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번역가 되는 법’ 저자 김택규 번역가
번역 논의 활성화 위해 전문 비평매체 필요해
번역료 지급 담보하는 안전장치 절실한 상황
번역가 양성과정 통한 신인 육성 필요성도

소통의 수단인 언어는 때로 장벽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은 번역과 통역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상대의 말과 글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다. 특히 번역은 일상의 수준을 넘어 학문과 지식의 교류에 있어 여러 언어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언어 간 차이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보니 시각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오역’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번역의 방향은 번역가의 해석에 좌우되는 만큼 ‘옳은 번역’을 판정할 기준이 없어 논쟁은 미궁에 빠지기 일쑤다. 실제로 번역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려지지 않아 번역가와 대중의 입장 차이도 좁혀지지 않는 실정이다.

<투데이신문>은 번역 환경의 개선을 모색하며 ‘더 나은 번역을 위하여’를 기획했다. 먼저 오역 논란이 불거지는 원인을 분석한 뒤 번역이 나아지기 위한 방법으로 번역가의 처우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번역가의 인터뷰를 통해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려 한다.

김택규 번역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투데이신문>은 ‘더 나은 번역을 위하여’ 연재를 통해 우리나라 번역의 현주소를 짚고 발전 방향을 고민해 봤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3편에서는 그간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번역가와의 인터뷰를 마련했다. 본지가 지난달 27일 만난 김택규 번역가는 20여년째 중국 출판번역가로 활동해 왔다. 번역활동 외에도 출판번역에 대한 꾸준한 관심으로 지난 2월 <번역가 되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지난 24일부터 KT&G 상상마당 홍대에서 ‘차이나는 출판 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번역가가 생각하는 ‘오역 논란’

Q. 오역 논란이 계속해서 불거진다. 번역가로서 어떻게 보나.

내가 하는 중국어 번역에는 오역 이슈가 많지 않다. 원전을 읽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한 번역 쪽은 사정이 다르다. 영어는 훨씬 친숙하고 능력자도 많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나 같으면 이렇게 번역할 텐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때문에 한영 번역가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특히 영상번역 쪽이 민감하다. 영상에 입히는 자막은 길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압축과 2차 가공이 필수다. 번역가 재량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관객으로선 원어의 뜻을 다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갖는 게 당연하다. 이러한 입장 차이가 오역 논란을 만드는 것 같다. 

Q. 일부 번역가는 직역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거다. 나는 언어 구조를 그대로 가져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언어마다 문법과 어휘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번역할 때 출발어의 어휘에 꼭 맞는 도착어의 어휘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일대일 대응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비슷한 어휘를 찾아야 하는데 의미가 겹쳐지는 부분이 있고 벗어나는 부분도 있다. 엉뚱한 뜻이 딸려 오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됐던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영역본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직역의 차원에서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을 평가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Q. 원문을 한국어에 맞게 손보는 윤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번역은 윤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그대로 옮겨오는 게 아니라 일단 이해를 한 뒤 다시 표현하는 거다. 내 경우엔 중국어 원문을 읽으면 머릿속으로 의미를 되새긴다. 어떤 언어라는 개념 없이 텍스트를 온전히 흡수한다. 사전을 찾아보는 과정이 있지만 외국어를 독해한다는 생각을 안 한다. 이해가 된 뒤 번역문으로 옮길 때는 한국어 구조로 변용돼서 표현된다. 이 과정에서 외국어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고 충실히 조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번역 과정에서 충실한 텍스트 이해는 기본이다. 모르는 어휘나 지식이 있으면 끝까지 추적한다. 다만 온전한 한국어로 구현하려면 원문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여기서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본다. 충실성을 고려해 직역에 중심을 두느냐, 가독성을 위해 의역을 하느냐는 번역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Q. 윤문을 하면 원문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번역문이 원문과 달라지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용어의 선택 같은 디테일에 국한되고 중심 아이디어나 테마는 바뀌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게 훼손되면 그거야말로 오역이다. 하지만 흐름이 바뀌면 읽는 사람이 먼저 안다. 대표적으로 실수로 한 단락 빼먹는 등 결정적인 오역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경우 편집자가 문제를 지적하면 정정하는 식으로 바로잡는다.

Q. 문학, 비문학 등 분야에 따라 번역 방식에 차이가 있는지.

문학은 원문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리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비문학의 경우엔 특정 부분에서의 문화적 이질성이 독서에 방해가 되면 삭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예컨대 중국 사회과학서적 앞부분엔 공산당 찬양 얘기가 나온다. 분명 가치 있는 사회학책인데 서문에 ‘공산당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면 독자는 그 길로 책을 내던질 수 있다. 그러면 해당 문장을 버리고 간다.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 서적의 경우엔 원서의 흐름이 어색하고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윤문을 해서 상당 부분 잘라낸다. 실제로 번역학에서 말하는 기법 중 하나로 ‘삭제’가 있다. 보충의 한 방법으로 원어에서 옮길 수 없는 부분을 삭제를 통해 보완하는 거다. 

Q. 우리 사회가 오역에 지나치게 과민반응한다는 반응도 있다.

오역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는 생산적인 현상이다. 대중들이 번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텍스트를 꼼꼼히 점검하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벤트처럼 일회성으로 생겼다 사라지는 게 아쉽다. 우리나라에는 번역에 관한 담론이 너무 적다. 논의가 오갈 수 있는 공간도 없다. 중국에는 번역만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있다. 매주, 매달 출간된 주요한 번역서를 소개하고 비평하는 매체다. 이런 논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우리나라에도 번역 비평을 담아내는 매체가 생겼으면 한다. 거기서 활동하는 평론가가 있고 그들이 독자와 함께 소통하는 매체가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번역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생산적 논의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다. 출판계에서도 이런 잡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실현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김택규 번역가 ⓒ투데이신문
김택규 번역가 ⓒ투데이신문

번역가가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

Q. 출판업계 불황이 심각하다. 번역가에겐 어떤 영향이 있나.

번역가에겐 출판업계가 젖줄이다. 출판이 위축되다 보니까 일거리가 줄고 출판사 입장에선 좋은 번역가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출판업계 매출은 계속 줄고 있다. 80년대엔 초판을 찍을 때 보통 5000부를 찍었는데 요즘은 2000부로 떨어졌다. 30년 새에 절반 이하로 떨어진 거다. 작년부터 출판계 위축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지표가 나타났다. 출간하는 책 종수가 줄기 시작한 거다. 

출판 불황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지만 출판사가 새 책을 계속 만드는 방식으로 매출을 유지해 왔다. 그야말로 밀어내기고 소모전이다. 그래도 매출이 안 나오니 이젠 종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건 번역가에겐 치명적이다. 신간이 준다는 건 번역 일감이 줄어드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Q. 번역료가 낮아 번역 일만으론 생활이 어렵다고 하는데. 

번역만 하면 망한다는 생각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림의 공백을 메꿔야 한다. 단적인 예로 주변에 가장 역할을 하는 남자 번역가는 나밖에 없다. 90%는 여자 번역가고 이들은 남편이 돈을 벌거나 솔로다. 소수의 남자 번역가들도 부인이 맞벌이를 해서 생활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Q.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문제는 없나.

출판사가 번역가를 대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이다.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조건을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다만 출판사 사정이 어렵다 보니 대금 지급에 있어 순서가 뒤로 밀릴 때가 있다. 인쇄소, 디자이너 등 제작과 관련해 고정 거래처에 먼저 지급하고 번역가는 나중으로 밀린다. 

Q. 번역청을 설립해 국가 차원에서 번역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번역청은 실효성이 없을 거라고 본다. 혜택이 현장에서 일하는 번역가에게 미치지 못할 거다. 관료제의 한계 때문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은 예산을 투입하면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올해 돈을 투입하면 올해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기획재정부에 다음 해 예산을 요구해 사업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 방식은 번역가 전반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Q. 그렇다면 번역가는 어떤 지원을 바라나.

번역가가 제일 힘들어하는 게 잔금 지급일자가 불명확하다는 거다. 번역 계약을 맺으면 계약금으로 10~20%를 받은 뒤 잔여 대금은 ‘출간 후 한 달 내’에 받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다 보니 번역가 입장에선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런 계약은 정부나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에서 불공정 계약으로 못 박을 필요가 있다. 

‘번역 보험’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 번역을 완료했지만 책 출간이 취소됐을 때 일정 금액을 보전해주는 거다. 또 하나는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번역 단가를 지원해 주는 방안이다. 출판번역의 경우 원고지 한매에 4000원 정도를 받는데 나라에서 2000원을 지원하면 6000원까지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추진하려면 여러 가지로 머리가 아플 거다. 무엇보다 형평성 문제가 있다. 어떤 책을 지원할지 기준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택규 번역가 ⓒ투데이신문
김택규 번역가 ⓒ투데이신문

번역가가 생각하는 ‘번역의 미래’

Q. 인공지능 번역기가 발전하면서 번역가를 대체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장기적으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기계에 맡길 때 비용과 시간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출판번역가 입장에선 아직까지 위협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데이터가 얼마나 축적돼야 인공지능 번역기가 문학적 표현의 차원까지 원활히 번역할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꽤 걸릴 거다. 적어도 수십년간은 번역가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Q. 출판번역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무엇을 느끼나.

홍대 상상마당에서 중국어 출판번역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새롭게 느낀 바가 있다. 지난 기수까진 번역을 부업으로 생각하고 찾아온 30대 이상 수강생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기수엔 전업 번역가를 꿈꾸는 20대 수강자가 대다수다. 번역업계 사정이 좋지 않은 데도 번역을 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은 거다.

이처럼 수요는 많지만 신인 출판번역가를 키워내는 양성기관은 많지 않다. 내가 알기로 중국어 출판번역 강의는 이전에 없었다. 사람들의 수요는 있지만 중국어 출판번역 강의로 신인을 키워내는 방법은 전무했다. 일본어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은데 이들의 성장을 도와줄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Q. 현재 있는 통번역대학원으론 부족하다고 보나.

중국어 소설 번역을 오래 하고 있는데 신인이 거의 없다. 샘플 번역으로 테스트할 기회가 많은데 적합한 인재가 공급이 안 된다고 느낀다. 통번역대학원 안에 번역 전공이 있지만 출판번역을 위한 전문적인 강의는 거의 없다. 대부분 문서, 팸플릿과 기술번역을 가르친다. 번역가 자격증도 사정이 비슷하다. 기업의 번역 일감을 연결해주는 자격증을 취득해도 번역 에이전시에 지원할 때 스펙 정도로 활용될 뿐 시장에서 번역가로 인정받는 의미는 아니다. 

번역 자격증이 있으면 번역 에이전시에서 테스트를 받아 일을 할 수 있지만 한 달에 50만원조차 못 버는 상태로 2~3년을 버티며 신뢰를 쌓아야 점차 큰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친 이들의 수기를 들어 보면 처절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번역가를 지망생들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느라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 이는 번역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Q. 듣고 보니 번역 발전을 위해 개선할 점이 많은 것 같다. 

출판번역 시장이 축소되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 시장이 크면 정부에서 제도를 마련하고 학교에서도 커리큘럼을 개설할 가능성이 커질 텐데 이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변화를 모색할 수는 있다. 이미 언급했듯 번역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매체가 생겨 논의를 활성화됐으면 한다. 또 번역업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수요에 발맞춰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양성과정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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