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우리는 그래도 평균이에요” 자발적 야근 당연한 사회
산업사회부터 뿌리박힌 ‘근면이데올로기’ 사라지지 않아
구멍 뚫린 주 52시간제, 워라밸 실현 막는 장애물 되기도
제도 위반 페널티 강화하고 사회 인식 개선 뒷받침돼야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대한 관심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동시에 의미 있는 여가시간을 누릴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이러한 가운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며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매여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단순히 근로기준법 등 제도적 미비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깊숙이 자리한 ‘근면신화’가 변화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듯 제도와 인식의 괴리가 큰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가 도입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 25일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을 만나 우리나라가 ‘과로사회’라는 오명을 쓰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출간한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라는 책에서 우리 사회가 ‘시간마름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간마름병이란 과로가 오랜 기간 반복되며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관계적, 사회적 질병이다. 건강 문제를 비롯해 관계 단절, 소외 경험, 우울증, 과로자살, 대형사고 등이 포함된다. 이렇듯 과로가 만성화된 상황에서는 단순히 제도적 개선만으로는 스스로 야근하는 굴레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발적 야근을 뿌리 뽑을 수 없는 이유

Q. 과로사회를 ‘김부장’으로 상징한 제목이 도발적이다. 수많은 김부장을 죽게 한 원흉이 뭘까.

사실 이 제목에 대해선 이견이 많았다. ‘김과장’, ‘김대리’, ‘김신입’도 모두 과로에 시달리는데 굳이 왜 ‘김부장’이어야 했냐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과로 위험은 직업, 세대, 성별을 불문하고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전체 평균(1763시간)에 비해 306시간이나 많다. 

‘김부장’을 죽게 한 원인은 어느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시간 구조에 발을 딛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초장시간 노동은 피로 회복의 속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또한 성과 압박, 실적 경쟁 등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확장돼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맞물리면서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유발하고 이게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과로사, 과로자살로 귀결된다고 본다. 

Q. 실제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떤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놀라웠던 건 많은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였다. 특히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게임업계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게임업체에서 일하는 개발자 한 분이 “우리는 그래도 평균이에요”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그가 말한 ‘평균’은 수요일만 빼고 주중 4일 동안 2~3시간 잔업을 하고 주말 이틀 중 하루는 특근을 하는 노동 강도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간권리’가 얼마나 무력화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극한의 노동 강도를 풍자하는 자조적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2~3일 밤 안 새봤으면 개발자라고 할 수 없죠”라는 말만 봐도 극한의 노동 강도를 당연시하는 태도가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다. 이렇듯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태도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이건 문제의식이 있어도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옛날부터 이렇게 해왔다’는 관행화된 태도와 문화는 많은 회사에서 노조가 조직되지 않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과 맞물려 출구가 없다는 좌절로 연결된다.

Q.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야근하는 분위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구조가 고착된 역사적 배경이 뭘까.

내가 이런 표현을 쓰면 ‘야근을 누가 스스로 하겠느냐’, ‘눈치를 봐야 해서 강제로 하는 거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산업시대 이후 새마을운동, 개미와 베짱이 식의 문화교육 등으로 내면화된 ‘근면 이데올로기’는 야근 문화를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이렇듯 오래 일하는 게 성실한 태도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변화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여기에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을 따라 각광받은 자기계발 담론도 한몫한다. 우리는 자신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스스로 진단하고 분석해 목표를 설정하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시간이 긴 것도 문제지만 업무를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자발적으로 야근을 선택한다. 이런 기이한 문화는 여느 사회와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인 것 같다.

Q. 외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단적으로 서비스 업계만 봐도 시간권리가 잘 보장되는 서구사회에 비해 크게 열악하다. 서구에선 판매 직원이 마감시간 직전 손님이 들어오면 다음 날 오라고 당당히 얘기한다. 회사의 시간도 중요한 만큼 내 시간권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손님이 왕’인 우리나라는 손님이 둘러보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듯 시간권리를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서비스업계뿐 아니라 모든 일터에서 정시 퇴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투데이신문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주 52시간제 도입, 얼마나 실효성 있을까

Q. 주 52시간제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워라밸’이 실현될 거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데.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노동시간 단축이 바람이 거센 것처럼 보인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첫걸음을 뗐으며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이 곧 도래할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이 야기하는 ‘시간마름병’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주52시간제는 오히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워라밸’에 대한 요구를 무마하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현행 주52시간제에는 개선할 점이 많다. 여전히 악질적인 제도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일부 특례업종, 5인 미만 사업장 등은 주52시간제의 예외 대상으로 분류되고, 야근과 특근을 시킬 것을 미리 전제하고 수당을 임금에 포함하는 포괄임금제도 문제다. 이런 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적폐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Q.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나올 때마다 항상 반복되는 얘기다. 과거 산업시대엔 장시간 노동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유효한 방법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낡은 방식이 됐다. 더 이상 싼값에 오래 일을 시킨다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다만 여전히 중소기업에선 타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정부 차원에서 충격을 완화하는 자금 지원이나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 노동자 입장에서 줄어드는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대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다. 중소 영세업체가 지불 능력이 떨어지는 진짜 이유는 시장 차원에서 원하청, 하도급, 가맹점 불균형 구조 때문에 수익 배분이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거다. 중소기업의 부담은 시장 불공정 문제와 직결된다고 관점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공정거래법 등을 정비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으로 중소기업 지불 능력을 높여서 공정한 시장을 회복해야 한다. 

Q. 최근 일부 대기업에선 적극적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있다. 

일생활균형인증제나 여가친화기업 관련 심사하는 일을 하고 있어 복지제도가 잘 구비돼 있는 기업에 다니는 이들을 여럿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노동 환경이 열악한 대다수 기업과 비교하면 확연한 온도 차가 있었다. “우리 회사는 여가친화기업이라서 여름휴가 말고도 재충전휴가제도가 있고 주말에 붙여서 길게는 보름까지 휴가를 갈 수 있다”며 “회사에 고맙고 이런 회사라면 평생 다닐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 전반의 노동 환경이 워낙 열악하기에 이런 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만 사실 이건 특별한 게 아니라 노동자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다. 누구나 회사에 들어가서 연차휴가를 받으면 1주든 2주든 길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듯 당연한 노동권이 감사함으로, 자긍심으로, 또는 우월감으로 표현되는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시간권리가 얼마나 무력화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Q. 노동 환경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비정규직이나 등의 취약노동자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장시간 노동 문제가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련 위험이 비정규직 청년, 노인, 인턴 현장실습생 등 취약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 산재사망률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1위인데 고용조건으로 분리해서 보면 비정규직 산재사망 비율 월등히 높다. 또한 고용허가제에 발이 묶인 이주노동자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Q.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노동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나. 

내년에 최저임금이 10%가량 인상하는 건 단기적으로 충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임금 장시간 노동체제 아래서 오랫동안 억눌려온 임금 통제의 역사를 고려하면 결코 과도한 인상 폭이라고 볼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은 기존에 권력 관계에 의한 임금 통제의 역사를 은폐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취급하는 기업과 자본의 논리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더욱 적극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저임금뿐 아니라 전반적인 임금체계의 불균형도 문제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실질 임금 상승률이 낮은 상태다. 또한 기본급에 비해 변동급 비율이 월등히 높아 ‘수당으로 도배질 된’ 상황은 우리나라의 임금 체계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드러내는 방증이다. 임금 인상 요구에 총액만 맞춰주고 기본급은 그대로 두는 방식의 대응만 있었던 거다. 이런 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임금 체계는 장시간 노동과 맞물려 있는 문제적인 지점이다.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투데이신문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노동시간 단축’ 실현하려면 강력한 페널티·워라밸 경험 축적 필요해

Q. 4차산업혁명 등의 기술 혁신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들 거란 기대도 나온다.

기술 발전이 노동의 고통을 해방하리란 기대는 아주 오래된 판타지다. 누구나 힘든 일은 기계에 맡기고 창조적 노동은 사람이 하는 세상을 꿈꾼다. 실제로 소비자 입장에선 생활의 편리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로 시선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기술은 마냥 좋은 게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일례로 ‘SNS감옥’, ‘카톡감옥’ 등의 표현만 봐도 기술 발달이 사람들을 노동의 굴레로 잡아끄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서구사회에선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에선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제도 장치가 정착됐다. 반면 시간권리가 부재한 우리나라에선 이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런 제도가 아직도 제도화되지 않은 건 문제를 악화하고 심화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Q. 장시간 노동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려면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일단은 현재 시행되기 시작한 주 52시간제를 보완하기 위해 특례업종,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미적용 문제를 해결하고 현장실습 제도, 고용허가제, 포괄임금제 등의 질 나쁜 제도를 없앨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전향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 상황으로는 주 35시간제, 3주 바캉스 등의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사회구성원이 그걸 선택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낭만적인 생각이다. 현재 시행 중인 제도 중에도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게 많다. 예를 들어 가장 기본적인 연차제도만 해도 평균 소진율이 높아야 40~50%에 그친다. 단순히 제도를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로 작동하도록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 내면에 자리한 근면 이데올로기를 뿌리 뽑고 시간권리를 온전히 향유할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 같은 새로운 언어를 발굴해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움직임이 뒷받침돼야 한다. 록페스티벌에 처음 가면 낯설다. 하지만 두세 번 가다 보면 점점 흥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경험을 쌓아가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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