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혐오 집회, 현 사회 단면 보여줘
남녀 편파 수사 항의로 시작된 집회, 이젠 남성 혐오로
지나가는 행인들은 불편해지고…집회의 목적은 어디로
혐오 문화가 정치권 확산되면 히틀러 양산될 수도
혐오 문제, 숨기지 말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야

지난 5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 모인 여성들이 ‘홍익대 몰카 사건’과 관련 검찰과 경찰이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 모인 여성들이 ‘홍익대 몰카 사건’과 관련 검찰과 경찰이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규탄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일 서울 혜화역에서 열린 집회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홍대 몰카 편파 수사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해당 집회는 ‘공정 수사 촉구’에서 ‘남성 혐오’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녀 차별을 철폐하자는 그들의 외침이 ‘혐오’로 바뀌면서 그들 스스로가 사회로부터 단절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지난 7일 서울 혜화역을 지나던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남성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 참가자들이 지나가던 남성을 향해 시비를 거는 등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행인들은 모두 이 집회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봐야 했다. 이날 시위에서 여성 참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재기해’라는 구호를 외쳤다. ‘재기하다’는 말은 남성연대 고 성재기 대표가 남성 인권 신장을 외치면서 자살한 사건을 빗댄 ‘자살하라’는 은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자살하라’는 말을 던진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남성무죄, 여성유죄’라고 외치며 남성 혐오를 드러냈다. 해당 집회는 홍대 몰카 편파 수사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이뤄진 세 번째 집회다.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찍어 유포한 여성 피의자를 경찰이 신속하게 수사해 구속한 점을 들어 남성이 피해자였기 때문이라며 남녀 차별을 두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시위는 시작됐다.

‘남성 혐오’ 외치는 시위

‘남녀 차별을 두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는 그들의 초창기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하지만 시위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면서 시민들은 더 이상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았다. 시위가 ‘남녀 차별’을 넘어 ‘남성 혐오’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성에 대한 적대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자신들을 향한 모든 차별이 여성이기 때문이라며 남성에 적대적인 감정을 내보였다. 그러다 보니 집회의 이슈도 ‘편파 수사 철폐’에서 ‘남성 타도’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이날 열린 세 번째 집회를 취재하려던 남성 기자들이나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적대를 드러낸 그들은 흡사 우리에 갇힌 ‘하이에나’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그들은 남녀 차별을 외치러 바깥세상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더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혐오 조장은 고립 자처

전문가들은 혐오를 조장하는 문화는 되려 고립을 자초한다고 말하고 있다. 차별 철폐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상대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상대를 적대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형성됐다. 이로 인해 이들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만약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상대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폭력·과격 집회를 벌였다면 탄핵 집회는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집회는 평화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이어졌고, 그로 인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 박 전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끌어냈다. 전문가들은 시위의 목적은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의 주장을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시위 문화가 과격 일변도였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촛불집회를 특정 세력의 전유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노동계 등 진보 성향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정권’이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요구들 역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촛불집회는 특정 세력이 만든 집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혜화역 집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집회에서 ‘문재인 재기해’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지난 3일 국무회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홍대 몰카 수사는 편파수사가 아니라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다. 이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문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이라며 항의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됐다.

오프라인 문제로 확산된 남녀 혐오

이제 여성 혐오, 남성 혐오는 인터넷을 넘어 오프라인의 문제가 됐다. 앞으로 이들은 계속해서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분명히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도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후보가 등장했고, 이에 대한 반발심도 함께 나타났다. 남녀 차별 문제가 정치권으로 점차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남녀 차별의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은 건전한 비판을 동반하기 때문에 충분히 토론 가능하지만, 혐오의 문제가 된다면 토론은 불가능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적대로 이어진다.

이 같은 혐오 문화가 정치권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혐오 문화가 정치권마저 지배할 경우, 전체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을 이끌었던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유권자들의 표심에 의해 총통에 올라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점을 살펴볼 때, 혐오 문화가 정치권을 지배할 경우, 그 사회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혐오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회피할 것이 아니라 공론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녀 차별 문제와 혐오 문제는 별개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녀 차별은 반드시 철폐돼야 하지만, 남녀 차별을 철폐한다는 이름으로 혐오를 건드리는 것에는 확실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방치할 경우, 정치권에도 혐오 문화가 확산되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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