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 청소하던 노동자 구토 등 건강이상 호소
‘청소 후 기화 소독’ 지침 어기고 기계 가동해
1년 만에 비슷한 사고 발생…관리 허점 드러나
책임 소재 불명확한 하도급 구조 문제 지적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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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대한항공 여객기를 청소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기화식 살충제에 노출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청소 후 기화 소독’이라는 안전지침을 어겼고 1년 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는 점에서 대한항공의 유독물질 관리 감독의 허점이 지적된다.

13일 대한항공 하청업체인 한국공항 비정규직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0시 20분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주기장에서 대기 중이던 여객기 내에서 기화식 살충제가 유출됐다.

당시 기내에서는 10여명의 노동자가 청소 중이었으며 이 가운데 4명이 살충제를 흡입으로 인한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며 자택에서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청소가 끝난 뒤 기화 소독을 해야 한다는 안전지침이 있음에도 대한항공과 소독 담당 하청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

사고 당일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소독 담당 하청업체가 청소노동자들이 작업 중인 기내에 미리 기계를 설치하겠다고 요청했고 대한항공이 이를 허가했다는 설명이다. 이 기계는 기압으로 살충제를 분사하는 방식이라 압력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조작 실수로 밸브가 열리면서 유독성 살충제가 유출됐다.

대한항공 측은 본지에 “사고 당일 비가 많이 와서 기내 소독 준비만 미리 해놓겠다는 하청업체의 요청이 있어 이를 허가한 점은 절차 위반에 해당한다”며 “장비 소리가 시끄럽다는 청소노동자들의 요청으로 밸브를 조작하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당사는 최근 기내 소독 약재를 천연성분 소재로 교체하였으며 앞으로 기내 소독 관련 교육 및 관리 감독을 철저히 관리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7월 기화 소독을 마친 뒤 대한항공 여객기 내부에 투입된 청소노동자 5명이 살충제를 흡입하고 실신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고용노동부는 대한항공에 보건안정명령을 내리고 현장조사를 통해 ‘기화 소독 후 청소’에서 ‘청소 후 기화 소독’으로 안전지침을 변경했다.

불과 1년 만에 기화 소독과 관련한 사고가 재발했다는 점에서 대한항공의 유독물질 관리가 부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공항 비정규직노조 김태일 지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대한항공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생긴 사고”라며 “대한항공은 청소노동자가 얼마나 더 쓰러져야 잘못된 시스템을 바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같은 하도급 구조에서는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 공항항만운송본부 배형찬 조직국장은 “청소노동자들이 소독 담당 하청업체와 교섭 중인데 이번 사고를 언급하니 ‘우리한테 어쩌라는 거냐’며 책임을 회피했다”면서 “간접고용은 노동 안전을 위협하는 악질적인 제도”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까지 10여년간 청소노동자들에게 발암물질이 들어간 ‘템프(TEMP)’와 ‘CH2200’ 등의 청소약품을 쓰도록 하면서 장갑 등의 보호구조차 지급하지 않아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지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1년간 암이 발병해 퇴사한 사람이 5명이나 된다”며 “정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청소약품과의 연관성을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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