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고등학생 때 짝사랑을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하기를 엄청 예쁜 누나가 화실에 다닌다고 했다. 네 살 많았다. 녀석의 눈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봤자…’ 하고 가볍게 넘겼다.

당연히 얼마 뒤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줄거리가 됐다. 그림을 그만 둔 그 누나는 화실 옆에 커피숍을 차렸고, 화실 학생들은 그 곳에 주스 마시러 자주 다녔고, 나는 친구네 화실에 놀러갔고, 그 누나를 처음 보게 됐고, 반했다. 외모 때문이거나 친절함 때문이거나 혹은 그 둘 다였겠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고요한 밤의 공중전화 부스에는 말하지 못한 마음이 맴돌다 쌓여갔다. 뭐해요? 아뇨 그냥 걸어봤어요. 네…. 네. 하하…. 

감추려는 쪽은 고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짝사랑은 졸음과 같아서 표정을 감추기 어렵다. 그런 걸 모르는 채, 만나고 이야기하고 통화하던 한 톨의 감정이라도 놓칠세라 두꺼운 일기장을 꾸역꾸역 채워갔다. 허세부리기 딱 좋은 이런 일기장을 대체 누가 사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쓰나 싶었는데 그게 나였다니. 이니셜 J는 우주 제일의 숙명적 서사와 자기연민 과잉의 지렛대가 되느라 종이 위에 끝없이 소환됐다. 자나 깨나 그를 생각했다.

시름시름 심신이 마모돼 갔다. 어설픈 소년의 짝사랑은 괴롭다. 말하지 못해서 괴로운 게 아니라, 드러나면 너무 고통스러울까봐 덜 고통스러운 지금에 안주하느라 지질해서 괴롭다. 가져본 적 없던 것을 이미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애달파 했다. 이마 언저리부터 배 깊은 곳까지 몸 안은 텅 비어 갔다. 하루 하루가 초침을 따라 1도씩 나를 얇게 저며냈다. 실체가 없는 무엇이 이만큼 괴로울 수 있을까. 죽어 본 적도 없으면서 죽을 만큼 힘들었다.

좀 더 생경한 경험은 그 다음에 왔다. 마음의 공복은 모르고 지나가도 됐다. 그런데 이대로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쌀밥을 목으로 밀어 넣고 있더라. 종일 무기력하게 서성이다가 잘 시간 되니까 편히 자 보겠다고 이부자리 잘 펴고 있더라. 마치 일상을 위한 독립된 의지라도 있다는 듯 육체는 알아서 살아가고 있었다. 

짝사랑은 상대를 향한 열정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완벽히 그리려는 붓질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환상적인 사랑을 위해 고결한 고통이 동반되어야 하기에,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겠다는 건 저열한 배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면서 더욱 처량한 심정이 됐다. 처량과 슬픔은 서로의 영구동력이 됐다. 그 나이에 어울리는 웅장한 슬픔으로 치장한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아직 짝사랑의 여진이 꽤 남아있던 무렵. 친구로부터 그 누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녀석을 앞에 앉혀 놓고 소주를 들이켰다. 얼마간을 더 흔들리다가 지구상에 70억개쯤 존재하는 ‘왕년의 슬픈 짝사랑’ 중 하나를 만들고 서서히 잊혀져갔다. 

요 며칠 먹먹했다.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후원금을 받은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보내던 신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자책감이 컸을 줄로 짐작한다. 그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힘 없는 사람들이 어깨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정치해 왔다는 걸 모두가 안다. 살아온 삶을 긍정하기 위해 숨을 부정하는 결심이 어떤 건지 다는 모르겠다. 하지만 강한 신념이 스스로에게 주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생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며칠동안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 무슨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를 잃고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다.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인터넷에선 향할 곳 없는 우울이 넘친다.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작 후원할 걸, 진작 관심 가질 걸 하는 뒤늦은 애석함이 많다. 끝내 전하지 못한 짝사랑의 뒤늦은 후회 같다. 그를 대체할 존재가 없는 이 막막함은 너무나 슬픈 결말이다. 

얼마 전 예의 그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짝사랑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크게 웃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진작 내 마음을 말했다면 어땠을까. 당신을 이만큼 좋아한다고 밝혀서 서로 대화를 하고, 나만의 세계가 아닌 서로 관계된 세계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마음이 건네질 때 한 세계 안으로만 침잠하던 이상향은 그제서야 비로소 세상에 실체로서 드러난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그 세계를 어찌 해 볼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직소 퍼즐을 맞출 때 먼저 놓은 퍼즐 한 조각은 그 다음 놓여질 조각의 계기이자 기준이며, 종국엔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일부가 된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매일 마음의 퍼즐을 맞춰가고, 사랑도 매번 그러하다. 짝사랑을 포함해서 모든 앞선 사랑은 지금 해야 할 사랑의 계기이자 기준이며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일부다. 말하지 못한 반쪽짜리 짝사랑이더라도, 그 조각이 없으면 오늘 내가 하는 사랑은 미완이다. 그러니 슬픈 결말의 숙명을 타고 났더라도, 말하지 못한 짝사랑의 경험은 이후의 사랑을 위해 견고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사랑이 제대로 된 그림이 된다. 그랬을 때 모든 짝사랑은 슬픈 결말이 아니라 해피엔딩의 한 조각이 된다.

정치인 노회찬을 그렇게 기려야겠다. 그의 여정에 도움 받은 시대를 살면서도 생전에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마음, 외로운 길에 마음 한 자락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으로 가득한 짝사랑이 슬픈 결말이 아니려면, 지금의 슬픔이 이제부터 어딘가로 가야할 사랑의 계기이자 기준이며 완성의 조각이 되도록 해야겠다.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생각해야겠다. 아마 그도 우리가 해피엔딩을 맞기를 바랄 것 같다. 매일 밥 먹고, 잘 자며, 일 하고, 친구들 만나고, 웃고, 마시겠다. 언젠가 예전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 한 덩이 마다 목 울대에 눌러 놨던 것도 함께 삼키던 걸 떠올리면서.

그의 명복을 위해 기도한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