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대패로 가시화된 ‘위기의 보수’
시대변화 따른 유권자 요구 충족 못해
과거·미래측면 모두서 실망시킨 보수
보수 재정립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

자유한국당 홍준표(오른쪽)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오른쪽)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보고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보수의 위기’라는 표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며 보수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이명박 정권의 그것과 더해져 보수정권 10년의 실패로 커지면서 보수 적통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보수 궤멸’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보수는 지금’이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 관련 전문가들과 논문 등을 통해 현재 한국 보수의 상황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보수가 나아갈 길에 대해 살펴본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 6.13 지방선거는 보수의 역대급 패배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승리와 대비되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일방적 패배 속에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던 경북 구미까지 민주당에 내줬다.

이러한 대패 이후 보수야당들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이 예고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14일 사퇴했고, 안철수 후보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김문수 후보에 밀려 다시 한번 3위를 기록, 정계은퇴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처럼 이번 지선을 통해 보수의 위기가 그 실체적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앞으로 보수가 나아갈 새로운 길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왼쪽) 대표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가 14일 6.13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한 후 고개 숙이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왼쪽) 대표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가 14일 6.13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한 후 고개 숙이고 있다. ⓒ뉴시스

‘역대급 패배’한 보수

이번 지선에서 보수는 대패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는 지난 13일 오후 6시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10분여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쳤고, 홍 대표는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광역단체장 17곳 가운데 14곳을 석권한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TK(대구·경북)를 지키는 데 그쳤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총 226곳 중 민주당은 2/3에 달하는 151곳에서 승리했다. 그에 반해 자유한국당은 TK, 경남을 중심으로 53곳을 얻는데 머물렀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총 12석 중 11석을 싹쓸이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텃밭인 경북 김천에서조차 무소속 후보와 493표차 접전 끝에 1석을 확보한 게 전부였다.

이러한 보수의 참패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대 변화에 따른 유권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2016년 총선부터해서 벌써 3번째 패배인데, 세 선거의 특징이 25~30%에 달하는 보수층을 대상으로만 선거운동을 했고 정당운영을 한 것”이라며 “이 같은 축소 지향적 정당운영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엄 소장은 “또한 유권자들은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번 지선에 올드보이들을 대거 공천하는 등 그 기대에 전혀 부합하지 못했다”며 “시대적 흐름인 지역주의 청산도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당 대표부터 TK로 지구당을 옮기는 등 이런 구태의연한 지역주의에 기댔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의 정체성이나 이념지향도 너무 강경보수 일변도에 머물러있었던 것 같다”며 “그런 부분들이 현재 유권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치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통화에서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했고, 보수의 미래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못한 것, 이 두 가지가 결정적이었다”며 “자유한국당이 과거 측면, 미래 측면 모두에서 유권자에게 실망을 안겨줬다”고 평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보수 재정립에 대한 제언

이번 지선에서의 대패로 보수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을 중심으로 보수 재정립에 대한 요구들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보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언급하며 그동안 보수세력이 유지해왔던 담론 전략에 대한 재성찰을 촉구했다.

충북대 사회학과 이항우 교수는 “보수가 가장 시급하게 척결해야 될 과제는 호남이나 민주당 세력 등을 정치적인 동반자로 보지 못하고 북한과 같은 적으로 몰아붙이는 이념 과잉의 태도”라며 “보수가 새로 거듭나려면 종북, 포퓰리즘 담론 등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존 보수의 담론은 너무나 경직되고 이념과잉에 빠졌으며, 강자중심의 논리에 토대를 뒀다”며 “최근 페미니즘 집회 등 새로운 생각이 다수 분출되고 있는데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려면 보수가 기존에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담론 전략에 대한 비판과 성찰,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수정당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은 “일단 보수세력을 중간에 정치적으로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정당이 정비돼야겠다”며 “보수정당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으려면 국민 다수의 생각을 따라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또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까 변화하는 가운데 보수의 가치를 정립해야겠다”며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 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보수세력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윤 실장은 “국민들은 아직도 (보수정당이) 정신을 덜 차렸다고 보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저들이 완전히 심판받은 게 아니다’, ‘심판을 못 받았으니까 반성도 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수 진영에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실패했다는 걸 대부분 인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없다는 게 제일 문제”라며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 같은 보수정당의 재정비를 위해서는 과거 세력과의 결별 등 인적쇄신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엄경영 소장은 “중도보수 혁신을 통한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정당을 내놓고 국민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며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정당 건설과 같은 혁신적인 정당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고 헤쳐모여식의 제3지대 재창당이 유일한 해법이라 본다”고 말했다.

더불어 “2016년 총선부터 지금까지 세 번의 선거에 임했던 과거 보수와의 결별을 과감히 선언하고 당 해체에 준하는 쇄신작업을 하지 않으면 2020년 총선도 한번 더 심판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훈 박사는 “우선 과거에 대한 확실한 반성을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정이나 국정농단 등에 대해 확실하게 사죄하고, 반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며 “미래 비전과 관련해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홍준표 대표까지도 걸었던 극우에 가까운 노선을 폐기하고, 건전보수·중도보수에 입각한 유연한 보수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은 기존 친이·친박계 외에 리더십부터 시작해 다음 총선에서의 대대적인 인적쇄신까지 생각한 당내 인적쇄신이 수반돼야 한다”며 “이념지향성과 정책 지향적 면에서 중도보수 지향적인 인물들, 능력이 검증된 젊은 전문가 그룹으로 인적네트워크를 새롭게 구성해 당내 일정한 역할도 부여하고 다음번 공천 때 대거 투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 전문가들의 제언을 종합해보면 보수는 재정립을 위해 △그간 이어온 경직되고 이념과잉·강자중심인 담론 전략에 대한 성찰과 반성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한 철저한 반성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정당 건설 △극우노선 폐기 △건전보수·중도보수에 입각한 유연 보수주의로의 전환 △중도보수적 인적쇄신 등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보수주의와 그 세력들은 반공과 친미, 경제성장제일주의 등 사상적 기반과 분단질서의 공고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주도권을 유지해왔다.

그렇게 견고하던 보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9년을 거치며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고, 급진전된 한반도 유화 무드에 반공이라는 기반마저 꺾이며 지선에서 역대급 참패를 했다.

이번 지선의 결과로 촉발된 앞으로의 대대적인 보수세력의 개혁방향은 보수가 다시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 아니면 오는 2020년 총선에서도 다시 심판받을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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