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연일 폭염이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틀고 싶은 욕망과 싸우며 1994년 여름을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웠기에, ‘그래도 1994년만큼은 아닐 것이다’라는 전망을 해마다 듣게 되는 것일까.

1994년, 그때 나는 새벽 6시부터 8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사경제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5시에 집에서 출발, 8시 방송이 끝나면 구내식당에서 후닥닥 아침을 먹고 녹음 음악방송을 하나 더 하고는 아침 10시쯤, 유열의 음악앨범을 들으며 퇴근했다. 취직한 친구들은 한참 일할 시간이고, 백수인 친구들은 자고 있을 시간... 혼자 있음에 익숙해지는 법을 강제로 배우고 있었다.

그해 여름 김일성이 사망했고 그 사망 소식이 전해지던 아침, 나는 새 차를 뽑아 현관 앞에 주차 중이었다. 김일성이 죽어? 드디어 통일인가?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차 뽑은 지 사흘 째 되던 새벽, 공덕동 지하철 공사장 앞에서 엔진이 다 찌그러지는 엄청난 사고를 내고도 안전벨트 덕에 말짱했던 일은 있다. 그 이후로도 그런 일이 한 두 번 더 있었다. 나는 안전벨트 맹신자다. 각설,

나는 그 해 여름 반팔을 입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덥다는 생각을 못했다.

방송국 스튜디오는 기기 보호 차원에서 늘 서늘한 상태를 유지한다. 거짓말 좀 보태자면 입김이 나올 만큼 춥다. 거기다 나는 초보 방송인이었고 생방송은 늘 힘에 겨웠다. 안팎으로 한기를 느끼면서 아침 시간을 너 댓 시간 보내고 나면 온종일 덥지 않다. 방송은 보이지 않는 먼 곳의 사람들과 섞이는 일인데 나는 섬처럼 혼자 떠 있는 느낌으로 그 날들을 보냈다. 그래서 더 날씨에 둔감했던 지도 모른다.

이상의 수필 <권태>를 즐겨 읽었다. 더운 여름 한낮, 더위와 무료에 지친 아이들이 함께 모여 똥을 눈다. 이상의 눈에 비친 아이들은 그렇게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학교 가는 아이를 배웅하고 혼자 빈 집에 남아 녹음 일정이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2018년의 푹푹 찌는 이 여름 아침, 더위에 대한 생각은 1994년 여름으로, 혼자 있음에 대한 생각으로 꼬리를 문다.

중간 놀이 시간(요즘 초등학교에선 오전에 20분짜리 쉬는 시간을 주고 중간 놀이 시간이라고 부른다)에 언제나 혼자 책을 읽는다는 아들, 이사와 처음 발견한 놀이터에 한껏 고무 되어 일기장에 그날 일을 쓰고는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 곳에 나와 함께 가 줄 친구가 있을까?

아들에게 얘기하곤 한다.

위인전을 봐도 그렇고 이야기책이나 영화 속 주인공을 봐도 그렇고 어릴 때부터 인기 많던 사람이 위대해지는 경우는 없어. 최소한 엄마가 본 바로는 이순신이랑 홍길동만 예외야. 다른 주인공들은 다 외톨이고 찌질 했어. 해리포터도 그렇고, 네가 존경하는 과학자 뉴턴도 그렇고... 수도 없이 많아. 모든 이야기 속 주인공이 대개 외톨이인 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외톨이라고 느끼기 때문이야. 멀리서 볼 때는 다들 서로 서로 친하고 그런 것 같지? 그 순간뿐이야. 다들 외롭다고 느껴. 하지만 언젠간 베프가 나타나지. (초등학생들은 베프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베스트 프랜드의 준말, 진정한 친구라는 뜻이라고 부모님 세대에겐 따로 알려드려야 하고)

하지만 ‘그래 봤자, 그래도 외롭다’라고는 덧붙이지 않는다.

아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사람은 모두 외롭다는 걸.

아이고, 겨울이라면 이불이라도 끌어안으련만 이 더운 여름 날 외롭다는 건 참 대책 없는 일이다.

자, 그러니 대책을 세워보자.

미안하지만 우리 아들은 모르모트다.

본인이 유난히 인기 없다고 느끼는 우리 아들,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아들과의 대화를 딱 하나만 소개한다.

오늘 중간 놀이 시간에 드디어 친구랑 놀았어.

정말? 이야~ 멋지다. 친구 누구?

음... 그건... 몰라. 기억이 안 나네.

우리 아들의 특성은 아직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유난히 사회성 발달이 느린 것일 뿐, 근본적으로는 따듯한 아이이므로 걱정은 안한다.)

관계에서 인기가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딱 한 가지다.

본인이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마음속에 사랑이 많다고나 할까?

외롭지 않으려면 자기 안으로만 침잠하지 말고 먼저 내 앞의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

 

오늘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나오는,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끝낼까 한다.

1. 타인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인다.

2. 미소 짓는다.

3.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라. 이름이란 그 사람에게 세상 어떤 언어로 부르더라도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소리가 된다.

4. 잘 들어 주는 사람이 돼라. 타인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격려하라.

5. 타인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라.

6. 상대가 중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라. 진실한 태도로 그렇게 하라.

 

모두 중요하지만 다 기억하기 귀찮다면 딱 한 가지, 4번만 기억해도 좋다.

상대의 마음을 여는 마스터 키, ‘잘 들어 주는 사람이 돼라!’

내 앞의 상대에게 귀 기울이는, 외로워서가 아니라 해피해서 더위를 잊을 수 있는 날들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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