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갖고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공동합의문을 살펴보면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또한 ‘체제 안정 보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지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즉, 이날 만남의 성격은 포괄적인 합의로 규정된다. 그만큼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만남’에 방점을 둔 회담이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 지 70여년 만에 미국과 북한의 수장이 만나 악수를 나눴다. 이날 두 정상의 만남은 올해 초부터 시작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만남이었다. 이날 북미정상회담에는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이번 만남은 한반도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첫 번째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지, 실질적이고 구체적 합의 사항은 없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안겨주는 회담이었다.

미지근한 합의문

당초 이번 회담은 CVID(완전하면서도 검증 가능하고 영원히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CVIG(완전하면서도 검증 가능하고 영원히 불가역적인 체제 안정 보장)의 빅딜이 있는 회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공동합의문에서는 CVID와 CVIG라는 문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많이 양보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포괄적 합의문이 도출된 것은 양국 모두 현실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70여년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던 양국 정상이 하루 만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두 정상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다. 이날 처음 만나 충분한 신뢰를 쌓아 서로를 무한신뢰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때문에 단계를 밟아가면서 충분한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회담은 서로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는 성격을 띤 것이다.

북미가 얻은 것은 무엇

이날 회담은 미국에게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회담이었고, 북한은 미국이 체제 안정 보장 의지를 확인하는 회담이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되는 셈이다. 공동합의문에는 평화와 번영을 희망하는 양국 국민의 마음을 담아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 한반도 평화 체제의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4.27 판문점 협정 재확인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6.25 전쟁 유해 발굴과 즉각적인 본국 송환 등 4개항을 위해 양국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회담 결과, CVID와 CVIG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에 대해 다소 실망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첫 번째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둘 수 있다.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을 이행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결국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양국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양국이 그동안 적대적 관계를 풀고 새로운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반도 냉전 상태를 종식하고 새로운 데탕트(긴장완화)를 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실천 이행 과정이다. 북한은 앞으로 비핵화 실천사항에 대한 이행을 보여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장 폐쇄 약속을 언급했다. 또한 비핵화를 위해 각종 전문가들이 북한에서 활동하는 것을 얘기했다. 이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이 북한에 들어가 비핵화 실천사항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CVID를 실현시키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이다.

다만 CVID가 이날 공동합의문에 명시화시키지 않은 이유는 CVID가 이뤄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CVID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동합의문에 당장 CVID를 명기하기보다는 북한의 비핵화 실천 이행 과정을 보면서 단계적으로 체제 안정 보장을 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으로 해석된다.

북미정상회담 이후는

거꾸로 북한은 체제 안정 보장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CVID를 이행할 수 없다. 즉, 미국이 어떤 식으로 체제 안정 보장을 이행하느냐를 따져보면서 CVID 이행을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정 보장은 종전선언,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수교다. 미국이 이 같은 체제 안정 보장을 이행할 경우 북한은 CVID를 완전히 이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미국이 체제 안정 보장을 위해 어떤 실천 방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거기에 맞는 비핵화 실천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올해 안에는 가장 낮은 수준의 비핵화인 ‘미사일 시험장 폐쇄’와 낮은 수준의 체제 안정 보장인 ‘종전선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를 평양과 워싱턴으로 초청했다. 이는 앞으로 자주 만나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첫 만남으로는 충분한 신뢰를 쌓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올해 안에 남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서로의 신뢰를 충분히 쌓은 뒤, 후속 조치를 이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이어질 북미간 실무회담에서 어떤 내용이 오갈 것 인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싱가포르 회담 이후 실무회담이 있을 것을 예고했다. 실무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포괄적으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 안정 보장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담보하는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실무회담에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나오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CVID 문구가 명기되지 않은 공동합의문에 대해 벌써부터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치르기 전에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불러서 CVID 문구가 들어간 또 다른 합의문을 작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이행이 어느 정도 이뤄진 후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싱가포르 회담보다 진전된 합의 내용이 도출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