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vs. 1948년, 담고 있는 의미는
보수-진보 대결에서 한국당 내부 대결로
국가주의 사관 표방하는 중진…김병준과 대척점
혁신비대위 운영에 타격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 ⓒ뉴시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 ⓒ뉴시스

오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건국 논란’에 휩싸였다. 중진인 심재철 의원이 계속해서 건국 논란과 관련된 토론회를 열면서 자유한국당은 건국에 대한 입장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뉴라이트계 사학자들은 계속해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이라고 규정해왔다. 올해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은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한국당 분열의 씨앗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건국절 논란은 해묵은 논란이다. 지난 2006년 뉴라이트 학자인 이영훈 교수가 우리도 건국절을 가져야 한다는 칼럼을 쓴 이후, 보수 측에서는 계속해서 건국절 논란을 키워왔다. 뉴라이트 학계의 입장은 우리나라 건국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라는 것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가 아니라는 논리다. 최근에 이들이 들고나온 논리는 ‘국가의 3요소(영토, 국민, 주권)’와 관련해 임정이 해당되는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1945년 5월 1일 임시의정원에서 “우리 의정원과 임정은 토지와 인민주권이 없는 정부”라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에 임정은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보수 측의 건국절 논란은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연이어 탄생하면서 보수 측에서도 새로운 보수운동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뉴라이트’ 운동을 펼쳤고, 그 일환으로 건국절 논란을 꺼내 들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함으로써 보수 진영의 정통성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이다. 건국절 논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주도해 추진하는 역점사업이 됐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건국 60주년을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교과서에 1948년 건국절을 집어넣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돌파구로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뉴라이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임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임정은 국가를 만드는 초기 단계로, 국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국가를 만든 것은 임정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라는 설명이다.

반면 진보진영은 대한민국 건국은 임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뉴라이트 학계가 주장하는 국가의 3요소는 강대국 논리에 의한 주장이라는 게 진보진영의 입장이다. 1919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제창 이후, 수많은 신생국가가 탄생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과연 어떤 국가를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놓은 논리가 바로 국가의 3요소였다. 이는 강대국들의 자의로 국가를 규정하는 논리가 됐으며, 이후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립됐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국제법상 ‘국가의 3요소’로 임정을 ‘국가냐 아니냐’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제헌 헌법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해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규정된 점을 들며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건국절 논란은 이어지고

이처럼 건국절 논란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끊임없이 뜨거운 논란이 돼왔다. 하지만 이제 건국절 논란은 자유한국당 내부 갈등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건국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는 ‘사관(史觀)’에 따라 달라진다. 진보 측은 ‘민족주의’ 사관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국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가주의’ 사관으로 바라보는 보수 측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으로 보고 있다. 즉, 진보 측은 건국의 ‘시발점’을, 보수 측은 건국의 ‘마침점’을 건국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뉴라이트 학계가 주장하는 건국절에 대해 보수진영에서도 일반적으로 공감하느냐는 점이다. 특히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도 이를 공감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김 위원장은 13일 심재철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우리가 건국일을 1919년이라 하든, 1948년이라 하든 뜨겁게 논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일단 김 위원장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이라고 규정한 것은 아니다. 이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도 건국절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인 것이다. 사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건국절 논란이 상당히 껄끄러울 수 있는 이슈 중 하나다. 왜냐면 김 위원장은 그동안 ‘국가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등 국가 주도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를 견지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가주의’라면서 배격해왔다. 그런데 만약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규정하게 된다면 보수 측의 ‘국가주의’ 사관을 본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자유한국당 내부의 갈등은

정치권 안팎에서는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들이 계속해서 건국절 논란에 불을 지피는 이유는 단순히 문재인 정부의 임시정부 건국절에 대항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김 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혁신비대위를 내년 1월까지 끌고 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중진들은 하루라도 빨리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싶어하고 있다. 더욱이 당내 중진들은 김 위원장을 지나가는 정거장쯤으로 여기고 있다. 중진들은 아직까지 김 위원장이 당내 인위적 인적쇄신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건국절 논란을 증폭됨으로써 김 위원장과 중진 간의 갈등 요소가 점차 증폭될 가능성도 높다. 만약 김 위원장이 건국절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있다면 이를 빌미로 공격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미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건국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건국절 논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김 위원장의 정치적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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