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LAB2050 이원재 대표
AI·로봇 발달로 ‘노동’의 패러다임 바뀔 것
‘먹고사니즘’ 해결하려면 정책혁신 시도해야
우리나라 기본소득 정책, 과학적 접근 필요
지역별 특성 살린 ‘청년기본소득’ 실험 구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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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2050 이원재 대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4차 산업혁명이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소식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새롭고 편리한 기술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의 이면에는 인간보다 훨씬 능률이 높고 불평도 하지 않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 또한 크게 자리잡고 있다.

변화한 세상에 걸맞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에 새 시대에 ‘연착륙’하는 전략으로 특정 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정책실험’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해 활발히 활동 중인 사회 혁신가가 있다. ‘다음세대 정책실험실’ LAB2050의 이원재(46) 대표다. 그는 지난달 15일 국제 콘퍼런스 ‘새로운상상 2018’을 개최해 박원순 서울시장,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 핀란드 사회복지국 올리 캉가스 국장 등과 함께 사회 비전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2일 이 대표를 만나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정책실험에 대해 물었다. 그가 상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전환의 시대, ‘노동’의 개념도 바뀐다

Q. 4차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시대를 앞두고 ‘먹고사니즘’이 화두다. 인간은 정말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일자리는 분명 점점 사라져갈 거다. 하지만 이는 산업혁명 이후 계속해서 진행돼온 현상이다. 기계는 지속해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왔다. 실제로 제조업 분야 노동은 대부분 기계의 몫이 됐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는데 다만 속도가 굉장히 빠를 뿐이다. 

문제는 이전에는 기계가 육체노동만 대신한 반면, 이제는 지식·서비스 노동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일자리는 사라져도 사람들은 여전히 일은 할 거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동영상을 만드는 걸 좋아하면 돈이라는 ‘보상’이 없어도 기꺼이 그 일을 한다. 일의 개념이 보상과 무관한 시대가 오는 거다.

Q. 새로운 시대엔 ‘일’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사람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나눠 설명했다. 여기서 노동은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이고, 작업은 예술·제작 활동, 행위는 정치·사회적 활동이다. 앞으로는 이 세 활동의 경계가 희미해져갈 거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메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 일감을 가진 수요자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공급자를 연결하는 서비스) 등과 같은 플랫폼 경제가 그렇다. 문서 제작이나 번역 등의 작업을 요청하면 처음 보는 사람이 일을 해준다. 앞으로는 기존의 전통적 고용 관계 대신 이처럼 간헐적 노동을 하는 비고용 노동자가 늘어날 거다. 그런데 이게 고용 불안을 키운다는 게 문제다. 일을 하고도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Q. ‘고용 불안’이 문제라는 지적으로 들린다.

20세기 산업사회의 복지는 현재 고용된 이들의 일자리를 지켜주는 정책이었다. 고용이 사회의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고용된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 노동자는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용되지 않은 사람이 취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복지 정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앞으론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첨예한 대립만 봐도 알 수 있듯, 고용의 안정성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발적인 활동을 원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다. 다시 말해 노동, 가족 관계 등 기존의 사회 구조가 와해되는 과정에 있다. 결국 기존과는 다른 정책이 요구되는데 아직은 그게 뭔지 모른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제일의 복지 수준을 자랑하는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고용불안’ 해결하려면 다양한 정책실험 시도해야

Q.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정책실험을 통한 사회 혁신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책을 구상하고 작은 규모의 정책실험을 통해 과학적인 검증 작업을 하는 거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2000년대부터 이러한 움직임을 보였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기존의 복지국가 틀에 변화가 요구됐다. 이런 와중에 기술 혁명이 도래했고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 핀란드에서 지난해 1월부터 2년 계획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정부 차원에서 장기실업자(25~58세)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조건 없이 매달 569유로(약 72만원)를 지급하며 추이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이 실험은 핀란드 국민 전체의 대표성을 갖도록 인구 구조를 반영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Q. 기본소득이 대안인 이유는 뭘까.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복지 모델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재보험이 처음 도입됐을 때는 공장 근로가 표준적인 노동이었다. 일하다가 다치면 산재보험을 신청했고 지급여부를 심사하는 기준이 명확했다. 반면 요즘 흔한 건 목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우울증 같은 질환이다. 이런 질병은 노동과의 인과관계를 따지기가 까다롭다. 

게다가 여러 복지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들,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연금공단, 산재보험공단, 건강보험공단 등을 관리하는 비용도 들어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복지 대상 여부를 따지는 데 비용을 쓰는 대신 모두에게 다 비슷한 종류의 수당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이게 유럽 복지국가 기본소득 논의의 핵심이다. 

LAB2050 이원재 대표 ⓒ투데이신문

Q.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내년 1월 끝난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파장을 예측해 본다면.

파장이 매우 클 것 같다. 유럽은 일찍이 다양한 정책실험을 해왔다. 행동경제학을 적용한 영국의 폴리시랩, 덴마크의 마인드랩, 핀란드의 민간단체 데모스 헬싱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책의제 가운데 제일 뜨거운 게 기본소득제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지금까지 나온 것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다. 물론 세대를 특정하고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조건인 보편성·무조건성·충분성 면에서 한계가 있지만 명확한 가설을 세우고 세밀하게 통제하는 실험이라 기대가 크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날 거다. 어쩌면 기존 복지국가의 틀을 뒤흔들 수도 있다.

Q. 기본소득과 관련한 다른 실험은 없는가.

미국에서도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2016년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가 2개 주에서 1000명에게 3~5년간 매달 1000달러(한화 약 110만원)를 지급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인 크리스 휴즈가 설립한 ‘이코노믹 시큐리티 프로젝트’(ESP)도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정책 이슈가 거의 없었는데 현재 민주당 진보 계열에서 기본소득제를 포함해 현금 수당을 대폭 늘리는 방향의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이탈리아에서도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이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들고나와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었다.

우리나라 기본소득 실험, 아쉬움은 ‘비과학적 접근’

Q.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에도 기본소득을 모델로 한 정책이 여럿 있다. 중앙정부 정책으로 기초연금, 아동수당이 있고, 지방정부에선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이 있다. 다만 대상을 한정했다는 점이 아쉽다. 아동수당은 소득 하위 90% 가구에, 기초연금은 70% 가구에 지급한다.

기본소득에 취지에 맞게 보편적으로 지급했으면 한다. 한 연구결과는 아동수당을 받지 않는 소득 상위 10%를 가려내는 데 드는 행정비용이 모두에게 수당을 주는 것보다 더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이 문제는 소득 상위자에게 세금을 더 부담하도록 하면 해결될 문제다.

Q.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고 보나.

정확히 알 수 없다. 과학적으로 통제된 실험이 아니다 보니 결과에서 피드백을 도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사례처럼 제대로 실험해야 한다. 단지 새로운 걸 해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책을 폈을 때와 안 폈을 때를 비교하면 뭐가 좋고 나쁜지 밝혀내는 게 실험이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Q. 여전히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다. 지난 4월에는 일부 보수매체들에서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고 오보를 내기도 했다.

‘공짜 돈’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석해 기사를 썼다. 일을 안 해도 국가에서 돈을 주는 ‘퍼주기’ 복지가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실업자가 직장을 구하면 지급이 끊기는 현행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취업을 해도 계속 돈을 주고 취업률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실험이다. 실험의 목적과 방식을 잘못 이해한 거다. 우리나라의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다.

지역특성 살린 ’청년기본소득‘ 실험한다

Q. 우리나라에서 어떤 정책실험을 해볼 수 있을까. 

청년 기본소득 실험을 세 가지 성격의 지역으로 나눠 해보면 좋겠다. 첫 번째는 서울 등 대도시다. 타 지역에 비해서 일자리는 많지만 경쟁이 치열해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다. 두 번째는 제조업 공장 빠지면서 고용 상황이 악화된 군산, 거제, 통영 등 위기 지역이다. 마지막은 소멸이 예정된 지방 지역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군 단위 지역 가운데 다수가 20~30년 안에 사실상 소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렇게 구분한 세 지역에 청년이 이주해 살기만 해도 수당을 주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는 거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도 규모가 큰 실험은 아니다. 하지만 정교하게 설계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핀란드 사례를 참고하면 우리나라에서도 해볼 만하다고 본다.

Q.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에 정책실험이 언급됐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소식을 접하고 직접 연락해보니 아직 진행될 기미는 없는 것 같다. 정책실험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관련 계획은 전무한 실정이다. 기재부 장관이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줬으면 한다.

Q. LAB2050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일단은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는 대로 제법 큰 규모의 자치단체와 함께 정책실험을 설계하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실험을 정교하게 설계해 영향력을 키우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리고 관련 민간단체와의 협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런 실험에서 앞서 언급한 대도시·위기지역·소멸지역을 비교하는 실험을 해보려 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공상과학이 아니다. 삶이 실제로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드론이 날아다니는 미래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려면 어떤 사회장치가 뒷받침돼야 하는지 계속해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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