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어딘가 도회적이고 이지적이며 창백한 남자.

노타이 차림으로 셔츠 윗 단추 하나쯤 풀어 헤치고 소매를 걷어 올린, 금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남자.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대학교수라는 직업의 이미지다.

그런 내 편견을 첫 만남부터 박살내 주신 건 대학 2학년 전공 시간에 만난 K교수님이다.

대한민국 부동의 초일류대인 S대를 졸업하고 이름대면 남들이 다 아는 대학의 정식 교수가 되기까지의 지난했을 과정이 첨 뵌 순간 촤르르 그려졌다.

늘 연구실에 계실 텐데도 금방 밭에서 김매다 오신 듯 거무튀튀한 얼굴,

좀 심하다 싶게 들쭉날쭉한 치아. 그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금빛테두리...

의상 센스야 말해 뭣하랴.

선생님은 죽어라 공부만 하며 젊은 날을 보내셨을 것이 분명했다.

강의도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본인 나름의 유머를 섞어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 감각과 맞지 않았고 가끔은 삼천포로 새기도 하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수업에 과하게 충실하셨다. 그런 선생님께서 어느 날, 먼 데 하늘을 우러르는 것 같은 눈빛이 되셔서는 처음으로 수업과 무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바야흐로 40여 년 전, 선생님 마음속엔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오르게 하는 한 소녀가 있었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소년, 소녀가 으슥한 곳으로 내달리던 후반부가 아니라, 소년이 먼데서 소녀를 흘끔거리던 개울가 풍경뿐이긴 했지만, 어쨌든 선생님께는 그런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웃는 얼굴이 예쁜, 목이 긴 소녀.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생님 자라시던 깡촌마을엔 중학교가 없었고 근처 읍내로 진학하기엔 너무나 수재였던 선생님은 집안의 모든 기대를 자신의 어깨에 이고 대처로 유학을 떠나실 수밖에 없었다.

소녀에 대한 연정은 물리적 거리와 세월에 씻겨 빛이 바랠 수밖에.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선생님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중년의 대학 교수님이 되었는데(이것은 선생님 태어난 마을 최고의 경사였다), 그 소녀가 선생님 연락처를 알아내어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40년만이었지만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곤 아주 짧은 침묵...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선생님의 표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K교수님 성향상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셨을 게다. 그래도 우리는 그 웃음 뒤의 쓸쓸함을 보았을 테고.

뒷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 소녀가 조금 지쳐 보였고,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으며 알고 보니 교수님께 정수기를 팔고자 찾아왔다는 것.

우리가 그날 보았던 선생님의 쓸쓸함은 그녀가 상상만큼 예쁘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녀가 정수기를 팔기 위해 왔던 때문도 아니었을 거다.

선생님이 쓸쓸했던 것은... 세월이랄까, 인연이나 운명이랄까 하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속수무책인가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해 가을에는 태진아가 부른 <옥경이>라는 노래가 전국을 휩쓸었었다. 나는 지금도 <옥경이>를 들으면 K교수님이 생각난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이름을 물어보고, 고향을 물어봐도

잃어버린 이야긴가

대답하지 않네요. ~

아마 그녀도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그 놈의 정수기만 아니었다면.

그나저나 우리 K교수님,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려는지...

그 이야기를 듣던 그 때가, 선생님의 소년시절까지... 모두 그립고 그립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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