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7년 적립기금 고갈, 지급 불능 불안 촉발
공적연금 불신 확산, 무용론 넘어 폐지 주장
기금 고갈은 수순, 못 받거나 덜 받는 일 없어
제한된 정보, 과장된 우려 제도 개선 논의 난항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2018년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2018년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연금 논쟁이 뜨겁다. 국민연금 기금이 약 40년 뒤면 소진되고 그때까지 문제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자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보험료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 등 국민연금의 가치판단은 물론 제도 개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노후보장 장치로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개선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불신을 기반으로 한 무용론도 만만치 않아 실질적 논의와 해법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민연금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살펴봤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지난달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위해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기금소진 시점이 3년 앞당겨졌고 노후소득 보장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자문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국민들 사이에선 국민연금을 둘러싼 우려가 쏟아졌다. ‘믿지 못할 제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연금 폐지 주장까지 올라왔다. 이 같은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정부가 확정안이 아니라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정부는 내달 국회에 제출할 정부안 마련에 앞서 현장 토론회를 마련해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사회적 합의 과정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개편 논의는 국민연금에 대한 무용론 또는 폐지 주장에 부딪히며 전진하는데 힘이 부치는 양상이다. 이 같은 반발 배경에는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오랜 불신과 함께 제도 자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과장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기금 소진 시점이 당겨지면서 촉발된 ‘기금 고갈 공포’는 가장 대표적인 오해로 꼽힌다.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지 못한다?
NO. 국민연금은 고갈되는 것이 맞다

정부의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면서 가장 먼저 불거진 것이 연금고갈에 대한 불안이었다.

지난달 17일 자문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오는 2042년부터 수지적자가 발생해 2057년이면 적립기금이 소진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기금 소진 시점은 지난 2013년 3차 재정추계 당시 예상했던 2060년보다 3년 당겨진 것이다. 소진 시점이 앞당겨 지면서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기금이 언젠가는 고갈되는 구조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할 당시부터 기금 고갈은 전제된 것이었다. 가입자 모두가 자기가 낸 돈보다 많은 연금을 받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언젠가 기금 고갈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나가는 돈보다 걷히는 돈이 많은 구조로 기금이 쌓이지만 30년 뒤에는 걷히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기금이 소진되는 구조다. 결국 기금 고갈의 원인이 정부의 제도 운영의 문제이거나 기금운용 수익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정부는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못 받는 일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운영방식은 보험료를 거둬서 일정기간 상당한 규모의 기금을 미리 쌓아놓고 그 기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서 연금으로 지급하는 ‘적립방식’과 그해 필요한 연금재원을 그해 연금 가입자에게 걷어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나뉜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운용은 ‘부분 적립방식’을 채택, 쌓아둔 기금이 바닥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구조다.

현재 독일이나 스웨덴 등도 과거에는 우리처럼 상당 수준의 기금을 쌓아두고 운영해오다 현재는 적립기금이 거의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연금이 지급되지 못한 사례가 아직까지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만큼 기금을 많이 쌓아둔 나라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연금 재정상태가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제도시행 초기인 만큼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다. 올해 제시된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적립기금은 오는 2041년까지 계속 증가해 최대 17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지출 대비 적립금 규모의 배수인 ‘적립 배율’이 28.1배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본의 2.8배나 스웨덴 1배, 미국 3.3배, 캐나다 4.8배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재정목표는 70년간 적립배율 1배를 유지하는 것이다. 오는 2088년까지 그해 가입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급여 등 총지출액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정목표대로 배율을 유지한다면 올해 20세인 국민연금 가입자가 90세까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또 정부는 비록 기금이 바닥나더라도 다른 연금 선진국처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고 연금 재원을 충분히 조달해 지급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금 부족분을 나라가 재정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국민이 소득이 있을 때 보험료를 납부했다가 소득이 없어진 노후에 연금을 지급받도록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 노후 보장제도”라며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이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금이 고갈될 경우 부과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고령화와 저출산 추세, 앞으로의 소득상황 등에 따라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따라서 현세대 또는 미래세대 지급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기금 고갈로 연금 지급을 못 받을 것이란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크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2018년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급 보장 명문화’ 등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뉴시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2018년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급 보장 명문화’ 등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내는 것만큼 못 받는다?
NO. 민간보다 더 받는다

연금 지급을 못 받지는 않더라도 ‘낸 만큼 못 받을 것’이라는 인식 또한 오해다. 현재 국민연금의 안정적 기금운용을 위해서는 받는 것을 줄이거나 보험료를 앞으로 더 내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보니 충분히 지급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을 수령하는 국민은 370만명 정도로 월평균 39만원 정도가 지급되고 있다. 한 달 생활비라고 생각하면 물가수준을 봤을 때 그리 넉넉한 수준은 아니다. ‘용돈연금’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또한 이들이 내는 보험료를 따져보면 9만8400원, 즉 10만원 정도 내고 40만원을 받아가는 상황인 것이다. 4배가량 된다.

국민연금은 낸 돈 보다 많이 받는 구조로 설계돼있다. 현재 국민연금의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5%다. 소득의 9%를 내고 노후에 평균 소득의 45%를 연금으로 돌려받는 구조다.

국민연금공단 설명에 따르면 20년 가입자 기준으로 최저 보험료인 2만6100원을 내는 저소득층은 7.8배를 연금으로 돌려받는다. 최고 보험료인 40만4100원을 내는 고소득층은 1.4배를 돌려받는다. 여기에 물가 인상분까지 반영되면서 연금수급액은 해마다 불어난다. 결국은 아무리 못 받아도 내는 것 이상 받는다는 소리다.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는 적게 내면서 받는 비율은 비슷해 독일 등 공적연금 선진국에 비해서도 수익률이 좋은 편이다. 민감 개인보험과 비교해도 손색없거나 더 낫다는 평가도 있다.

민간보험사의 경우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각종 관리운영비 및 영업마케팅 비용을 제외한 금액인 데다 공시이율도 국민연금의 6.1~10.7%대보다 낮은 3%대(금리연동형)수준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에는 매년 물가상승률이 반영, 실제 국민연금 수령액은 실질 가치가 보장되면서 납부한 금액 대비 실제 수령액은 국민연금이 일반 개인연금보다 훨씬 많다.

이런 점 때문에 의무 가입이 아닌데도 국민연금을 내는 학생이나 주부가 지난 2013년 17만명에서 지난해 32만명까지 늘었고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해 추가납부를 하는 사람도 같은 기간 5배나 증가했다.

따라서 ‘많이 내는데 조금 받는다’는 말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65세 이후 받는 수급액 40만원이 낸 것에 비해 많이 받은 것이라고 해도 당장 노후에 큰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당장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한다는 것 자체가 가입자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국민연금을 ‘세금’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안정적 기금 운용을 위해서는 앞으로 더 내야 한다고 하니 불만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급여에 비해 보험료율 인상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보험료율은 20년째 고정돼 왔다. 소득대체율은 매년 0.5%씩 낮아져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예정이다.

따라서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위해 올해 26.3배인 적립배율을 앞으로 30년간 1배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9%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에 자문위에서도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는 대신 보험료율을 최대 13.5%까지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하거나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을 2% 정도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결국 더 받으려면 내는 것을 늘리던가 적게 받고 덜 내는 것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일 뿐이다.

오해와 공포는 어디서 왔는가?
쌓여온 불신, 의도된 공포마케팅

이 같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불신과 그 기능에 대한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약속이 번번이 바뀌어 왔던 것도 이 같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국민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8년만 하더라도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로 설계되면서 노후보장의 기대감을 키웠다. 이에 더러는 국민연금제도가 마치 노후를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오판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이후 몇 차례 수정됐고 소득대체율은 40%대까지 내려앉았다. 낮아지는 소득대체율은 기대감을 실망으로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 거기다 지급개시 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연장된 것도 불안감을 키운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5년마다 이뤄지면서 기금 고갈 시점 등 운용상황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데다 그동안 이에 따른 재정계획 목표가 불분명했던 것도 문제다. 그렇다 보니 가입자에게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도 둔탁했다.

여기에 인위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공포를 확산하고 있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최근 보수 언론 등을 중심으로 이어진 ‘국민연금 기금 고갈론’이 의도적이 프레임이라는 해석도 이에 해당한다.

국민연금공단 김성주 이사장은 지난달 2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연기금 고갈 우려와 관련해 “실제 그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자꾸 불안감을 부추기는 부분이 있다”며 일부 세력이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도 같은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4차 재정추계 관련 토론회에서 “기금 고갈론으로 조장된 불안감을 가장 즐기고 있을 곳은 사보험 시장일 것”이라며 “적정 소득대체율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기금 고갈론만 부각된다면 결국 수익률이 오히려 더 낮은 민간연금 시장만 확장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의심했다.

또 반대로 이 같은 공포 마케팅이 보험료 인상을 위한 국민연금 측의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노총 전광호 사무처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이 중심이 돼 논의돼야 하는데 이 취지는 사라지고 재정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다”며 “기금고갈을 중심으로 한 공포, 협박 등이 이어지며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낮아져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국민연금에 대한 공포가 오해라는 것이 국민연금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미 확산된 기금고갈 공포 등으로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자문위가 내놓은 두 가지 대안 모두는 앞으로 개혁안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와 국민연금공단 등 책임기관은 국민연금의 신뢰회복과 초고령화와 저출산, 저성장 시대에 실효적 노후보장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과제도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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