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연염색 접목한 여성복 브랜드 ‘얀제이’ 런칭한 이준 대표

송가그룹 얀제이 이준 대표 ⓒ투데이신문
송가그룹 이준 대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천연염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구멍이 송송 뚫린 소재에 펑퍼짐한 실루엣이 더해진 편안한 옷이라는 이미지를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모던한 자연주의’를 표방한 패션기업이 있다. 30여년간 패션 디자이너로 일해온 어머니 송석자 회장과 해외에서 경영과 마케팅 경험을 쌓은 아들 이준 대표가 합심해 세운 송가그룹이다.

송가그룹은 지난 3월 천연염색 업계에서는 이례적으로 30~40대를 겨냥한 여성복 브랜드 ‘얀제이’를 런칭했다. 천연염색의 독특한 색감을 살리면서도 핏감을 강조하는 디자인을 접목해 소재의 한계에서 탈피한 것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5일 ‘천연염색 한류’를 꿈꾸는 이준(39) 대표를 만났다. 전통문화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가 가리키는 곳은 해외 시장이었다.

해외경험으로 깨우친 ‘한국의 美’
화학염색엔 없는 자연스러운 색감이 매력

Q. 천연염색은 공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쉽지 않은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송가그룹에 합류하기 전에는 해외 생활을 20년 넘게 해외에 머물며 수출입 사업을 했다. 그런데 외부인의 시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바라보니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잘 다듬어서 상품화하면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비즈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 말고도 해외 경험을 쌓았던 이들 가운데 한국의 미를 소재로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귀국을 준비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천연염색 원단을 접하고 크게 매료됐다. 패션업계에서 30년 넘게 종사한 어머니 송석자 회장의 노하우와 내가 가진 마케팅 능력을 접목하면 시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머니가 옷을 짓는 걸 보고 자랐기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당시 어머니는 사업을 잠시 쉬면서도 옷은 계속 짓고 계셨다.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각자 가진 능력을 살려 새로운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Q. 천연염색만의 매력은 뭘까.

천연염색은 원단 작업의 90% 이상이 수작업이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천연염색만이 가진 장점이 있다. 특히 자연스러운 색감이 매력이다. 예컨대 화학 약품으로 빨간색을 입히면 딱 선명한 빨간색이 나온다. 반면 천연염색으로 초록색을 내려면 노란색과 파란색 염재를 섞어야 한다. 중화 과정을 거쳐 두 가지 톤이 섞인 색이 나오는데 강렬한 원색에선 느낄 수 없는 은은한 매력이 있다. 이런 동양적 색감이 국내 시장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케팅포인트가 될 거라 본다.

Q. 천연염색 패션업계 동향은 어떤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전에 전국의 염색 장인을 찾아가는 등 3년 동안 시장조사에 나섰다. 천연염색의 메카 인사동을 비롯해 수도권과 지방 지역의 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해 직접 염색, 의류 제작, 판매까지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천연염색의 특성상 사업 규모가 커지면 인력 수급에 한계를 느껴 품질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천연염색으로 성공한 업체들도 일반 소재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모로 천연염색은 패션산업으로 운영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얀제이 매장 내부 ⓒ투데이신문
얀제이 매장 내부 ⓒ투데이신문

천연염색 업계엔 생소한 3040 여성복 브랜드 출시
심플한 디자인에 디테일 살리는 패션업계 트렌드 반영해

Q. 지난 3월 새로운 브랜드 ‘얀제이’를 런칭했다. 기존의 천연염색 브랜드와 어떤 점이 다른가. 

과거 송가그룹에서 송가혼, 어워 등의 천연염색 브랜드를 운영했다. 당시에는 100% 천연염색 제품을 내놓았다. 가격대가 높았고 디자인도 넉넉한 사이즈의 제품이 대부분이라 주 고객층인 60~70대 외엔 진입장벽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점을 보완해 얀제이는 30~40대 젊은 세대가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자연주의를 모던하게 풀어냈다. 천연염색 소재만 고집하는 대신 린넨, 마, 면 같은 일반 소재를 활용해 가격 경쟁력과 대중성을 높인 브랜드를 구상했다. 

Q. 60~70대가 즐겨 찾는 천연염색 업계에서 젊은 층을 타겟으로 삼는 파격을 택했다. 어떤 포인트에 집중했나.

천연염색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딱 떨어지는 핏감과 모던한 패턴을 도입했다. 또한 전통 한복에서 모티브를 얻어 어깨라인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A라인의 옷도 만들고 있다. 이런 옷은 몸매 보정 효과가 있고 옷을 입었을 때 앞모습뿐 아니라 뒤태도 아름답다.

요즘 패션업계 대세는 심플한 디자인에 디테일을 살리는 디자인이다. 이에 소재 면에서도 이탈리아와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한 고급 원단을 적절히 활용했다. 전통 소재만 사용하면 자칫 부담스럽거나 올드한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친숙한 소재에 천연소재를 배색으로 넣어 입기 편하면서도 독특한 디테일이 부각되는 옷을 만들고 있다.

Q. 천연염색은 수작업의 특성상 같은 디자인이라도 제품마다 무늬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품질을 일정하게 관리하려면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제품마다 무늬가 달라지는 건 수작업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다. 천연염색으로 만든 옷은 세상에 한 벌뿐이라는 점이라는 매력을 적절히 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객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무늬가 다르면 곤란하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염색을 하면서 샘플링 데이터를 수집해 오차 범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봉제 작업할 때도 신경 써야 한다. 같은 원단이라도 패턴과 색감이 달라서 대량생산 공장에 맡길 수 없다. 봉제 20~30년 경력의 봉제 장인과 작업하고 있다.

천연염색 소재를 활용한 얀제이의 셔츠 ⓒ얀제이
천연염색 소재를 활용한 얀제이의 셔츠 ⓒ얀제이

아시아권 중심으로 수출규모 키워가는 중 
뉴욕 디자인스쿨서도 ‘신선한 동양의 매력’ 인정받아

Q. 해외에서 다양한 품목의 수출입업을 하다가 패션업계에 입문했다. 이 업계만의 매력이 있다면.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 의류, 뷰티 상품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유통을 경험했다. 하지만 옷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까지 하는 건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접했다.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패션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처음엔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배운 게 있다 보니 확실히 일이 빨리 느는 것 같다. 소재와 디자인, 봉제가 궁합을 이뤄 좋은 품질의 옷이 나오고 그 옷을 입은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

Q. 해외 진출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은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해외 업체 몇 곳과 거래하고 있다. 특히 스카프가 인기가 많다. 서양에서 시장성을 가늠하기 위해 지난 3년간 해외 패션박람회나 소재박람회를 방문했다. 그러던 중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텍스타일(소재) 전문 교수와 미팅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제품을 보여주니 현지 시장에서도 충분히 인기를 끌 것이라며 무척 좋아했다. 여전히 서양에서는 동양적인 미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얀제이의 지향점이 내추럴하고 심플한 단순한 디자인인데 이게 요즘 패션업계 대세다. 앞으로도 해외 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려볼 계획이다.

송가그룹 이준 대표 ⓒ투데이신문
송가그룹 이준 대표 ⓒ투데이신문

경영, 실무 분담해 패밀리비지니스 한계 해결
천연염색 시장 키우기 위해 네트워크 구축·인재 양성도 나서 

Q. 중국에서 수출입업을 하다 한국으로 건너와 패밀리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내가 쌓은 마케팅 경험과 어머니가 쌓은 패션업계의 전문성을 접목하면 해외 시장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탈리아, 일본 등에는 몇 대째 하나의 사업을 물려받는 가업문화가 있다. 천연염색이라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전문성과 시장성을 두루 갖춘 브랜드를 구상하게 됐다.

Q. 어머니와 함께 일하다 보면 갈등은 없는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우려했던 부분이다. 패밀리비지니스는 사업 영역별로 분리가 안 될 때 문제가 된다. 특히 패션산업은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보니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송가그룹은 어머니와 내가 전문 분야를 명확히 나눠서 역할 분담을 한다. 어머니는 소재 개발, 염색 연구, 의류 제작을 전담하고, 나는 마케팅과 영업 실무, 해외 거래 쪽을 맡는다. 지금까지 갈등을 겪은 적은 한번도 없다.

Q. 송가그룹의 비전과 포부가 듣고 싶다.

천연염색이라는 훌륭한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게 안타깝다. 장인의 대를 이를 다음 세대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다. 젊은 층에서도 천연염색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취미 수준에 그친다. 사업으로 하기에는 시장의 수요가 적고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빨라질수록 자연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질 거다. 이런 니즈를 겨냥한다면 천연염색 패션업계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얀제이라는 브랜드의 성공을 넘어서 롤모델이 되고 싶다. 천연염색 업계의 최전선에서 상품성을 높이고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나주의 천연염색박물관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가는 등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인재 양성에도 나설 계획이다. 일단 시장이 만들어지면 능력 있는 인재들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질 거고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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