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꿈과 현실의 연계가 느린 편이다.

아주 아주 오래도록 꿈속의 나는 내내 학생이거나 싱글이었다. 꿈속의 내 정체성이 학생에서 성우가 되기까지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필요했고 아이 엄마가 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최근에야 비로소 아이 엄마, 학부형 된 꿈을 꾼다.

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좀 고된 일이니 그렇다 치고

내 무의식은 왜 내 직업인 성우를 그렇게 오랜 세월 거부했던 걸까?

25년 전, 처음 성우가 되었던 90년대 초반의 일들을 돌이켜본다.

방송국 복도와 로비에 나가면 최진실, 채시라 같은 대스타를 언제든 볼 수 있던 때였다. 커피 자판기 앞에선 속눈썹이 낙타처럼 긴 이병헌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좁고 답답한 성우실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더 좋았다.

어린 시절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수많은 은막의 스타들... 오드리 헵번, 클라크 게이블, 알랭 들롱... 선배 누가 입을 열던 그런 스타들이 막 튀어나오는 것 같던... 꿈의 궁전, 성우실! 막내 기수이던 내게 그 공간은 그냥 황홀함이었다.

그러다 수습기간을 끝내고 협회 잔심부름을 하게 되면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성우협회는 막 사단 창립 30주년을 맞아 야심찬 기획과 행사가 많았다. 연변 조선족 방송국과 합동으로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국교 수교 이전의 중공(!)으로 성우 50여명이 단체 연수를 가기도 했고, 각 방송사 전속들이 군중씬을 맡은 <레 미제라블>이라는 대형 뮤지컬을 기획해 호암아트홀에서 공연도 했다. (꼬제뜨 역만 당시 제일 핫한 여배우 중 하나였던 이상아가 소화했고 나머지는 모두 성우들이 연기했다. 아, 참. 당시 꼬제뜨 아역을 했던 열 살 소녀는 나중에 자라 장나라가 되었다!)

막내인 나는 중국도 따라가고 뮤지컬 조연출로도 뛰면서 그런 소식들을 협회원과 방송가에 널리 알리는 <성우협회보> 만들기에도 참여했다.

내 실망이 시작된 곳은 바로 그 협회보를 만들던 사무실이었다. 20평이 될까 말까한 성우협회 사무실에는 테이블 서너 개와 소파, 그리고 작은 회의실이 한 개 있었는데... 그 곳에서 언제나 고스톱 판이 열리고 있었던 거다.

배역 이름만 대면 모두가 목소리를 기억할, 소위 잘 나가는 성우들이 뭐가 부족해서 아침부터 모여 저렇게 고스톱이나 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들이 내 선배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혀를 깨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고스톱을 칠 줄 모르는, 설사 방법이야 알았다 해도 자식들 앞에서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엄숙한 환경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그 덕에 이른 아침부터 벌어지는 도박판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고울 수가 없었던 거고 나아가 내가 그런 루저들과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너무나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었다. 꿈속에서만이라도 성우가 아니고 싶었을 만큼 말이다.

아,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는 이제 그때의 그 선배들을 루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이해하고 한 때나마 오해했던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왜 이른 아침부터 모여 앉아 화투패를 돌려야했을까?

힌트는 그 선배들이 하나 같이 남자였다는 것이다.

녹음이 없는 날, 여자 성우들은 기쁘게(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집에서 집안일을 한다. 여자가 집에 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 성우들은 다르다. 삼식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어디든 나가야했다. 아침이면 일 나가는 가장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그러나 아침부터 어딜 갈 것이며 또 뭘 할 것인가. 그 때 그 선배들은 협회 사무실을 찾았던 것이고 지금처럼 다양한 여가 활동이 없던 시절이다 보니 고스톱이나 쳤던 것이다.

TV 속 남자 연예인들이 죽어라 사회인야구를 하고 낚시를 다니고 하는 것들이 다 같은 맥락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어쩌면 지금도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오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건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는 법.

가끔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왜 저러는 걸까?

선배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내 직업이 다시 좋아졌고 그만큼 더 행복해졌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삼식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이 땅의 남성들에게 외친다.

스스로 만들어 먹는 삼식이가 되라고.

자기 집에서 자기가 요리하고 청소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아니,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이 땅의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가 스스로 밥상을 차릴 줄 알게 되는 날,

지구에 진정한 사랑과 평화가 찾아오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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