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장애인·성소수자 등 동반자등록법 제정 촉구
혼인가구에 정책 집중…“비혼·미혼 인구 차별” 주장도

선진국들도 거쳐 온 문제…‘세계적 추세’
“헌법에 위배되지 않아 입법 가능할 것”

지난 7월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동반자등록법' 제정 청원 내용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지난 7월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동반자등록법' 제정 청원 내용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동성애자인 A씨는 수년째 애인 B씨와 동거 중이다. 이들이 함께 살던 중 B씨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지만 A씨는 B씨의 수술을 앞두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었다. 동성 연인은 법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달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원 내용 중 일부다. A씨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도 수술동의를 못 하고 그저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며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촉구했다.

동반자등록법을 촉구하는 이들은 동성연인들뿐만이 아니다. 사고나 가족 간의 불화로 홀로 지내는 사람, 비혼모·부, 독거노인 등 보호자 동의를 요구하는 법적 상황에서 가족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동반자등록법 청원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 변화에 필요성 높아지는 동반자등록법

현재 한국사회는 미혼·비(非)혼 동거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동성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주된 가구 유형은 1인가구로 전체 가구의 27.7%를 차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미혼·비혼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데 따른 것으로, 자유로운 삶에 익숙한 청년층이 법률적·경제적·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전통적인 혼인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노인들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노인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노인 간의 이성교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으나 이들은 주변 시선의 부담과 장성한 자녀들의 유산·상속문제 등 법적 갈등을 이유로 재혼보다는 사실혼·비혼 동거 관계를 선호한다.

이에 따라 동반자등록법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동반자등록법이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 간의 생활공동체에 대해 사회를 구성하는 법적 단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친족이 아닌 두 명의 성인이 실체적인 생활공동체를 이뤄 상호 간에 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관할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에 신고하면 법적인 지위를 인정하고 원칙적으로 혼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성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동반자등록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이후 최근까지 캐나다, 미국, 호주 등 23개 국가들이 동성혼을 법제화하면서 이에 발맞춰 성소수자들 역시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정부가 발표한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방안 자료출처 = 국토교통부
지난달 5일 정부가 발표한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방안 <자료출처 = 국토교통부>

비혼·미혼 동반자 차별하는 정책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 등 한국의 가족법은 가족의 구성을 혼인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 관계의 배우자는 혼인 부부에게 주어지는 사회보험·현금·고용·의료·금융·복지 등의 권리를 행사하거나 법률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령 연금 수령 당사자가 사망할 경우 법적인 배우자는 상당액을 지급받을 수 있으나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 관계의 배우자는 이를 받을 수 없다. 혼인과 유사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합당한 권리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은 사실혼 관계가 당사자 중 한 사람의 사망 혹은 의식불명 등으로 지속되지 못할 경우 생존 배우자의 재산분할이나 상속청구 권리 등을 부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에 따르면 사실혼 배우자가 위독한 상황에서 상대방이 간호·간병 등을 충실하게 했음에도 공동 노력으로 형성한 당사자들의 재산이 사망한 사실혼 배우자 명의로 돼 있으면 반환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혼·비혼 동거 가구의 경우 법률적 권리 외에 정책적 배려에서도 배제돼 있다.

지난해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목적으로 한 해 총급여가 7000만원 이하인 신혼·재혼 부부를 대상으로 ‘혼인 세액 공제’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세제 혜택뿐 아니라 주택임대차 및 분양, 자동차 구매 등 일상 전반에서 혼인 가구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나타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도시공사(SH), 경기도시공사 등 토지주택사업을 시행하는 주요 공기업들은 우선공급물량을 많게는 30%까지 신혼부부에게 할당하고 있다. 주택도시기금에서도 신혼부부에게 상당한 우대금리를 적용해 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자동차를 구매할 경우 부부는 세금이나 보험료 등의 측면에서 특약을 제공받는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혼인 가구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혜택은 사실상 국가가 미혼·비혼 인구를 차별하고 혼인을 강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사회가 다양화되며 혼인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불편과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프랑스·독일·일본 등 사례 참고해 해법 마련해야

이 같은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이 거쳐 온 문제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해법을 내놓았으며 이 중 한국 사회에 적용 가능한, 참고할 만한 사례도 많다.

프랑스의 경우 1999년 ‘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 연대의무협약)’를 도입했다. PACS란 혼인과 비슷한 공동생활의 형태로서, 성별에 관계없는 성인 두 사람 사이의 결합제도다.

프랑스가 PACS를 도입하게 된 것은 현재 한국 사회와 비슷한 시대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는 혼인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사실혼·비혼 동거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또 청년층을 중심으로 혼인 및 이혼 등 기존의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과 경제적 조건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결합과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프랑스는 PACS를 도입하게 됐으며 도입 이후 2009년까지 10년간 신고된 PACS 건수는 70만건에 달한다. 2010년 통계에서는 혼인신고와 PACS 신고 비율이 4:3으로 나타나 프랑스에서는 PACS를 성공한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PACS 도입 당시 프랑스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국 사회에서 동성커플뿐 아니라 혼인제도를 꺼리는 이성커플까지 포함하는 시민결합제도의 도입은 그 당위성이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독일의 경우 2001년 ‘생활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en)’을 입법해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를 법규화했다.

생활동반자법에 따르면 동반자관계의 커플에게는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부양의 의무, 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 책임 등이 발생한다. 혼인 관계에서와 같은 특수한 재산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동의 재산을 형성하려 하는 경우 공동소유로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독일 기본법 제6조에 규정된 혼인 및 가족과 생활동반자는 구별된다. 독일 기본법상 혼인은 1남 1녀의 결합에 한정된다. 또 동반자관계의 파트너들은 공동으로 입양할 수 없다. 다만 2013년 이후 승계입양의 범위 내에서는 입양이 가능해졌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생활동반자법이 혼인 제도를 침해하지 않으며 ‘혼인과 가족은 국가질서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정한 독일 기본법 제6조 1항에도 위배되지 않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상호권리의무를 갖고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조성하도록 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이며 동반자관계를 법률적으로 보호하면서도 공동의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혼인과는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이는 독일과 유사한 헌법을 가진 한국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한국 헌법재판소도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정한 헌법 제36조 1항을 근거로 혼인을 남녀 간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러 판례에서는 혼인과 가족을 별개로 보고 있다.

때문에 헌법이 혼인에 기반을 두지 않는 다양한 생활공동체의 가족생활을 국가가 보장해야 하고 법적인 지위를 인정해 법률적 보호와 정책적 배려, 행정적 편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독일 사법기관의 논리적 판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은 없었지만 지자체별로 ‘파트너십 증명제도(パートナーシップ証明制度)’를 통해 법률상의 혼인과 구분하되 혼인관계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가장 처음 시행한 곳은 도쿄도 시부야구로, 2015년 ‘남녀평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추진하는 조례(渋谷区男女平等及び多様性を尊重する社会を推進する条例)’를 마련했다.

이 조례에 근거한 파트너십 증명은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시부야구의 가족용 구영주택(區營住宅) 입주, 파트너의 수술동의서 작성 가능 등 구(區) 내에서 혼인 가구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 사망보험금의 수취인으로 파트너를 지정하는 등 민간 서비스도 누릴 수 있다.

이 제도는 시부야구에 이어 도쿄도 세타가야구,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미에현 이가시, 오키나와현 나하시, 지바시 등으로 확산돼 운영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지난해 19대 대선 후보 당시 공약한 동반자등록법 소개 사진출처 = 정의당 심상정 의원 블로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지난해 19대 대선 후보 당시 공약한 동반자등록법 소개 <사진출처 = 정의당 심상정 의원 블로그>

동반자등록법 제정 움직임…“입법 위해 연구 중”

한국에서도 해외에서 시행 중인 제도를 토대로 동반자등록법 입법이 논의된 바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지난해 19대 대통령선거 후보 당시 “노인의 재혼 내지 동거, 장애인공동체, 미혼모 가정, 동성 가정, 비혼 커플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다수를 이루고 있음에도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법적 규정이 전혀 없다”며 “프랑스의 PACS와 같은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심 의원은 지난 3월 8일 여성의날에도 “차별금지법과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해 성평등 사회를 앞당겨야 한다”고 재차 동반자등록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역시 지난 19대 국회에서부터 프랑스의 PACS와 유사한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진 의원은 법안 발의를 위해 한국 사회 상황, 해외 사례 등을 연구 중에 있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혼인이나 혈연 외의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년층의 독거, 저출산 등의 사회문제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가족제도가 필요하다”며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제도의 틀 안에 포용하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에서도 가족의 구성을 남녀 간의 결합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부 종교계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소수자 커플이 혼인에 준하는 권리를 얻어 가족구성이 가능해지면 동성애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생활동반자법은 노년층, 장애인 등 꼭 성애적인 관계가 아니라 해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해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연인과 동거 중인 성소수자 C씨는 “특히 의료 서비스를 볼 때 (동반자등록법이) 꼭 필요하다”며 “성소수자의 경우 가족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긴급 상황 시 동의를 받지 못해 위험한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족의 의미는 더욱 넓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가구의 구성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동반자등록법’으로 기존의 가족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미혼·비혼 가구, 독거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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