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갈등 소재 된 혐오
해방 이후 주류였던 빨갱이 프레임
촛불혁명 이후 혐오는 다원화되고
남녀 혐오, 가장 골칫거리 문제로
예멘 난민·성소수자 문제도 화두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여성단체 ‘불편한용기’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 2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성차별 수사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여성단체 ‘불편한용기’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 2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성차별 수사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촛불혁명 이전 보수는 소위 ‘빨갱이 프레임’을 만들어 진보 진영을 코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진보 진영이 득세하면서 빨갱이 프레임은 사라졌다. 하지만 뒤이어 혐오의 시대가 도래했다. 혐오는 상대와 나를 편갈라 갈등을 만들며, 상대에 대한 투쟁만이 해법이라 말한다. 이 같은 혐오에 대한 사회·정치적 근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과거 구석기 시대부터 갈등은 늘 존재해왔고, 사람들은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구사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광복 이후 주된 갈등은 바로 ‘빨갱이 프레임’이었다. 짙은 냉전 이데올로기 하에서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이 프레임을 사용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등 군사정권에 이은 보수정권에서는 빨갱이 프레임을 통해 상대에게 올가미를 씌워 정적을 제거했다. 빨갱이 프레임은 보수정권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그야말로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였다. 자신의 정권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세워 처형대 위에 오르게 하면 국민들은 알아서 손가락질하며 그들을 정치적으로 처형시켰다. 그만큼 빨갱이 프레임은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관통해온 혐오 프레임이었다.

사라진 빨갱이 프레임

하지만 지난 촛불혁명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빨갱이 프레임이 먹혀들어 가지 않는 사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몰아세웠던 사람들은 법의 심판대 위에 올랐고, 현 상황을 ‘좌파광풍’이라고 규정했던 보수야당 대표는 짐을 싸들고 집으로 갔다. 아울러 올해만 벌써 두 차례 이어진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으로 이제 빨갱이 프레임은 그 위세를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빨갱이 프레임이 없어졌다고 해서 상대를 혐오하는 프레임도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라 오히려 다양화됐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시선이다. 대표적인 것이 몇 년 전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던 남녀 혐오 문제다. 남녀 혐오는 이제 사회 전반에 퍼진 모습이다. 여권신장과 성평등에 따른 반사현상으로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일베 등 인터넷커뮤니티에서는 여성혐오를 부추기고 있고, 워마드·메갈리아 등의 커뮤니티에서도 남성혐오를 부추기면서 남녀 혐오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같은 혐오는 극단주의로 발현되면서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여성 공천 할당제나 공무원 사회의 여성과 남성 비율 문제 등 각종 남녀 간 비율 문제를 놓고 정치적 갈등까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선거벽보를 한 남성이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남성은 페미니스트 후보가 당선되면 남성의 일자리가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선거 벽보를 훼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할당제는 선거 공천 시기 때마다 매번 반복돼 왔던 문제이지만 실제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여성할당제 문제는 해당 지역구 다른 남성 후보들의 반발로 인해 남녀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예멘 난민들이 지난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예멘 난민들이 지난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급부상하는 난민 혐오

아울러 최근 급속도로 불거지고 있는 혐오는 이슬람 난민 혐오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대거 급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이들을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 상당수는 이슬람 남자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성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면서 이슬람 난민을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슬람 난민에 대한 온정주의가 작동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슬람 난민에 대한 혐오는 더욱 부추겨지고 있다. 더불어 이슬람 난민에 대해 지원을 해주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경제적 목적이나 국내체류 수단으로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난민법 개정을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현재 악화된 여론을 생각하면 결국 난민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민주당은 난민법 개정에 대해 별다른 입장정리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다른 야당들은 당 지도부 구성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난민법 개정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성소수자 문제는 다음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정치권 안팎에서 내다보고 있는 문제다. 성소수자를 인권적 차원에서 바라보느냐, 혐오적 차원에서 바라보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당시 대선 후보는 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에게 군대 내 동성애 허용 문제에 대해 질문해 문재인 후보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따라서 다음 대선에서도 이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일부 후보들이 동성애 문제를 들고나오면서 앞으로 동성애 문제는 정치권에서 새로운 이슈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혐오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처럼 혐오가 사회적 현상을 넘어 정치권의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게 될 경우, 민주주의적 가치를 위배하게 될 수도 있다. 특정 성적 지향이나 특정 종교 등을 자신의 정체성 중 일부로 삼아, 타인의 생각을 배제하거나 이를 선동하면서 정치적 갈등을 유발해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혐오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혐오에 대한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있다. 일부에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혐오 현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혐오 현상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혐오 현상을 제거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정치권이 혐오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했다면 이제는 혐오를 근절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분열되면서 극단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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