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꾸준하게 늘고 있는 식사장애
완치 가능하지만 시간과 노력 필요해
늘어나는 환자 수, 예방 대책은 ‘글쎄’
식사장애에 대한 사회 관심 요구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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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식사장애(섭식장애·식이장애)는 최근 50년 동안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식사장애 초기에는 저체중 또는 과체중, 영양불균형 등의 비교적 가벼운 증상이 나타나지만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자살, 사회성 결여 등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국가 또는 비영리 기관 등에서 여러 가지 예방 및 치료 대책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국은 전문적인 치료기관은커녕 사회적으로 식사장애의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식사장애 예방과 치료를 위한 교육과 홍보, 전문가 양성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세 거식증 여성이 그린 상담 전(좌), 상담 후(우) 자화상 <사진 제공 = 김소울 박사>

식사장애 완치, 얼마든지 가능
단, 긴 시간과 노력 병행돼야

10년째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을 앓고 있는 A(여·31)씨는 “식사장애를 고치기 위해 상담도 받아보고 병원에 입원도 하는 등 정말 많은 노력을 해봤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빨리 고쳤어야 하는데 10년이란 시간 동안 만성화돼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 같다. 오늘도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신 거 말고는 먹는 게 없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배가 고프지도 않지만 그 배고픈 느낌이 좋을 때도 있다. 중독인 거 같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김율리 교수에 따르면 식사장애 치료 과정은 3단계를 거친다.

거식증 환자를 예컨대 첫 번째 ’의도 전 단계‘에서 식사장애 환자들은 거식증만이 해결책이고 자신을 도울 거란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두 번째 ‘의도 단계’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거식증으로 인해 잃은 점을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얻는 점에 대한 생각도 함께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세 번째 ‘결정 그리고 행동 단계’에서 거식증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세 번째 단계는 거식증 극복까지 수차례 반복된다. 이때 이뤄지는 적절한 치료가 거식증으로부터 벗어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식사장애를 짧은 기간 내에 한 번에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5년이 지난 후 거식증 환자의 50%는 건강을 회복했으며, 30%는 여전히 심각한 식사장애 상태에 머무르고 있고 20%는 생리를 하지 않거나 저체중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회복됐다 할지라도 몇 년이 지난 후 스트레스나 갑작스러운 체중 감소 등으로 인해 식사장애가 재발하는 사례도 있다.

식사장애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 있어서 식사장애가 시작된 나이, 겪어 온 기간 등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평생의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식사장애에 노출될 경우 건강 회복에 상당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으며 키, 골밀도, 2차 성징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아울러 인지적·정신적·사회적 성장을 이루는 시점이기 때문에 치료가 미뤄질 경우 향후 인지 기능과 정신사회적 기능이 제대로 발달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식사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치료 시점을 알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실이나, 환자의 의지, 주변의 도움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식사장애와 그에 따른 신체적·심리적·사회적 부작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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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늘지만 예방책은 부족
섭식장애 심각성 인식 우선돼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식사장애는 증가 추이를 보인다.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일찍이 식사장애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왔다.

2015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의 ‘4 Eating Disorder Assistants’ 탐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는 식사장애 환자들의 개인 상담이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NYU SHC(New York University Student Health Center)가 있다. 개인 상담에는 심리상담가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식사장애 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봤다. 단기간에 이뤄지는 개인 상담으로 식사장애를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거나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6~8명을 모아 놓고 함께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식사장애 치료·교육 비영리 기관인 CBL(The Center for Balanced Living)도 있다. CBL은 식사장애 치료, 교육, 연구 분야 권위자로 알려진 로라 힐(Laura Hill)이 자신이 처음으로 만난 식사장애 환자의 치료를 실패한 경험으로 설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CBL에서는 식사장애의 원인을 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치료를 진행한다. 재활치료와 함께 뇌와 식사장애의 관계에 대한 교육을 병행한다.

식사장애 환자에 대한 평가와 개입, 회복 후 지속적인 관리를 중심으로 재발병과 우울증, 약물 오남용을 예방하는 ERC(Eating Recovery Center)도 있다.

이 외에도 영국 정부는 지난 2014년 12월, 향후 5년 동안 약 1억5000만파운드(한화 약 2430억원)를 청소년 식사장애 치료를 위해 쓰겠다고 약속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식사장애 예방책과 치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식사장애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식사장애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나 기관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국가차원의 예방 및 치료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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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한편에서는 식사장애를 ‘선진국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많이 발병하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예방이나 치료 대책이 잘 발달돼 있는 거 같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예방이나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국가에는 주거형식으로 식사장애 환자들끼리 모여 사는 치료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던데 국내에도 도입됐으면 좋겠다. 식사장애는 입원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다 죽기 직전에 병원에 입원하는 건데 이때 최소한의 영양분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지 환자 의지가 달라지진 않는다.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환자들끼리 함께 살면서 식습관을 고쳐나가다 보면 치료에 대한 의지도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모즐리회복센터 오승민 임상심리사는 식사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심리사는 “사실 우리나라는 외국만큼 식사장애 예방이나 치료 대책이 잘 마련돼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식사장애를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신분열의 경우 환각, 환시, 망상 등 외부에서도 질환을 판단 가능한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만 식사장애는 섭식과 관련해서만 왜곡된 사고를 보이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장 생명에 직결되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못해 병을 키우기도 하고 병명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다가 다른 질환과 달리 보험 적용이 안 되고 치료비용이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기 어렵다”라며 “관련 의료 정책도 없고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식사장애 환자들은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오 심리사는 “사회적으로 식사장애에 대한 경각심이 고찰돼야 할 것 같다”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다이어트 방법, 올바른 체형이 어떤 건지 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식사장애는 다른 정신과 질환에 비해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환자들만을 위한 치료가 힘든 게 사실”이라며 “식사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전문가를 많이 배출하고 관련 치료 프로그램 개발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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