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쪽방촌 반 고흐’ 홍구현 할아버지
불행한 70여년 인생의 유일한 낙, 그림
그림 그릴 땐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편해
어려운 형편과 나이 탓에 붓질도 쉽지 않아
첫 개인전, 생각지 못한 기회에 두렵기도
언젠가 재능을 사회에 기부할 수 있길 바라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br>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쪽방촌에는 ‘쪽방촌 반 고흐’ 홍구현(67) 할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성인 3명이 겨우 앉을 만한 홍 할아버지의 작은 방 곳곳에는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낼만한 멋진 그림들이 놓여있습니다. 모두 홍 할아버지의 작품입니다.

홍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쇠약해진 자신의 몸 하나 뉠 공간으로도 부족한 방을 왜 그림으로 채우는 걸까요.

홍 할아버지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재혼하시며 새어머니와 이복동생들과 함께 살게 된 홍 할아버지는 미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싸우는 날이면 화풀이 대상은 늘 홍 할아버지였죠.

성인이 돼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지인을 통해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나 잠적했습니다. 이삿짐센터 일을 하며 재기를 꿈꾸기도 했지만 제수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게 됐습니다. 그 때문에 2년간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기도 했죠. 이후 종로3가 쪽방촌에서 20년을 머물다 지금은 창신동에 터를 잡았습니다.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br>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다사다난한 홍 할아버지 인생의 유일한 희망은 ‘그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소질이 있었나 봐요. 누구한테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어요. 주위에서 그림 그리는 모임에 나가보길 추천하기도 했는데 그건 싫더라고요. 다들 비슷비슷한 그림을 그리니까, 나는 내 개성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젊을 때 일을 하면서도 종종 취미로 그림을 그렸어요. 생활이 어렵다 보니까 견문을 넓히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바꿔 내 그림을 만들어 그렸어요.”

홍 할아버지는 풍경화 그리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그림은 없습니다.

“특별히 정해놓고 그림을 그리진 않아요. 인물화, 추상화, 풍경화 다 가리지 않는데 풍경화를 가장 좋아해요. 풍경화를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해지는 기분이랄까요.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이 있는 건 아니에요. 나한테는 모든 그림이 소중하죠.”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홍 할아버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거친 표현으로 생동감이 살아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물감 원액에 기름을 먹여가며 덧대면서 그리지만, 나는 물감 원액만 사용해요. 기름을 칠한 그림이 매끈해서 멋있긴 해요. 하지만 원액만 이용한 내 그림은 거칠지만 그림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거리를 두고 그림을 보면 느낄 수 있어요.”

그림엔 영 소질이 없는 기자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홍 할아버지만의 방법이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림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다른 사람 그림을 나만의 것으로 새롭게 그려낸 것들이 있어요. 그런 눈썰미가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끼도 타고나야 해요. 그림도 볼 줄 알아야 하고요. 그전에 물론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죠.”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홍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뇌졸중으로 3번이나 쓰러지고, 우울증까지 앓고 있습니다. 그런 홍 할아버지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건 약이 아닌 그림입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내 노후에 대한 불안함을 느껴요. 나 같은 경우는 돌봐줄 가족도 없고 간병인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림 그릴 때면 마음이 편해요.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요. 그리고 뇌졸중으로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남들은 한 번만 쓰러져도 수족을 못 쓴다는데 나는 그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잖아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라는 하늘의 뜻인가 생각하고 감사히 여기고 있어요.”

홍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자신처럼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붓끝에 싣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마음이 편해요. 내 그림을 보는 사람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의 손때묻은 물감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기초생활수급자 홍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기는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림 도구를 구입할 경제적 능력도, 그림을 보관할만한 공간도 홍 할아버지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종로3가 쪽방촌에서 생활할 때는 70여개 되는 쪽방촌 관리를 했어요.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아니까 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물감이랑 캔버스 사라고 1~2만원씩 줬어요. 그 돈을 조금씩 모아서 그림 도구를 샀죠. 근데 창신동에 이사 와서는 기초생활수급비 외에는 돈이 없으니까 (그림 도구를) 사기가 어렵죠. 돈을 벌자니 수급비가 깎여버리니까 그럴 수도 없고. 또 방이 좁다 보니까 그림 그리기도 쉽지 않아요. 큰 그림은 그리지도 못하고요. 혹시 여기저기 물감이 묻을까 봐 신경 쓰이기도 하고요.”

최근 할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온라인 기부 ‘해피빈’에 홍 할아버지의 사연이 소개됐고, ‘그림연구소 빅피쉬 아트’와 국제개별협력NGO ‘지파운데이션’,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제1회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홍구현 작가 개인전’을 열게 됐습니다. 전시회는 오는 9월 8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서울 종로구 통의동 ‘팔레드 서울 갤러리’에서 진행됩니다.

홍구현 할아버지 그림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홍구현 할아버지 그림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생애 첫 개인전을 앞둔 할아버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두려워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사실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안 갈 거라고 했어요. 옷도 변변치 않고 형편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민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그림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와주는데, 고마운 마음에 인사라도 하러 가려고 해요.”

홍 할아버지는 지금은 왕래가 끊긴 친한 형님에게 전시회장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40~50년 정도 친하게 지낸 선배가 있어요. 형님한테는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형님은 ‘우리 동생이 그린 거야’라며 집에 걸어두고 그랬죠. 지금은 왕래가 끊겼는데, 하루는 형님이랑 아주 오랜만에 만나 술을 한잔하는데 형수님이 돈 봉투를 내밀더라고요. 내 사정을 알고 그런 거죠. 극구 사양하다 결국 받았는데 꼬깃꼬깃한 현금이 50만원 들어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내가 형님과 형수님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을 끊었죠. (나와 내 그림을 소중히 여겨주던) 그 형님을 전시장에 초대해 그림을 꼭 보여주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홍구현 할아버지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곧 칠순을 바라보는 홍 할아버지는 요즘 붓 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는 좀 힘이 들어요. 손이 떨리고 중심이 안 잡혀 붓이랑 나이프 드는 게 쉽지 않아요. 또 눈도 점점 침침해지고 있고요. ‘언제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그래도 그릴 수 있을 때까진 계속 그려야겠죠?”

홍 할아버지의 인생에서 그림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려왔어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림이 내 생각대로 완성됐을 때 느껴지는 그 쾌감, 그거 하나에요.”

마지막으로 홍 할아버지는 좋아하는 일이나 꿈이 있지만 형편 때문에 포기한 다른 쪽방촌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쪽방촌 반 고흐 홍 할아버지의 그 따뜻한 꿈이 꼭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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