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인전에 참석한 홍구현 할아버지 <사진제공 = 서울 창신동 쪽방상담소>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쪽방촌 반 고흐’ 홍구현(67) 할아버지 기억하시나요?

홍 할아버지는 불우한 유년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서울 창신동의 한 쪽방에 터를 잡아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홍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는 어려운 형편에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많은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 그림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당신 몸 겨우 뉠 수 있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붓질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걸어둘 곳이 마땅하지 않아 선반이나 냉장고 위에 겹겹이 세워둘 수밖에 없었죠.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한 그림들이 빛을 보지 못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홍 할아버지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림연구소 빅피쉬 아트’와 국제개별협력NGO ‘지파운데이션’, 후원자 등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구 통의동 ‘팔레드 서울 갤러리’에서 ‘쪽방촌 반 고흐 홍구현 작가 개인전’이 열리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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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반 고흐 홍구현 작가 개인전’ 전경 ⓒ투데이신문

지난 8일부터 오는 21일까지 2주간 열리는 홍 할아버지의 개인전에 <투데이신문>도 찾아갔습니다.

갤러리 지하 1층에 마련된 할아버지 개인전에는 가장 좋아하신다는 풍경화와 다양한 모습을 한 여인상까지 총 34점의 그림이 전시돼있습니다. 평소 그림 마무리 작업은 나이프를 이용해 거칠게 표현하길 선호하는 할아버지의 기법 때문인지 조명 아래 그림들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홍 할아버지의 첫 전시회인 만큼 많은 분들이 축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개관 첫날에는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았고 평일에는 10~20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림도 2/3 이상 팔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찾아온 관람객 가운데는 홍 할아버지가 넓은 세상을 직접 보고 더 많은 걸 그림으로 표현하실 수 있도록 이곳저곳을 모시고 다니고 싶다고 말한 분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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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반 고흐 홍구현 작가 개인전’ 작품 ⓒ투데이신문

전시회 자원봉사자 김재희(45)씨는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림에 담긴 할아버지의 마음은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림에 문외한이라 평가를 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건 그림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훌륭하게 그리셨는데 만약 배우셨다면 정말 잘 그리셨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림에서 할아버지의 거칠고 울컥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갑작스럽게 펼쳐진 꿈같은 일들에 얼떨떨해하시던 할아버지도 사람들의 관심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작품 앞에선 늘 겸손함과 쑥스러움뿐이었지만 작은 방안에 갇혀있던 그림들이 넓은 공간에 전시된 걸 보니 이제야 그림이 살아 숨 쉬는듯하다며 내심 뿌듯해하셨습니다.

지난 9일 개인전에 참석한 홍구현 할아버지 <사진제공 = 서울 창신동 쪽방상담소>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할아버지는 어떤 기분일까요.

“작가로서 활동하려고 그린 게 아니라 나 혼자 취미생활로 그린 그림이다 보니 전시회나 사람들의 관심이 아직 부담스러워요. 요즘에 대학교까지 가서 그림 배우는 실력 좋은 사람들도 많다 보니 전시회는 꿈꿔본 적도 없고 그럴 실력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분이 좋은 한편 아직은 믿기지 않아 벙벙한 느낌이에요. ”

전시회 수익금은 앞으로 할아버지가 그림 그리고 생활하는 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누구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홍 할아버지가 아무런 걱정 없이 붓을 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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