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문학서 해석 둘러싼 오역 논란 제기돼
수차례 번역 완료된 고전명작에도 문제제기
직역·의역 간 논쟁…원문중심주의 vs 가독성
오역 비난, 번역의 본질 고려해 신중 기해야

소통의 수단인 언어는 때로 장벽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은 번역과 통역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상대의 말과 글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다. 특히 번역은 일상의 수준을 넘어 학문과 지식의 교류에 있어 여러 언어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언어 간 차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보니 시각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오역’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번역의 방향은 번역가의 해석에 좌우되는 만큼 ‘옳은 번역’을 판정할 기준이 없어 논쟁은 미궁에 빠지기 일쑤다. 실제로 번역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려지지 않아 번역가와 대중의 입장 차이도 좁혀지지 않는 실정이다.

<투데이신문>은 번역 환경의 개선을 모색하며 ‘더 나은 번역을 위하여’를 기획했다. 먼저 오역 논란이 불거지는 원인을 분석한 뒤 번역이 나아지기 위한 방법으로 번역가의 처우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번역가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번역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일’이다. 그런데 언어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다 보니 번역 과정에서 의미와 맥락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점에서 번역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 ‘미완의 작업’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더 나은 번역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번역상 해석의 차이를 두고 잘못된 번역, 즉 ‘오역’이라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됐다. 더 나은 번역을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로 인해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다 보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특히 미묘한 뉘앙스에 따라 감상이 좌우되는 문화 콘텐츠와 관련한 번역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겨져 있다.

영화·문학서 오역 논란 끊이지 않아

문화계의 오역 논란은 잊을 만하면 불거져 사회를 달군다. 해외 콘텐츠 마니아가 늘고 대중 전반의 외국어 실력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렇듯 번역 문제가 큰 관심을 모으는 것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재미는 물론 가치와 평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인기에 비례해 큰 관심을 받는 영화계는 물론, 문학계에서도 엇갈리는 해석으로 논쟁에 불이 붙곤 한다. 

최근 단연 뜨거웠던 이슈는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의 자막 오역 논란이다. 영화 후반부 닥터스트레인지의 대사인 ‘It's the end game’가 영화 흐름에 맞지 않게 잘못 번역됐다는 지적이다. 번역을 맡은 박지훈 번역가는 이를 ‘가망이 없다’고 번역했으나 맥락상 다음 시리즈를 암시하도록 ‘마지막 단계다’ 혹은 ‘마지막 관문이다’라고 번역했어야 적절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제작사인 마블 측은 “마블 영화는 해석의 차이가 있어 정답이 없다”면서 “답은 후속작인 <어벤져스4>에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번역가의 재량을 감안하면 섣불리 오역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난 4월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지훈 번역가의 작품(번역) 참여를 반대합니다’라는 글은 8477명의 지지를 얻었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번역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오래된 문학계에서도 오역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 2016년 맨부커인터네셔널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본에서 중대한 오역이 있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번역을 맡은 데보라 스미스가 일부 문장을 누락하거나 왜곡해 ‘완전히 다른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여러 전문가를 통해 쏟아졌다. 

고려대 불문과 조재룡 교수는 지난 3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어 문법, 통사, 구문, 어휘 등을 신경쓰기 보다 원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 맞도록 낱말을 배치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며 스미스씨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주인공 영혜의 수동적이고 몽환적인 캐릭터가 번역 과정에서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계속된 문제 제기에 스미스는 지난 1월 직접 입장을 밝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대회 국제인문포럼’에 참석한 그는 “‘창조적’이지 않은 번역은 있을 수 없다”면서 “언어는 저마다 다르게 기능하기 때문에 차이, 변화, 해석이 있는 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충실한 번역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과는 별개로 스미스는 한강 작가와 상의를 거쳐 60여개의 수정 목록을 출판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br>
ⓒ게티이미지뱅크

‘고전명작’에도 튄 불똥…이정서 “직역 안 하는 기존의 번역 틀렸다”

오역 문제는 최근 발표된 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올라 이미 수차례 번역됐던 작품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정서(본명 이대식) 번역가는 지난 2014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하며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홍보 문구를 내세웠다. 이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서와 블로그를 통해 ‘카뮈 전문가’로 불리는 고려대 불문학과 김화영 교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의 번역본이 ‘오류 투성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 번역가는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오역으로 인해 소설의 내용이 바뀌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단도로 뫼르소를 위협하는 아랍인을 묘사하는 문장에서 김 교수는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가는 “칼을 뽑아서 태양 안에 있는 내게 겨누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뫼르소의 정당방위가 설명되며 이것이 카뮈의 원래 의도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번역가는 불어의 2인칭 대명사 가운데 비존칭인 ‘tu’와 존칭인 ‘vous’를 살려서 번역하지 않는 등 여러 부분에서 원작의 뉘앙스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 등 여러 부분을 오역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학계와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당시 다수 매체에서 관련 보도가 줄을 이었으나 공통적으로 번역 현장의 실정을 무시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장정일 작가는 지난 2014년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이 번역가가 지적한 대부분의 사항이 ‘해석의 차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장 작가는 “이정서는 수학 문제의 답도 하나인 것처럼 번역 문제의 답도 사실은 하나”라고 말한다”며 “번역상의 진짜 실수와 번역가의 다른 언어 선택 둘 다 오역이라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이 번역가가 기존의 번역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이 번역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번역의 주류는 의역인데, 이는 번역가의 무지와 나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원문을 살리는 직역을 해야 작가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직역에 대한 확신을 거듭 강조했다. 이 번역가는 “번역에는 답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작가는 한 가지 의미로 썼고 번역은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는 영어와 언어적 특성이 달라 의역을 하지 않으면 번역이 불가능하단 건 명백한 오해”라며 “직접 책 4권을 번역해 보니 대명사와 서술구조, 심지어 쉼표까지 살려서 번역하는 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의역이 번역의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뭘까. 이 번역가는 “직역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영미권에서 영어와 불어간 번역의 어려움이 있어 나온 얘기”라며 “불어에는 존칭 표현이 있지만 영어엔 없어 불가피하게 의역해야 할 경우가 생기지만 한국어에는 존칭이 있으니 원문을 살려 번역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오역을 판단하는 신중한 태도 요구돼

하지만 이 번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번역가는 의역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언어별로 문법과 구조가 다르고 단어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아 의미를 살려 변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출발어와 도착어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보니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독자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인문사회과학 교양서, 소설 등 140여권의 책을 번역해 온 이종인 번역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직역은 주어, 동사, 목적어 등의 문장구조를 살리고 어떤 단어가 명사형으로 쓰였으면 명사형으로 쓰는 등의 방법으로 원문의 문체가 상당히 보존될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그건 불가능하다”며 “언어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대일로 대응하면 번역문은 지루하고 산만해서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말했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이종인 번역가는 이어 “영어는 주어가 없으면 문장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어는 주어가 없는 게 매우 많다. 목적어도 때로는 생략한다”면서 “문장을 끊는 것과 관련해서는 예를 들어 영어에선 ‘He is a boy’라는 문장이 있다면 뒤에 who를 붙이고 오른쪽으로 한없이 쓸 수 있다”면서 “반면 우리말은 boy에 대한 설명이 왼쪽으로 늘어나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한 이 번역가는 “원서랑 100% 똑같은 번역서는 없으며 책 한 권의 번역서가 100개라도 다 다를 수 있다”면서 “원문의 문체를 살린다는 이상은 높지만 실제로 현장의 사정을 무시하고 이를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직역을 중시하는 이정서 번역가의 지론은 직역과 의역 사이의 오래된 논쟁과 결부돼 있다. 현재도 번역가에게 가독성을 중시해 의역할지는 어느 한쪽을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희재 번역가는 저서 <번역의 탄생>에서 ”(직역은) 문장이 딱딱하게 느껴지더라도 출발어의 독특한 구조와 표현을 살려주려는 태도“이며 ”(의역은) 도착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드려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이 번역가는 번역은 선택의 문제이며 글의 종류, 타겟 독자의 수준, 번역 문화의 풍토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여행기, 철학서, 자연과학서, 제품설명서 등의 순으로 뒤로 갈수록 원문에 담긴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직역이 중시되며, 영미권은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의역하는 풍토가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직역의 전통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처럼 번역에 대한 원칙이 모호하다 보니 오역 논란이 불거져도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엇보다 오역을 판단할 때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김욱동 번역가는 저서 <번역의 미로>에서 “오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를 오역으로, 어디까지를 해석의 영역에 맡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면서 “‘번역’에서는 함부로 ‘반역(反逆)’의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번역과 반역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며 객관적인 평가나 판단이 아니라 주관적인 평가와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오역 지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번역 담론의 중심이 돼 다른 논의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 정영목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오역도 번역 논의의 한 부분이지만 결정적으로 지배할 만한 담론은 아니다”라면서 “마치 채점을 하듯이 어떤 번역이 옳으냐 그르냐에만 함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번역은 미완의 작업’이라며 지나친 완벽주의를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작가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온 그레고리 라바사는 저서 <번역을 위한 변명>에서 “우리 번역자가 원서의 말들을 번역하면서, 저자가 당초 그 말들을 쓰면서 느꼈던 것을 번역어 상태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가”라면서 “우리는 저자를 배신하면서 자동으로 우리의 다양한 독자층을 배신하게 된다”고 번역 행위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이처럼 번역 문제에 있어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정답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번역의 본질을 감안한다면 오역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데 있어 단정적으로 확신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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