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안의 자식’ 아닌 내보내고 싶은 ‘캥거루족’
‘품 안의 자식’ 아닌 내보내고 싶은 ‘캥거루족’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8.07.07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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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력 의존
취업·혼인 연령 상승, 저임금 등 원인
부모세대 노후준비에 부담으로 작용
ⓒ프리큐레이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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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대학 졸업 후에도 자립할 수 없어 부모와 동거하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캥거루족’이 증가하면서 부모세대의 노후 불안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미국 뉴욕주의 한 부부가 8년이 넘도록 무직 상태로 집에 얹혀사는 30대 아들을 상대로 ‘집에서 나가달라’며 소송을 걸어 화제가 됐다.

뉴욕주 북부 카밀러스에 사는 마크 로톤도와 아내 크리스티나는 지난 2월부터 아들 마이클에게 5차례 편지를 보내 ‘이사비용 1100달러(한화 약 120만원)를 지원하겠다’, ‘2주 안에 집에서 나가달라’, ‘노력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들에게 독립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들은 부모의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부모는 ‘아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의 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미국의 25~29세 성인 중 33%가 부모 또는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80년의 13%보다 약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미국에서는 ‘트윅스터(twixter·졸업 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부모 집에 얹혀사는 세대)', 영국에서는 ’키퍼스(kippers·부모의 퇴직연금을 축내는 사람)', 독일에서는 ‘네스트호커(nesthocker·집에 눌러앉아 사는 사람)’, 일본에서는 ‘기생독신(寄生獨身)’ 등으로 불리는 캥거루족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캥거루족’을 일컫는 표현. 미국은 트윅스터(Twixter), 캐나다는 부메랑키즈(Boomerang Kids), 프랑스는 탕기(Tanguy), 영국은 키퍼스(Kippers), 독일은 네스트호커(Nesthocker), 일본은 기생독신(寄生獨身)으로 부르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세계 각국에서 ‘캥거루족’을 일컫는 표현. 미국은 트윅스터(Twixter), 캐나다는 부메랑키즈(Boomerang Kids), 프랑스는 탕기(Tanguy), 영국은 키퍼스(Kippers), 독일은 네스트호커(Nesthocker), 일본은 기생독신(寄生獨身)으로 부르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캥거루족 증가’ 세계적 추세…한국도 꾸준히 증가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노동패널 자료에 따르면 20~34세 청년의 56.8%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직장인 2명 중 1명은 부모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달 11일 아르바이트 중개사이트 알바몬이 미혼 20~30대 8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6.1%가 현재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20대 78.3%, 30대 66.4%로 나타났으며 취업준비생 79.0%, 학생 76.4%, 직장인 69.5%로 집계돼 취업 여부에 따른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응답자들은 부모와 함께 사는 이유로 ▲월세, 생활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66.9%) ▲부모가 독립을 허락하지 않아서(12.1%) ▲학교·직장 등 통근에 문제가 없어서(9.8%)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7.3%) ▲혼자 살면 외로워서(1.8%) 등을 꼽았다.

또 적절한 독립 시기는 ▲취업 이후 48.8% ▲결혼 이후 26.4% ▲20세 이후 19.1%로 나타났다.

‘취업 이후’가 적절한 독립 시기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으나 취업 시기가 늦어지면서 부모세대의 부담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청년실업률 조사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청년실업률은 10%를 기록했다. 그러나 취업준비생은 이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이들을 포함한다면 훨씬 많은 수의 청년이 잠재적 실업상태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취업자의 첫 취업 연령은 평균 26.2세로 5년 전과 비교해 0.7세 늦어졌다. 2006년 이전과 비교하면 1.9세 높아졌다.

고용형태의 질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2006년 이전에는 10명 중 8명이 정규직으로 첫 취업을 했으나 최근 3년 내에는 10명 중 6명만이 첫 직장을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있다.

또 취업준비생의 평균 취업 준비기간은 1.4년이며 취업준비 비용은 대부분 가족의 도움, 아르바이트 등으로 마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 이후’가 적절한 독립 시기라는 답변은 응답자 수가 두 번째로 많았으나 초혼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의 평균 초혼 연령 조사에 따르면 1990년 평균 초혼 연령은 여성 24.78세, 남성 27.79세였던 것이 2000년에는 여성 26.49세, 남성 29.28세로 증가했으며 2010년에는 여성 28.91세, 남성 31.84세, 지난해에는 여성 30.24세, 남성 32.94세까지 높아졌다. 20년 사이 평균 초혼 연령이 여성 5.46세, 남성 5.15세 상승한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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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도 부모에 손 벌릴 수밖에

결혼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신(新)캥거루족’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경기연구원의 <이슈&진단>에 발표된 논문 <신캥거루족의 두 얼굴: 우려와 기대>에 따르면 신캥거루족은 ‘만 25세를 기준으로 취업여부와 관계없이 결혼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주거비용, 육아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2015 신혼부부가구 주거실태 패널조사>에 따르면 만 25세 이상 신혼부부 가구의 64.8%가 부모에 의존해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부모와 함께 사는 이유로는 ‘독립을 위한 주택자금 부족’이 37.1%, ‘육아/보육 문제 해결’이 31.1%를 차지했다. 생활비 해결을 위해서라는 답변은 27%로 조사됐다.

지난 30여년간 주택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신혼부부가 부모의 도움이나 대출 없이 안정된 주거지를 마련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안정된 주거마련을 위해 저축을 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맞벌이 부부는 결국 조부모에게 자녀 양육을 맡길 수밖에 없다.

지난 육아정책연구소의 <조부모 영유아 손자녀 양육실태와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의 평균 주당 양육 시간은 42.53시간이다. 전문가들은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시간 증가가 조부모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녀의 독립 지원 위해 노후준비 어려워져

성인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부모세대는 정서적 스트레스와 함께 노후준비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한국생활과학회 학술대회논문집에 발표된 논문 <캥거루족 가계의 인구사회학적 및 재무적 특성 분석>에 따르면 캥거루 가계의 부모는 일반 가계 부모에 비해 총저축액과 은퇴준비 상황은 차이가 없었으나 생활비 지출은 더 많다. 캥거루 자녀가 노후준비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동거 중인 60세 이상 인구는 약 296만명(31.64%)이다.

이들이 자녀와 함께 사는 주된 이유로는 ‘자녀의 독립생활 불가능’이 39.5%, ‘본인의 독립생활 불가능’이 32.5%, ‘손주 양육·자녀 가사 도움을 위해’가 20.6%로 조사됐다.

자녀세대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부모가 은퇴시기까지 노후준비를 하지 못하고 경제력과 노동력을 쏟아 붓는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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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족 증가, 사회 불안 요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 사는 것을 자녀사랑, 아름다운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부모세대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노후생활을 위협한다.

사회학박사 한성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김귀옥 교수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캥거루족이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캥거루족이 증가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라며 “20대에 첫 직장생활을 하면 30대 중반쯤 새로운 직장을 가지는 시기가 온다. 이 시기에 취업을 준비하고 인생의 새로운 설계를 하기란 자녀의 경제력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구에도 이런 현상이 있지만 우리만큼 강한 가족주의는 없다. 그러니 고용의 불안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부모에게 떠맡기지 않고 사회가 감당하는데 한국은 노동안정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이를 감당하는 가족주의적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부연했다.

청년세대의 노동시장 불안, 취업난은 부모세대에게 노후 불안요소로 작용해 캥거루족의 증가는 자연히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캥거루족의 증가에 따른 부모세대의 노후 불안에 대해 “자녀를 부양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생활비가 많이 필요하게 되고 부모의 노후자금을 일정 정도 ‘갉아먹는’ 것”이라며 “연금생활자라고 할지라도 넉넉하지 않을 것이고, 연금이 없는 상태라면 더욱더 노후가 불안정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4대 보험 체계가 안정돼야 한다. 정부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선·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실업급여 등 전반적인 4대 보험 체계가 안정되지 않았다”며 “부모세대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