호가 있다. 기존 경제학에서 선호는 개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일 뿐이지, 타인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신경도 안 쓴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선호는 사람들이 타인의 선호에 신경 쓴다는 거다. 원래 경제학 얘기로는 개인은 내 월급이 얼마인지만 신경 쓴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선호에 따르면 남이 얼마 받느냐에 신경 쓰고, 그걸 의식해 태업하거나 남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더 열심히 하기도 한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효용의 개념이 넓어지는 거고 거기에 사회성을 집어넣는 것이다. 사회적 비교의 경우도 심리학에는 원래부터 있었지만, 주류경제학 내에는 없었던 얘기다. 사회적 비교에 대해서도 인정을 안하다가 요새는 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다. 사회관계는 그보다 좀 덜하지만 인간의 관계성 등을 같이 얘기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선호와 관련해 인류학에서 받아들여 인간은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 즉 홀로 사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 호모 레시프로칸스(Homo Reciprocans, 상호적 인간), 즉 호혜적이고 상호적이라고 말한다. 행동경제학 등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회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추정이지만, 앞서 말한 심리학의 흐름 등과 결합해 언젠가는 사회 관계성 등이 확고하게 경제학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경제학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앞서 언급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경제학의 제국주의는 마르크스가 얘기한 것과 거꾸로 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얘기한 대로 간 것인 것 같기도 한 현상이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Gary Stanley Becker, 미시경제학의 분석 영역을 확대한 공로로 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같은 학자들이 범죄나 출산, 결혼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게 벌써 20~30년이 됐다. 이런 걸 주로 하는 사람들이 극우파적인 시카고학파다. 마르크스는 경제를 갖고 사회, 종교, 과학, 인식 등 모든 걸 다 설명하려 했다. 시카고학파는 경제적 제국주의에 따르면 결국 경제논리를 갖고 모든 걸 다 설명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유물론(세계는 물질로 이뤄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고 보는 이론)적 기반하고, 시카고학파의 경제논리하고는 정반대의 논리긴 하지만, 경제를 갖고 모든 걸 다 설명한다는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한다.

Q. 이는 기존 경제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나

그런 식으로 경제학이 계속 확대되다 보면 다른 영역의 고유성을 나름대로 수용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추정일 뿐이지만, 초기에는 경제논리가 일단 그쪽 학문에 들어가 먹힐 테지만 그 학문 내부에 있는 고유성 등으로 인해 언젠가 변형될 것이고, 이게 다시 경제학으로 돌아오면 꼭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문의 흐름이라는 건 개별 학자가 어떻게 손댈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의도되지 않는 결과는 상당 부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경제학의 제국주의가 꼭 나쁜 건 아니지 않겠다 싶다. 최근 여러 학제 간의 융복합 얘기도 나는 상황에서 총체주의까진 아니지만 조금 더 넓게 보는 시각이 예전에도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하다. 그런 걸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총체적 시각 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Q. 끝으로, 지금 마르크스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세계화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금융체제의 불안정성, 소득 불평등, 환경파괴 등의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 적절히 보완하는 경우, 마르크스가 나름대로의 시각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만큼 명확치는 않지만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 자동차 등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사회의 변동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의 총체적인 시각이 고용, 소득불균형, 생활의 변화, 기본소득의 필요성 등에 대해 나름대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