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저출산, 국민연금 재정불안 촉진
보험료율 인상‧소득대체율 하락 불가피
저성장 악순환‧부실 기금운영 우려상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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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논쟁이 뜨겁다. 국민연금 기금이 약 40년 뒤면 소진되고 그때까지 문제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자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보험료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 등 국민연금의 가치판단은 물론 제도 개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노후보장 장치로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개선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하면 불신을 기반으로 한 무용론도 만만치 않아 실질적 논의와 해법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민연금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살펴봤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국민연금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약속하겠다는 ‘지급보장 명문화’를 직접 지시했다. 노후에 과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느냐’는 국민 불신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앞서 본지에서도 ‘[국민연금 갑론을박①]불신이 부른 오해와 왜곡된 공포’(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157) 제하의 기사를 통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돼 못 받는다’ ‘낸 만큼 못 받는다’는 우려는 오해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재 국민연금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국민연금 재정 상태는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의 영향으로 이전 전망에 비해 분명히 악화됐다. 4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지만 언젠가 다가올 기금 고갈 시점을 맞이하면 지급분 만큼 기금을 거둬야 해 보험료율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전에 예상한 것보다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미래세대의 부담은 커질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얼마나 더 부담해야 하는가’
불가피한 보험료 인상, 커지는 부담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불안의 기폭제가 됐다.

지난달 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가 내놓은 국민연금 장기재정전망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2088년 1029만명 수준까지 감소하고 가입자 수 대비 노령연금수급자 수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령연금 수급자는 올해 367만명에서 고령화 진전 등으로 2063년에는 최고 1558만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가입자 수 대비 수급자 수가 크게 늘면서 기금 고갈 시점은 과거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 졌다. 수지적자 시점도 2044년에서 2042년으로 줄었다.

최근 저출산 경향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출산율을 지난 2015년 1.24명, 2020년 1.10명, 2040년 이후 1.12명으로 본 통계청의 저위 시나리오를 적용하거나 출산율이 1.05명을 유지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대입할 경우, 미래세대가 국민연금 존속을 위해 오는 2088년이면 29%~38%에 달하는 고율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출산율이 계산법에 적용된 수준보다 더 떨어질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은 더 커질 수도 있다.

문제는 지난해 1.05명으로 떨어진 출산율은 특단의 대책이 통하지 않는 한 반등할 기미나 기대가 크지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인구동향 보고서를 보면 올해 6월 출생아는 2만6400명으로 지난해 6월보다 2500명(8.7%) 감소해 2016년 4월부터 27개월 연속 최저기록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38%에 달하는 보험료율 인상 계산은 현 변동 없는 출산율 등 최악의 조건을 상정한 경우라는 점을 감안해 제외하더라도 재정추계위가 내놓은 기본안의 28.8% 인상 전망도 충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당장 올해 26.3배인 적립배율을 2088년까지 1배로 유지하려면 9%인 보험료율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올해 국민연금 재정계산 제도발전위원회는 70년간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추산결과를 들어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험료율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하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연금 가입자들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보험료율 인상 카드는 내년 총선 등을 고려했을 때 정치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다.

당장 국민연금보험료 인상이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달 국민연금 재정계산위가 보험료 인상 방안을 내놓자 “보험료 인상이 민간소비와 고용을 감소시키고 물가인상과 노후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납세자연맹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2%p 정도 인상하면 지난해 징수액기준으로 매년 9조원 정도의 보험료 부담이 더 생길 것”이라며 “보험료 부담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감소해 민간소비 감소,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대기업 근로자에 비해 부담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보험료인상이 노후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연금, 노후보장 해답 될까?’
기대보다 낮은 보상, 낮아지는 소득대체율

보험료율 인상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보상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연금 구조상 그렇지 못하다. 보험료율을 인상하더라도 안정적인 기금 운용을 위해서는 노후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대체율은 현재 그대로거나 지금보다 떨어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70년간 연금 재정 안정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소득대체율을 45%로 고정하고 내년 11%로 즉각 올리거나, 소득대체율은 지금처럼 40%대로 인하하되 10년에 걸쳐 13.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된 상태다.

선행된 방안을 선택한다면 현재 45%대 소득대체율은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제시되는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 명목 소득대체율로 실제론 가입기간이 그보다 짧아 받는 액수도 예상보다 적다.

물론 민간 개인보험보다 안정적 이율과 물가변동률이 반영되면서 높은 수준의 연금 지급이 가능하지만 가입자의 기대치에는 못 미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에 일각에서는 의미 있는 노후보장 대책으로 국민연금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40%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2.9%)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또한 명목 소득대체율이 45%일 때 실질 소득대체율은 28.1%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실질 소득대체율을 30~3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소득대체율을 올리기 위해선 그만큼의 재원 충당을 위해 보험료를 더 많이 걷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현재 보험료를 더 걷는 부담 대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제도개혁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게다가 연금을 납부하는 기간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금을 지급받는 시기도 현행 65세에서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결국 늦게까지 내고 늦게 지급받아 재정 여력을 조금이라도 확보하자는 취지지만 수급자들에게는 환영받기 힘든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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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급 보장 명문화’ 등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결국 세금으로 충당?’
연금 뒷받침할 경제 체력 유지 관건

아직까지 정부에서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기금이 소진되는 시점, 또는 수지적자 시점이 되면 정부도 독일 등 연금 선진국과 같이 그때 걷어서 수급자에게 지출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다. 적립된 기금에서 지급하는 것이 아닌 걷어서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되게 되면 재정의 부담도 본격화 된다. 이에 ‘후세대 연금 가입자의 보험금 지급 여력이 있는가’ 또는 ‘부족분에 대해 정부에서의 재정 지원은 가능한가’란 질문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결국에 앞으로 우리 국가 경제 체력이 안정적인 연금운용을 뒷받침할 수준이 될 것이냐가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크게 부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재정계산대로라면 2060년 한국의 노인인구는 41.2%, 국민연금으로 지출해야 하는 총금액은 GDP 대비 7.5% 정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 등을 합칠 경우 공적연금에 지출하는 비중은 11~12% 정도다. 이는 유럽연합 28개국이 지난 2013년 공적연금비용으로 지출한 11.3%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경제위기 등 변수를 감안해 국가 경제 상황이 이를 버티기 힘든 수준이 되면 연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달 29일 ‘국민연금 지급보장의 불편한 진실 7가지’를 발표하면서 “지급보장을 법률로 보장한다고 해도 경제가 악화되면 연금의 실질가치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기금을 많이 쌓아두는 것이 아닌 국가경제의 성장이 노후를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금이 고갈되면 세금을 징수해 해야 하는데 초고령화 사회인 미래의 젊은 세대가 만약 소득세,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복지세금 등이 너무 많아 이에 반발한다면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게 되고 그때는 국가가 약속한 연금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또 이들은 “공단이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만큼 올라 실질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국민연금 물가인상은 전년도 물가인상을 반영한다고 해도 베네수엘라같이 초인플레이션이 되면 연금의 실질가치는 보장되지 않는다”며 “궁극적으로 기금을 많이 쌓아 놓는다고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경제가 성장돼야 노후가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맡긴 내 돈 잘 있나?’
안정감 잃은 기금운용

재정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 여부나 부과방식 등의 제도개선뿐만 아니라 기금운용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적립식으로 운용되고 있는 연금기금은 가만히 모아두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투자 등을 통해 수익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금운용도 장기 정책을 세워 미래 수익률 달성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이루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기금 운용수익률이 나쁘면 기금 총액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연금운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수익률은 매년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고 1988년부터 현재까지의 누적 수익금은 303조원에 이르고 있어 기금운용 수익률 때문에 재정이 고갈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 웹사이트에 공시된 운용성과를 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국내주식 운용수익률은 -1.19%로 지난해 연간 수익률 7.26%에 비해 크게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불안감을 키운 것도 사실이다. 올해 들어 미중 무역 분쟁과 아르헨티나·터키 등 신흥국 금융위기, 달러화 강세와 같은 외부 악재로 국내 증시가 힘을 잃은 탓이다.

여기에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이 노출되는 것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아직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크게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국민연금 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시점에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행보임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원활한 국민연금 개선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기금운용본부장 인사 등을 빠르게 마무리 지어 내부 안정화에 착수하는 동시에 다시 안정감 있는 기금운용 실적을 내보이는 등 국민연금 조직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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