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사의 심판’이라는 용어의 남용?
[칼럼] ‘역사의 심판’이라는 용어의 남용?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3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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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본 지면을 통해 예전에 필자는 5월에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뤄왔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5월의 역사적 사건들이 재조명 되고 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여성들에 대한 군인들의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에게 조준 사격을 비롯한 무차별한 폭력을 명령한 혐의로 전두환은 다시 법원에 호출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역사의 심판”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공공연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의 심판”이라는 용어를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역사의 심판”이라는 말을 검색해보면 백과사전에는 이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학사전에는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역사의 심판”과 비슷한 관용어구, 특히 상당수의 사자성어나 동양의 격언들은 중국의 고전에서 비롯됐다. 예를 들어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경우에는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편에 등장하는 말이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경우에는 『대학(大學)』에서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단계로 소개됐다. 그런데 “역사의 심판”이라는 말은 그 연원을 찾기 쉽지 않다. 서양의 경우에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이나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시저(Julius Caesar)와 관련된 고사(古事)들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역사의 심판”이라는 용어는 어학사전에는 엄연히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지만, 백과사전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심판”이라는 용어가 누가 처음에 만들어냈는지 확인하기 힘들고, 특정한 문헌에서 처음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관용어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연원은 알 수 없지만,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역사의 심판”이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할까? “역사의 심판”의 의미를 더 잘 알기 위해 그 반대가 되는 용어를 알아볼 것이다. 아마도 “역사의 심판”의 반대는 “법정의 심판” 정도가 될 것이다. 법정의 심판은 법을 근거로 이뤄진다. 법정의 심판이 끝나기까지는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는 판결이 끝날 때까지 무죄를 전제로 대우 받는다. 또한 증거 소멸의 우려, 인력 부족 등 현실적 한계로 인해 “공소시효”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른바 “법 감정”이라는 용어가 있을만큼, 법원의 판결이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런데 판결이 끝나고 피고가 죄가 있음을 인정받으면 벌금, 구류, 노역, 심지어는 징역형을 받거나 무기징역을 선고 받거나, 사형을 선고 받아서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법정의 심판”의 성격이 이와 같다면 “역사의 심판”은 그 반대일 것이다. “역사의 심판”은 법보다 범위가 넓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정의에서 어긋나느냐의 여부가 유무죄를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죄를 지은 사람에게 거침없이 비난을 가하고, 이로 인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죄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역사의 심판”과 “법정의 심판”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 공소시효와 처벌일 것이다. 역사의 심판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할 수 있고, 그에 따른 반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대로 역사의 죄인이 된다. 단 “역사의 심판”에서는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등의 처벌을 할 수 없다. 

지난 5월 27일 방송된 MBC의 교양 프로그램인 ‘스트레이트’에서 진행자 주진우가 “(전두환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자막으로도 “21년만에… 다시 법정에 서는 전두환.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두환의 내란 관련 혐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무기징역형을 받았고,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사면을 받았고,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내란의 죄와 직접 관련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과 신군부의 내란, 광주에서의 학살,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새롭게 밝혀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역사의 심판”으로는 아무런 단죄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격앙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