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이종우 교수
종교인 태도 바뀌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것
종교 본연의 모습으로 봉사해야 신뢰회복 가능
전문 종교인, 권위의식 청산·신앙 재점검 필요

상지대학교 이종우 교수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상지대학교 이종우 교수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신(神)을 찾는다. 입시나 취업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질병 치료나 사업을 위해 빌기도 한다. 때로는 불가능한 기적을 바라기도 한다.

저마다 간절히 이루고픈 소망이 있지만 신을 찾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5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 인구는 56.1%로 1985년부터 실시된 종교 통계조사에서 처음으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인구가 과반을 넘었다. 사람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종교를 믿는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가운데 최근 여러 종교의 전문 종교인(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을 인터뷰한 책 <당신이 믿는 것들>을 펴낸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이종우 교수는 “종교인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종교는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를 믿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종교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종교인들은 현대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종교학 박사이자 팟캐스트 <이작가와 이박사의 이이제이(이하 이이제이)>, <쇼! 개불릭> 등의 진행자로 알려진 이 교수를 만나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상지대학교 이종우 교수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상지대학교 이종우 교수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종교, 사회적 영향력 낮아”

Q. 독자들에겐 교수라는 직함보다는 팟캐스트 진행자로 더 많이 알려졌을 것 같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린다.

원래는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공부를 하던 중 불교 조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불교 관련 개론서나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에서 한국종교사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가 되기 전까지 여러 자리를 전전하던 가운데 시사평론가 이동형 작가와 <이이제이>라는 근현대사 팟캐스트를 하게 됐다. 이후 상지대학교 교수가 됐고 종교나 문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Q. <이이제이> 외에 시사평론가이자 개신교 전도사인 김용민, 천주교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재가불자(在家佛子, 출가하지 않은 불교 신자)인 서울대학교 우희종 교수와 함께 진행했던 <쇼! 개불릭(개신교·불교·가톨릭)>으로도 알려져 있다. 종교 관련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이이제이>를 진행하던 중 종교에 대한 팟캐스트도 해보고 싶었다. 언론은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잘 다루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일부 종교학 개론서에서는 종교를 알지 못하면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문에 종교의 가치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를 바탕으로 내 연구를 심화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종교관련 방송을 하게 됐다.

Q. 한국 사회의 각 분야에서 종교가 갖는 영향력을 말한다면.

종교의 영향력은 생각만큼 그렇게 크지 않다고 본다. 정치적 영향력을 말하자면 선거철에 특정 종교의 집회나 정기 의례에 입후보자가 인사를 하러 가고 특정 종교가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좌우하지는 못한다. 일부 종교인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으로는 종교가 ‘시장’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굉장히 자본주의화 되고 생존경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문화적으로는 종교가 아직까지 사람들의 심연(深淵)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구나 가끔 한 번 쯤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지구가 멸망하면 어쩌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 다음의 이야기, 내 삶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가 사후에 대해 말하는 한, 또 인간이 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는 한 지속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Q. 최근 펴낸 책 <당신이 믿는 것들>에서 ‘종교의 최고 마케팅은 죽음’이라고 했다. 이를 설명한다면.

종교는 현생 이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천주교·개신교·정교회 등은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하고, 불교는 끊임없이 윤회에 대해 말하는데 현생에서 업을 잘 쌓으면 다음 생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대순진리회의 경우도 현생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종교적 수행이 자녀 세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든지 본인의 사후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모두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무교(巫敎)의 경우에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말하거나 죽은 사람의 영이 현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죽음’은 종교가 영원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돈과 결합이 되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불교는 사찰 수입의 대부분이 ‘천도재(薦度齋.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의식)’를 통해 발생한다고 한다. 또 복지 차원에서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노인복지 시설이나 각 종교의 공동묘지, 납골당 등이 계속해서 생기고 이를 팔고 사는 행위를 통해 종교의 재정을 유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교리적으로 ‘우리 종교를 믿지 않으면 나중에 나쁜 영향을 받을 것’을 주장하고 공포심을 자극해 종교가 유지되는 측면도 있다. 종교가 죽음을 바탕으로 ‘마케팅’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가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종교의 배를 불리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현생에 충실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Q.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종교가 발현됐다고 이해할 수 있나.

종교가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종교가 생기게 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죽음이 종교가 생기게 된 원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기독교(개신교·천주교), 대순진리회, 원불교, 불교의 상징들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종교 신뢰도 하락, 문제는 ‘돈’

Q.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한국갤럽에 의뢰해 만 19~69세 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 사회통합실태조사-신뢰부문’ 결과에 따르면 종교기관을 약간 또는 매우 신뢰한다는 대답은 2016년에 비해 4.2%p 떨어진 40.9%에 그쳤다. 종교 신뢰도가 떨어진 원인이 뭐라고 보는지.

첫 번째로는 사람들이 종교에서 받는 위로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빈곤, 해고 등 생존 문제와 관련된 고통을 받고 있을 수 있고, 사회적 약자나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계속해서 폭력에 노출된다는 공포심이 있다. 이런 현실의 문제에 대해 종교가 안심을 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두 번째로는 종교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대체물들이 생겨났다. 심리상담, 인문학 강연 등 기존에 종교가 줬던 안정감을 대신해서 주는 것들이 있다. 세 번째로는 종교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 있다. 특정 종교의 일부 종교인이 탈세, 폭력, 성폭력, 권한 남용 등 해당 종교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행동을 계속해서 해왔다. 이런 일들로 종교에 실망한 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예전에는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이런 것들이 확 줄어들었다.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이기 쉽지 않고, 만나봐야 스트레스만 받으니 외국으로 여행가는 등 종교라고 통칭할 수 있는 것들이 힘을 잃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점점 무관심해진다. 결국 종교의 대체물, 일부 종교인의 도덕적 타락, 종교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이런 통계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한다.

Q. 최근 MBC <PD수첩> ‘큰스님께 묻습니다’ 편을 통해 제기된 조계종 내부 문제, 대형교회 목사들의 교회세습과 성범죄, 비리 등 종교계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다. 종교의 윤리성 실종을 말한다면.

어떤 사람은 ‘잘못된 욕망’을 너무 쫓다보니 그럴 수 있고, 어느 순간 초심을 잃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특정 종교 내에서 존경을 받고 행정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위치에 올랐을 때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보다는 그 자리에 올라서 가질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문 종교인들도 다 인간이다. 인간이 ‘사특(邪慝)한’ 욕망을 처리하지 못해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나. 한 가지 첨언하자면, 전문 종교인이라고 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조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는 오히려 전문 종교인이 좋은 행위를 하면 그의 인간성을 좋게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을 받아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전문 종교인에게 다른 아우라(특별한 기운)를 씌워주는 것이다.

Q. 종교기관의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뭐라고 보는가.

일단 돈에 대한 집착을 줄여야 한다. 천주교와 불교, 개신교는 모두 금욕적인 삶을 강조하고 원불교, 대순진리회도 이를 강조한다. 무교도 재물에 대한 욕심보다는 신에게 순종하는 삶을 말하기 때문에 청빈한 삶을 강조한다는 맥락은 같다. 그러나 각 종교가 소위 ‘교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을 때는 종교의 가르침과 다르게 금전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이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종교인 과세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만약 종교들이 사회복지 등 신의 명령에 따르는 인간적인 봉사를 열심히 했다면 종교인 과세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종교인들이 이를 잘 행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교단이 유지되려면 어쩔 수 없다고도 말하지만 교단은 무생물이기에 돈을 쓸 수 없다. 결국 그 구성원들이 어딘가에 돈을 쌓아 놓거나 쓰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비춰지면 종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 등 굉장히 청빈한 삶을 산 분들도 있다. 이분들의 모습을 봤을 때 종교가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종교 본연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종교에 대한 시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텍스트
ⓒ텍스트

소수 종교에 대한 편견

Q. <당신이 믿는 것들>에서 전문 종교인과 평신도를 구분해 인터뷰했다. 이들을 구분해 인터뷰한 이유는.

소위 전문 종교인들이 특권의식을 많이 갖고 있다. 전문 종교인의 권위의식에 대해 통렬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문 종교인이 되기 위해 일정한 훈련을 거쳤다. 때문에 전문 종교인과 평신도가 종교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고 보고 이들을 구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가 인터뷰한 전문 종교인들은 모두 권위의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었다. 만약 평신도만을 인터뷰해 전문 종교인을 비판했다면 ‘당신들은 평신도니까 전문 종교인을 비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반론이 들어올 수 있는데, 전문 종교인 안에서도 이런 자성, 각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라도 전문 종교인과 평신도를 나눠 인터뷰할 필요가 있었다.

Q. 전문 종교인과 평신도들의 온도차가 있었는지.

우연이건 아니건 인터뷰 대상자들이 모두 현재 종교의 ‘적폐’로 꼽히는 것들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이었기에 이에 대한 전문 종교인과 평신도의 온도차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만 개혁의 포인트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생태, 환경, 여성 인권, 자본주의,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집중 등 포인트는 달랐지만 그 바탕에는 모두 휴머니즘이 깔려 있었다.

Q. 인터뷰한 전문 종교인·평신도들의 종교와 그 특징을 말한다면.

책에서는 성공회, 무교, 대순진리회,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여섯 가지 종교에 대해 다뤘다. 너무 큰 이야기라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고, 두드러지는 것들을 간단히 말하자면 천주교의 경우 굉장히 비밀스럽다. 책에도 나오지만 교단 내에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데 교단 내부의 목소리가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교황청, 각 국가의 대교구, 각 지역의 교구 등 일원화된 체계가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공회는 개신교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하다. 개신교 내부에서 다수 집단은 아니지만 최근에 굉장히 많은 주목을 받은 종교 중 하나다.

불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조계종=불교’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불교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오히려 조계종에 대해서는 불교와 다른 색채의 새로운 종교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면에서 조계종은 불교와 점점 멀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원불교는 흔히 사람들이 ‘불교의 한 종파’ 정도로 이해하는데, 원불교가 불교의 일부 가르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원불교는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깨달은 바를 가르치는 종교다. 원불교는 1916년 창시된 이후 몇 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교단 분열양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순진리회는 참 오해가 많은 종교다. 보통 ‘사이비 종교’를 말하면 대순진리회를 떠올리는데, 대순진리회에서 소위 ‘욕을 먹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굉장히 일부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은 거리포교를 금지했다. 여주본부도장과 다른 결을 가진 몇몇 교파(도장)에서 거리포교를 하고 있는데 이를 다 대순진리회로 통칭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가 갈라졌을 때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종교가 아닌가 싶다.

무교 같은 경우에도 비슷한 오해를 사는 것 같다. 보통 무당을 ‘이상하고 신기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무당들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그 기운을 통제할 수 없어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도 다 자녀 걱정하고 배우자와 부부싸움도 하고 공과금도 내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Q. 시민들이 갖는 종교에 대한 편견도 클 것 같다. 인터뷰한 종교 중 무교(巫敎), 대순진리회, 원불교 등 대중적이지 않은 종교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편견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그런 종교가 있었어?’라고 할 정도로 세가 적다보니 사람들이 이 종교들에 대해 잘 모른다. 두 번째는 미디어의 영향도 큰데, 대표적으로 무교가 그렇다. 보통 미디어에서 무당들은 엑소시즘(Exorcism·퇴마)이나 빙의 등 흥미를 끄는 자극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비롯되는 오해가 크다. 세 번째는 신(神)의 존재와 형태, 일정 수준의 전문 종교인 양성과정 등 특정한 기준을 상정하고 그에 맞는 것들만 종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종교들에 대해 ‘이상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게 아닌가 싶다.

상지대학교 이종우 교수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상지대학교 이종우 교수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종교인, 신앙 ‘재점검’ 해야

Q.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극한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돌파구를 찾고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한 번은 고시촌 강사를 만났는데 삼수생부터는 종교를 하나씩 믿으라고 제안한다더라. 미래가 불확실하고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박탈감과 고통이 굉장히 크니, 이를 극복하려면 종교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죽기 전, 노년에 종교를 믿는 경우도 많다. 삶이 끝나 죽음을 맞기 전에 갖는 공포심 때문이다. ‘내 삶이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사후에 지옥으로 가면 어쩌지’ 하는 등의 염려가 있다. 또 환자들도 종교를 꽤 많이 믿는 것 같다. 극한의 신체적 고통,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종교를 믿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위안 받기 위해 종교를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종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종교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종교를 믿는 수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Q. 종교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종교를 믿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종교라는 것을 기존의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으로 생각한다면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명상, 요가 등을 종교의 일부라고 한다면 ‘과연 줄어들었을까’라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쇼! 개불릭>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종교를 특정한 기준에 맞춰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 같은 경우 통계 항목을 바꿔 ‘특정 종교에 포함돼 있느냐’가 아니라 ‘모종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질문하고 있다. 응답을 보면 ‘명상을 가끔 한다’거나 ‘매주 법회를 가진 않지만 어떤 스님을 찾아가 명상법을 배운다’, ‘요가 동작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는 등의 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을까. 한 번 쯤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제도화된 종교만을 말한다면 분명히 줄어들었다.

Q. 제도 종교의 경우 앞으로 종교인 수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종교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사람들이 필요하면 계속 찾을 것이고 사람들이 필요 없다고 느낀다면 도태될 것이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각 종교들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

Q. 현대 사회에서 종교에 관한 담론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여러 말들 중 ‘호모렐리기우스(Homo Religius. 종교적 인간)'가 있다.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현생 이후를 상상하는 동물이 얼마나 될까. 인간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종교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객관화 할 수 있지 않을까.

Q. 앞서 ‘종교 본연의 모습을 찾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본연의 모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대부분 종교는 경전을 갖고 있다. 특정 종교의 경전을 중간에서 해석하고 쉽게 가르쳐주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전문 종교인이다. 문제는 전문 종교인이 경전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평신도들의 믿음이나 종교 운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본연의 모습을 가지려면 경전의 본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문 종교인과 평신도의 역할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경전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이다. 전문 종교인은 경전을 자신의 ‘사특한’ 욕망에 따라 해석하지 말아야 하고 해당 종교를 운영함에도 경전의 가르침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평신도는 경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직접 소통할 필요가 있다. 어떤 종교는 ‘내가 신과 직접 소통했다’고 말하면 이단으로 심판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1000~2000년 이어져 온 체계를 벗어나는 행동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기도와 명상 등을 통해 종교의 경전 혹은 신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Q. 종교인(전문 종교인과 평신도)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전문 종교인이나 평신도 모두 본인의 믿음을 재점검해보길 바란다. 또 자신의 종교에서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종교마다 신앙을 점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제는 그 프로그램들이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점검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하는 사람만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않고 알아서 믿음을 점검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Q. 비(非) 종교인들에게 당부할 말은.

종교를 너무 미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종교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특징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면 비종교인들도 종교적인 무언가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종교를 이상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