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법 없다⑦] 대법, 성관계 영상 재촬영 유포 무죄 판결
“법원이 몰카 유포 장려하는 꼴” 온라인·여성계 비난 확산
‘처벌공백’ 지적에 여·야 의원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발의
법조계 의견 엇갈려…‘사법부 해석 바꿔 처벌해야’ 의견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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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13일 성관계 동영상을 컴퓨터로 재생해 그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어 타인에게 전송하는 것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15년 A씨는 자신이 일하는 유흥주점의 손님 B씨와 내연 관계로 지내다 이별을 통보받자 합의 하에 촬영했던 성관계 동영상을 컴퓨터로 재생한 뒤 그 화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B씨의 부인에게 전송해 카메라 등 이용촬영(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은 ‘카메라 등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있다. 또 같은조 제2항은 ‘제1항의 촬영이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1·2심 재판부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그 의사에 반해 제공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피고의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하는 행위만이 성폭력저벌법상의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는 행위’에 해당하고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하는 행위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대법원의 성관계 영상 재촬영 유포 무죄 판결에 대한 온라인 반응 사진출처 = 트위터 캡처
지난 13일 대법원의 성관계 영상 재촬영 유포 무죄 판결에 대한 온라인 반응 사진출처 = 트위터 캡처

대법 판결에 누리꾼·여성계 비판

대법의 판결이 나오자 온라인에서는 ‘몰카 유포를 장려하는 것’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판결이 불법촬영 기기의 발달 등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법원이) 앞으로 재촬영해서 유포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거울에 비친 성관계 모습을 촬영한 몰카도 무죄겠다”고 대법원의 판결을 비난했다.

여성계에서도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김현지 활동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신체’라는 구성요건을 굉장히 엄격하게 해석했다”며 “발전하고 있는 기술과 범죄 수법에 비해 처벌공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화질이 낮은 영상이 유통되던 시대도 아니고, 영상을 컴퓨터로 재생해 휴대전화로 찍어도 원본과 유사한 화질을 유지한다”며 “이미지를 촬영했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것을 유포한 것 만큼이나 피해 크기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결이 내려진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여파 활동가도 통화에서 “재현된 이미지로 이뤄진다는 사이버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재촬영 본 유포 역시 원본이 유포된 것과 동일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지금의 규정에 열거된 행위를 지엽적으로 해석한다면 포괄되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판례가 지속된다면 재촬영유포 피해자들이 사법체계 안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사건을 해결할 수 없게 돼 피해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뉴시스
대법원 ⓒ뉴시스

여성계 “사법부, 디지털성범죄 특수성 고려 없어”

이 같은 판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C씨는 미성년자인 피해자 D양과 화상채팅을 하면서 D양에게 가슴과 성기 등 신체부위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D양은 자신의 신체 부위를 화상카메라에 비췄고, C씨는 컴퓨터 화면의 영상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해 동영상 파일로 저장했다.

이에 C씨는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과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상 ‘촬영’의 사전적·통상적 의미는 사람·사물·풍경 따위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는 것이고 촬영의 대상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라고 봤다.

대법원은 “C씨가 촬영한 것은 D양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D양이 촬영해 전송된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재촬영한 것”이라며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현지 활동가는 “법원이 디지털성범죄의 양태, 특수성을 잘 모르고 있다. 기술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성폭력의 양상을 고려하지 못한 판례들이 계속 쌓인다면 불법촬영·유포 피해자들의 피해회복도 어려워지고 좋지 않은 선례가 남는 것”이라며 “법조계에서 이 같은 범죄행위를 다각적으로 고려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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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정법률안’ 발의…법조계 찬반 엇갈려

입법부에서는 이와 같은 처벌공백을 막기 위해 재촬영 유포를 처벌할 수 있도록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 등 의원 10명은 지난해 3월 8일 신체를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아직까지 상임위원회 심사에 계류 중이다.

또 A씨 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후인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 의원 10명은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1항에 촬영물을 재촬영한 것을 포함하는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며 같은 당 박재호 의원 등 국회의원 14명도 지난 17일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재촬영돼 유포되는 피해를 막기 위한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박재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법률안에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거울 등 다른 물체에 반사되거나 모니터 등에 표시되는 사진 또는 영상을 촬영·유포하는 행위를 포함됐다. 다만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이를 반포 및 판매, 제공, 전시, 상영할 목적으로 대상자의 동의하에 촬영된 사진·영상인 경우는 제외했다.

이들 법안이 통과된다면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처벌공백을 메울 수 있겠지만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 지난 4월12일 검토의견을 통해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개정안에서 규정한 재촬영 범위의 해석이 명확하지 않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인터넷상에 유포된 사진을 캡처하는 경우도 포함하게 된다면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미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을 재촬영하는 경우 피촬영자의 동의 여부도 명확하지 않아 어떤 기준을 통해 판단할지 불명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반면 한국여성변호사회(이하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김현아 변호사는 “촬영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유포에 대한 처벌 문제”라며 “유포를 통한 피해발생에 집중한다면 변협이 우려하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김숙희 변호사도 “피촬영자 동의 여부 판단은 조사 혹은 재판 과정에서 입증하면 된다”며 “재촬영의 개념에는 편집, 캡처 등이 모두 포함된다. 명백성에 반한다는 주장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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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입법을 통한 방법 외에 사법부의 해석을 달리해 처벌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현아 변호사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는 ‘신체’라고 돼 있지만 결코 신체 그 자체로 규정돼있지 않은데 이를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로만 해석했다”며 “신체를 신체 그 자체로 해석하지 않을 수 있다. 법적 해석이 논란이 될 때 입법으로 해소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때마다 하나하나 모든 걸 추가하는 것 보다는 지금의 해석을 달리해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숙희 변호사도 “대법원은 ‘직접성’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범죄 구성요건에 포함했는데, 이는 보호법익과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성범죄의 양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날로 진화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사법부의 법 해석, 입법부의 법안 통과 미진으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사법·입법부가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빠르게 대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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