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37년 전 임관 50여일 만에 서해안 해안소초에서 사망한 채 발견돼 ‘자살’ 처리된 故 윤병선 소위(당시 23세) 사망 사건의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판단이 나왔다.

12일 권익위에 따르면 본 위원회는 전날 윤 소위 사망원인 재조사를 요청한 동생 윤모씨의 고충민원에 대해 해당 사건이 명확히 규명될 수 있도록 국방부에 재조사를 주문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학군 19기의 윤 소위는 지난 1981년 6월 경기도 시흥의 한 군부대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런데 윤 소위는 불과 임관 50여일 만인 같은 해 8월 16일 새벽 오이도 부근 해안초소에서 순찰 근무 중 총상을 입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군부대는 윤 소위 죽음에 대해 “술에 취한 부하 병사가 총으로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과정에서 실제 총알이 발사되는 하극상이 발생했고, 이때 중대장이 부하를 질책하지 않고 그냥 데리고 나가자 불만을 품고 총기로 자살했다”고 표명했다.

이후 유족의 이의제기로 2001년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사망원인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올해 3월 유족은 “군 복무를 마친 후 대기업 입사가 예정돼있었다는 점,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다는 점 등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누명을 벗고 명예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을 넣었다.

권익위의 조사 결과 당시 군부대의 발표대로 사건 당일 해당 지역에는 총기사고가 발생했음이 확인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건 수사를 맡았던 군 사법 경찰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1981년 8월 16일 새벽 1시 30분경 해안경계 초소에서 근무하던 부사관 2명이 소주 2병을 나눠 마시다 순찰 중이던 윤 소위에게 적발됐다. 윤 소위로부터 힐책과 근무지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은 A 부사관은 불만을 품고 윤 소위를 뒤따라가 M16소총에 실탄을 장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때 옆에 있던 B 부사관이 A 부사관의 소총을 뺏는 과정에서 공포탄 한 발이 발사됐다’고 기록돼있다.

또 ‘부하로부터 협박받은 자신에게 아무런 위로의 말을 하지 않고 두 부사관을 꾸짖지 않는 중대장에게 화가 난 윤 소위는 그날 새벽 4시 35분경 아카시아 나무 중간 부분에 개머리판을 밀착시켜 총구를 자신의 명치에 겨눠 자살했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권익위는 해당 보고서에 적힌 자살 여부를 판단할만한 중요 사항이 모순되고, 보고서 기록과 참고인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사입구 0.4cm·사출구 1cm로 기록돼있는 반면에 사고 다음 날 작성된 사체검안서에는 원형 사입구 0.8×0.8cm·타원형 사출구 0.8×0.5cm로 적혀있다.

또 보고서에서는 총탄이 수평 형태로 관통한 것으로 해석했지만, 사체검안서에서는 총탄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사선 형태로 관통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보고서에는 윤 소위가 현장 즉사로 기록됐지만 2001년 재조사 당시 중대장과 전령의 진술조서에는 ‘소대장실에 왔을 때 사망’, ‘소대장실에 왔을 때까지 숨을 허덕임’이라고 남겨져있다.

아울러 중대장은 윤 소위를 후송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반면 의무중대 선임하사와 중대 인사계는 시신을 대대에서 봤다고 진술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권익위는 ▲유가족이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점 ▲사고 당시 윤 소위의 유서와 목격자가 없던 점 ▲군부대의 자살 견론이 납득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윤 소위 사망사건의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 재조사를 통해 해당 사건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그 결과를 유족에게 상세히 전달해줄 것을 권고했다.

권익위 권성태 부위원장은 “2001년 실시된 재조사에서 사망원이이 철저하게 규명되지 못해 아쉽다”며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윤 소위의 사망사건을 철저하게 재수사해 유족의 의문을 해소시켜주고, 이 같은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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