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청산보다는 새로운 보수가치 정립에 우선
인위적 인적 청산 반대…새로운 보수 가치 정립으로
산업화·안보 뛰어넘는 새로운 보수 가치는 어디에서
새로운 보수 가치 정립과 당협위원장 교체를 무기로
국민적 호응 바탕으로 인적 청산 이루겠다는 생각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대 김병준 명예교수가 자유한국당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이 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크지 않기 때문에 인적 청산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김 위원장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인적 청산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 가치를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적 청산이 이뤄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지난 2016년 12월 인명진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비대위가 출항했지만 좌초됐다. 그렇게 새누리당의 혁신은 실패했고, 이어진 자유한국당은 대권을 빼앗기고,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선 참패 후 자유한국당은 지난 17일 국민대 김병준 명예교수를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혁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실 김 위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거의 없다. 당을 혁신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혁신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다. 당내 계파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으며, 인적 청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인적 청산’ 기치를 내건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인적 청산 카드는 뒤로

김 위원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과거지향적인 측면에서 인적 청산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준에 입각해 같이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인명진 전 비대위원장이 실패한 이유는 인적 청산에만 매몰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계파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을 때, 아무런 힘도 없이 인적 청산에만 매몰된다면 제대로 된 개혁도 해보지 못하고 꺾일 수 있다. 인 전 위원장의 케이스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인위적인 인적 청산보다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대권과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원인 중 하나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참패 직전까지 내몰렸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전면에 나서면서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히 박근혜 당시 대표라는 인물 때문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그녀로 대변되는 ‘산업화’라는 보수의 가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이룬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받아 나라를 잘 경영할 것이라는 인식이 보수층에 깔리게 됐고, 이 같은 인식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탄핵당했다. 이는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의 탄핵이 아니라 보수의 가치인 ‘산업화’가 탄핵당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산업화·안보 가치는 실종

이에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과 지선에서 보수의 또 다른 가치인 ‘안보’를 내세웠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치러진 지선에서 안보 역시 탄핵당한 셈이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대선과 지선에서 참패한 원인은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있었기도 하지만, 국민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들로부터 탄핵당한 ‘산업화’와 ‘안보’를 내걸었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외면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자유한국당은 인위적인 인적 청산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창출하면 자연스럽게 인적 청산도 이뤄진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사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과 지선에서 ‘공정’과 ‘정의’를 가치로 내세우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는 지선에서는 압도적인 표몰이를 끌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인적 청산을 한다더라도 돌아선 국민이 되돌아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김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비대위는 새로운 보수 가치를 찾기 위한 여정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상황은 썩 나쁜 편은 아니다. 최근 경제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상황을 제대로 간파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정책 및 비전을 제시한다면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 위원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실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새로운 보수의 가치 정립을 최우선으로 외치는 것에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김 위원장이 인위적인 인적 청산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면 아마도 계파 갈등은 최고조로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실제로 김 위원장이 인적 청산을 하기에는 권한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인적 청산은 이뤄지지도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김 위원장은 인위적인 인적 청산 대신 새로운 보수의 가치정립이라는 프레임을 내걸었다.

새로운 보수 가치 찾아라

다만 문제는 김 위원장이 찾아낼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놓고 끊임없는 토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혁신비대위가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제시해도 복당파와 잔류파는 서로 당권 경쟁에만 매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업화’와 ‘안보’ 이슈에서 어느 날 갑자기 보수의 가치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새로운 보수의 가치가 세워지면 그에 따른 자연스럽게 인적 청산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김 위원장이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당협위원장 교체’다. 하지만 이 카드는 마지막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당분간 인적 청산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고 그에 따른 국민적 지지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당협위원장 교체라는 현실적인 인적 청산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얼마나 호응을 하고 지지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만큼 김 위원장의 앞날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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