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식사장애
남성보단 여성에게서 발병 확률↑
원인, 사회·문화·유전 등 복합 작용
대인기피증·우울증 등 부작용 우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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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10년째 거식증을 앓고 있는 A(여·31)씨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날이 대다수다. 음식섭취를 거부하는 거식증은 식사장애(섭식장애, 식이장애) 중 하나로, 그가 유일하게 먹는 것은 액체로 된 음료가 전부다. 그중에서도 우유나 요구르트처럼 당도가 높은 음료는 피하고 아메리카노처럼 칼로리가 매우 낮은 음료만 마신다.

식사에 제한을 두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직장에는 ‘심장이 좋지 않아 짜게 못 먹는다’는 핑계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밖에서 식사 자리를 가질 때는 친구들의 경우 양해를 구하고 커피를 마신다거나 꼭 식사를 해야 되는 자리인 경우 적게 먹는 것이 티가 나지 않도록 한 음식을 다 같이 먹는 식당을 골라 간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던 A씨는 결국 지난해 직장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몸무게가 나가지 않아 퇴사 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현재는 건강 회복을 이유로 잠시 쉬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살찌는 게 가장 두렵다는 A씨.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그를 괴롭히고 식사장애는 과연 무엇일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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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까지 부르는 식사장애 공포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율리 교수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식사장애란 음식을 먹는 행위에 있어 나타나는 부적응적 증상들로 신체적·정신적·심리적·사회적 등의 기능을 손상시키는 정신질환이다. 마른 몸에 대한 욕구로 계속해서 식사를 거르고 약을 복용하거나 음식에 대한 조절감을 상실해 폭식을 동반하기도 한다.

현재 식사장애는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출간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인 ‘DSM-V’ 기준으로 진단된다. DSM-V에 따르면 대표적인 식사장애로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신경성 대식증(Bulimia Nervosa)이 있으며, 이 외에도 폭식장애(Binge Eating Disorder), 회피제한적 섭취장애 (Avoidant/Restrictive Food Intake Disorder) 등이 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흔히들 알고 있는 ‘거식증’으로 체중 증가와 비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음식 섭취를 거부해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증상이다. 심각한 저체중에도 불구하고 체중 증가를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 지속적이고 강박적으로 나타나며 자신의 신체를 왜곡해 인지하는 증상을 보인다. 체중과 체형이 자기평가에 지나친 영향을 미치고 자신의 체중을 부정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회피제한적 섭취장애’의 경우 신경성 식욕부진증처럼 마른 체중에 대한 집착을 보이진 않는다는데 차이가 있다.

‘신경성 대식증’은 소위 말해 ‘폭식증’으로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체중이 늘지 않도록 구토 등의 부적절한 보상행동이 동반되는 증상을 말한다. 반복적인 폭식행동과 보상행동이 평균 1주일에 1회 이상, 3개월여 동안 발생한다. 폭식을 하는 동안에는 어떤 음식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 자제력을 상실한다. 이후 체중이 늘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구토나 지나친 운동, 설사제, 이뇨제, 관장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보상행동을 보인다. 폭식증 역시 체중과 체형이 자기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우울감, 무기력감, 패배감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

‘폭식장애’는 마치 음식에 중독된 것처럼 일정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한다. 조절이 되지 않고 타인의 눈을 피해 주말이나 저녁에 몰아서 폭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폭식을 하고 나면 수치심과 죄책감, 우울감 등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신경성 대식증과는 다르게 폭식으로 힘들어하면서도 보상행동을 빈번하게 보이지 않고 체중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과체중이나 비만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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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장애는 영양불균형 등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의 식사가 어렵기 때문에 대인기피증 등 부작용을 동반한다. 심각한 경우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플로리다 마음 연구소 김소울 박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표적인 예로 거식증 환자는 음식의 부피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살을 뺀다는 가정하에 300kcal를 섭취한다고 하면 보통은 물과 피자 중에 물을 선택하겠지만 거식증 환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피가 작은 피자를 선택한다. 또 수시로 체중계에 올라가며 먹은 음식의 양만큼 몸무게가 늘어나는 게 당연한데 그게 모두 살이 될 거라는 공포감에 휩싸여있다. 때문에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짧게 자르는 경우도 있다. 생리가 멈추거나 탈모가 오기도 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머리카락은 빠지면서 몸에 털이 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식증 환자는 먹고 토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우울증이 극심해져 자살률이 매우 높다”면서 “식사장애는 인지왜곡 장애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찌는 걸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식사장애 환자는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게 어렵다. 폭식증 환자는 먹고 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외식을 할 때 가까이에 화장실이 있거나 집이 가까운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식증 환자의 경우에는 아예 음식을 거부하니까 애초에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A씨 또한 본지에 “사람들을 만나는 데 제약이 생기는 게 가장 힘들다. 만나면 밥을 먹는데 ‘소화가 안 된다’는 등의 핑계도 한두 번이다. 오랜 시간 거식증을 앓으며 가까운 친구들이나 거식증을 앓고 있는 사실을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단절된 인간관계가 많다”고 전했다.

폭식증을 겪고 있는 27세 여성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몸의 부위에 대한 표현을 위해 신체 전체샷을 찍고 출력한 후 외곽선을 따라 그린 그림. 실제로는 정상체중이었지만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며 더 날씬하게 자신의몸을 깎아서 원하는 체형을 그렸다  <사진 제공 = 김소울 박사>
폭식증을 겪고 있는 27세 여성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몸의 부위에 대한 표현을 위해 신체 전체샷을 찍고 출력한 후 외곽선을 따라 그린 그림. 실제로는 정상체중이었지만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며 더 날씬하게 자신의몸을 깎아서 원하는 체형을 그렸다  <사진 제공 = 김소울 박사>

식사장애, 남성보단 여성↑…원인은?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한 ‘식사장애 진료현황’에 따르면 환자의 호소 및 증세에 따른 1차 진단으로 식사장애 판정을 받은 환자가 ▲2013년 7388명 ▲2014년 7392명 ▲2015년 6845명 ▲2016년 7652명 ▲2017년 8168명으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2013년 1301명 ▲2014년 1208명 ▲2015년 1129명 ▲2016년 1447명 ▲2017년 1547명, 여성이 ▲2013년 6087명 ▲2014년 6184명 ▲2015년 5716명 ▲2016년 6210명 ▲2017년 6621명으로 상대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식사장애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사장애는 연령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모두가 걸릴 수 있지만 15~25세 여성이 가장 걸리기 쉽다. 모즐리회복센터 오승민 임상심리사는 “최근 매체와 미디어에 접근이 쉬워지면서 예쁘다고 여겨지는 신체상이 왜곡돼 있는데, 여성적 역할과 가치 판단을 확립해나가는 시기에 놓인 여성 청소년이나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사장애의 원인은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렵다.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대인관계, 사회 ·문화적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 요인이 될 수 있다.

첫 번째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배고픔, 식욕, 소화 등을 관장하는 시상하부와 신경 전달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식사장애가 발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요소와 식사장애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심리적 요인으로는 자신감 부족, 완벽주의 성향,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무가치하고 무능력함을 완벽주의적 행동으로 방어하려 하는데 음식을 조절해 불안과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그런 행동의 일환이다. 이로 인해 불안감, 분노, 공허함, 외로움, 우울증 등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문화적 요인으로는 대중매체에서 미의 기준을 획일화해 사람들로 하여금 다이어트를 강요한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만성적인 다이어트를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오승민 임상심리사는 “식사장애의 원인은 유전적 영향, 문화·사회적 영향, 심리학적인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기질적으로 타고나거나 완벽주의 성향, 자신감 부족, 우울증, 불안감 등에 취약해도 섭식 장애에 걸릴 수 있다. 또 마른 체형이나 완벽한 몸매를 조장하는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소울 박사는 식사장애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과도한 다이어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시작은 90% 이상이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에 의한 체중 감량이다. 식사장애 환자 가운데는 과거에는 통통했던 경우가 많다. 살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오다 다이어트로 살이 빠지고 나서 달라지는 태도 때문에 계속해서 살을 더 빼야 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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