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피해 제주로 온 예멘 난민
난민을 둘러싼 엇갈린 시선들
찬성 측 “인도주의적 차원의 수용”
반대 측 “자국민 안전 우려스러워”

ⓒ뉴시스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조용하기만 했던 아름다운 섬 제주가 최근 난민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제주에는 500여명의 예멘인이 머무르고 있다. 내전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온 난민들이다. 이들의 다수는 한국에서 새 삶의 터전을 꾸리기 위해 난민신청을 한 상태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차는 매우 크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난민으로 국내 치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예멘인의 다수가 무슬림 신자이다 보니 테러 공포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을 촉구하는 청원글까지 올라왔고 이는 70만명에 가까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예멘 난민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은 UN 난민협약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인권국가이기 때문이다. 항간에 떠도는 예멘인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은 오해에 불과하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예멘 난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뉴시스
ⓒ뉴시스

예멘 난민, 왜 제주였나
‘무사증 제도’가 뭐기에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은 반군과 정부군의 대립에 전쟁터로 전락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며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렇게 예멘인들은 세계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난민이 된 예멘인들이 정착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제주다. 법무부에 따르면 예멘 난민신청 수는 ▲1994~2013년 38명 ▲2014년 130명 ▲2015년 39명 ▲2016년 92명 ▲2017년 131명으로 누적 총수는 430명이었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5월까지를 기준으로 552명이 난민신청을 해 현재 국내 예멘 난민 신청자 수는 982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예멘 난민신청자 가운데 527명이 제주 입국 난민신청자다.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제주 직항편이 운항을 시작하면서 ‘무사증 제도’가 허용되는 제주에 예멘인들이 급증한 것으로 파악된다.

무사증 제도는 테러지원국을 제외한 180개국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달간 비자 없이 국내 체류를 허용하는 것으로 지난 2002년 제주특별자치도(당시 제주도)는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이를 시행해왔다.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난민신청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터전을 잡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게 예멘인들이 제주를 선택한 이유다.

ⓒ뉴시스
ⓒ뉴시스

“자국민 안전 우선돼야”
“인도주의적 수용 필요”

예멘 난민 급증으로 제주는 폭풍전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자국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엇갈려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예멘 난민 수용’과 관련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 ‘매우 찬성’ 7.7% ▲ ‘찬성하는 편’ 29.7% ▲‘반대하는 편’ 26.1% ▲ ‘매우 반대’ 27.3% ▲ ‘잘 모름’ 9.2%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과반수가 예멘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무엇보다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다.

앞서 언급된 무사증 제도 도입으로 관광객이 증가한 만큼 불법체류자 수도 늘어났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무사증 불법체류자(누적) 수는 2017년 8만5196명으로 전년대비 2만명 이상 증가했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다 보니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 당국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 범죄 사범은 ▲2015년 15명 ▲2016년 54명 ▲2017년 67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나 예멘 난민 다수가 무슬림 신자이다 보니 이슬람 문화와 테러리스트 등에 대한 공포로 ‘무슬림포비아’ 현상도 보이고 있다. 2016년 난민들이 현지 여성을 대상으로 집단 성범죄를 일으킨 ‘독일 쾰른 사건’을 예로 들며 제주도 난민이 한국 여성들을 강간하러 왔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일 제주시 한림읍 소재 선원 숙소에서 일하던 예멘인 난민 2명이 식사 후 설거지 문제로 시비가 붙어 흉기 폭력을 휘둘러 현행범으로 체포된 사실이 확인돼 안전 우려에 따른 반대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난민대책 국민행동 회원 A씨는 난민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며 예멘의 종교적, 문화적 특성에 주목했다.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절대로 난민 수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예멘의 경우 이슬람 중에서도 굉장히 급진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나라인 데다 IS 추종자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반감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쟁터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난민 인정을) 해줘야 마땅하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추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의 신청을 하고, 소송을 제기하고 그렇게 5~6년의 시간이 흘러 불법체류자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예멘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관습들이 많다.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거부감인 것이지 절대 혐오가 아니다”라며 “예멘 난민을 우리 국민보다 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국민과 법적으로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1년 UN에서는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민의 정의, 인정절차, 난민의 지위와 권리 등의 내용을 포함한 UN 난민지위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은 1991년 UN 난민지위협약에 가입했다. 2012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실제 난민을 인정한 사례는 많지 않다. 정부의 25년간 난민 인정률은 3%(약 800명)로 전 세계 평균이 38%인데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때문에 한국이 UN 난민지위협약 가입국인 만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 위원회(이하 범도민위) 신강협 언론팀장은 “예멘인들이 난민법을 악용한 가짜 난민이란 주장은 전제부터 잘못됐다. 우선 난민신청을 받고 난민인지 아닌지는 이후에 법에 따라 판단해야 될 일”이라며 “본래 의도와는 다른 이유로 입국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심사를 통해 걸러내면 된다. 확인된 바 없이 가짜난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신 팀장은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한국 국민과 마찬가지로 생활할 것 같이 알려졌지만 이들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면서 “실제 국내에서 처음 난민인정을 받은 에티오피아인은 생활고로 다른 나라로 거처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슬림포비아 현상에 대해 “우리는 서구 미디어가 보여주는 분쟁국가, 종파갈등 등으로 무슬림을 접하는 게 대다수”라며 “대중적으로 무슬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데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부정적인 시각이 작용하고 있다. 이를 예멘인 모두에게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뉴시스

끝을 알 수 없는 ‘예멘 난민 논쟁’
“책무 이행·우려 불식 방안 필요”

예멘 난민 문제는 청원으로까지 확대됐다. 지난달 13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난민신청을 수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게시자는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역량을 지닌 글로벌 인재들이 함께 일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난민문제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한국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현재 불법체류자, 문화차이 등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존재하는데 구태여 난민신청을 수용해 그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게 과연 자국민의 안전과 제주의 경제활성화에 기여하는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난민문제를 악용해 일어난 사회문제가 선례를 통해 알려졌으며 이로 인한 불법체류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기존의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 없으면서 경제적 파급효과와 관광수요, 유커 유치 등 추상적인 효과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라고 지적하며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등 재고를 촉구했다.

반면 범도민위에서는 박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제주에 발을 디딘 예멘 난민들을 위해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신속한 입장 표명과 난민정책, 인종차별, 혐오방지 등에 대한 중장기 계획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신 팀장은 “우리나라도 난민들을 무작정 다 받아들일 순 없다. 때문에 상황에 맞게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얼마나 수용할지 등을 고려해 최대한 난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제도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며 “정당한 난민은 국제사회의 일원이며 국가의 품격을 생각해서라도 난민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과 심사가 잘 이행될 수 있는 법 개정 등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법무부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제주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적으로 지난달 1일 더 이상의 예멘 난민 입국을 막기 위해 제주를 무사증불허국가로 지정했다. 이후 제주 무사증 제도를 이용해 입국한 예멘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재 4명(통역 2명 포함)이 담당하고 있는 난민심사를 이달 첫 주 내로 6명(통역 2명 포함)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난민 심사기간이 기존 8개월에서 2~3개월로 단축될 거란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난민신청자에 대한 신원검증 절차를 철저히 거쳐 테러, 강력범죄 등 문제 소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심사할 것을 약속했다.

아울러 난민제도 악용 예방을 위해 난민법 개정 추진을 추진할 예정이다. 보호의 필요성과 관계없이 경제적 목적 또는 국내체류의 방편 등을 예방하기 위한 근거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난민 심사관을 늘려 심사대기기간을 단축함으로써 보호가 필요한 난민은 신속하게 보호하고 남용적 신청자는 단호하게 대처할 계획이다. 또 국가정황 수집·분석 전담팀을 개설해 공정하고 정확한 난민심사를 진행하는 등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인프라도 구축한다.

난민심판원을 신설해 이의제기 절차도 대폭 줄인다. 현재 난민심사는 소송까지 총 5단계를 거치는데 난민심판원이 설치되면 3~4단계로 줄어들어 신속하고 공정한 난민심사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외에도 난민인정자를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법질서, 가치, 문화 등을 준수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적응교육 등도 병행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난민문제는 중앙정부에 일차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이 있으나 사안의 특수성, 복잡성 등을 고려해 시민사회, 종교계, 지방정부 등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온정주의적이거나 과도한 혐오감을 보이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자제해주길 바라며 인터넷 등에서 일부 과장된 내용에 현혹되지 않도록 협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