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현대인에게 산은 레저와 휴양, 환경보호를 위한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인류 전체의 역사 속에서 산은 일종의 ‘신성한 공간’으로도 여겨졌다. 인류에게 산이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산이 지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한 대표적인 주장으로 엘리아데(Eliade, M.)의 다음의 언급을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궁전이나 왕도(王都), 심지어는 여염집까지도 우주산의 꼭대기에 있는 “세계의 중심”에 있을 것으로 믿었다. -(중략)- “세계의 중심”은 우주적 평면의 돌파구, 바꾸어 말하면 천상과의 교통이 가능한 장소에 있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것이다. 

실제로 기원전 15세기에 이미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강한 종교관에 따라 바하리(Bahari)에 거대한 핫셉수트(Hatschepsut) 여왕의 장제신전을 건설하고 신전 주변에 수목을 대량으로 심어 성스러운 숲(神苑, shrine garden)을 조성했다. 또한 그리스인들도 신전 주위에 수목을 식재함으로써 성림(聖林, sacred garden)을 조성했다. 일본과 중국에도 후지야마[富士山], 타이샨[泰山] 등은 특정 종교에서 성지로 여기고, 신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며, 심지어 그 나라의 랜드마크로 여겨졌다.

산이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백두산, 태백산, 한라산 등은 신화의 공간이 되었고,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여겨진다. 또한 오대산(五臺山), 금강산(金剛山)은 불교의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계룡산에는 아직도 수많은 종교의 본산이 자리 잡고 있고, 많은 무당들이 최고의 기도터로 여기고 있다. 지리산의 경우 전통적인 명산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 현대사에서 분단과 민주화의 역사적 성지로 꼽히고 있다.

단군신화에서는 천신의 아들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처음 자리를 잡는 곳이 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였고, 그의 아들인 단군은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에 대해 임재해는 “환웅처럼 하늘의 천신이 지상에 내려와서 산신으로 좌정하고, 단군처럼 건국시조왕이 죽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산신이야말로 민족 최고의 신으로 떠받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6촌장은 모두 하늘에서 산에 내려 왔으며, 신라의 제2대왕 석탈해는 토암산에 묻힌 후 동악신(東岳神)이라고 일컬어진다고 전해진다. 신라의 산에 대한 숭배에 대하여 정구복은 신라의 대사(大祀)는 중국의 제도와 비교하여 볼 때 천지신(天地神)과 종묘(宗廟)에 대한 제사가 들어있지 않고 삼산(三山)만이 들어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설명하였다. 신라의 산에 대한 숭배가 다른 시대나 역대 왕조에 비해 강하고 독특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 조선으로 이어져 산악에 국가 제의를 정기적으로 지내게 된다. 고려 왕조는 천재지변 등이 있을 때마다 오악명산에 제사를 지냈다. 특히 고려 후기에는 봄과 가을이면 경도의 송악산, 적성의 감악산, 진천의 태령산, 남원의 지리산, 광주의 무등산, 정주의 비백산 등지에서 산천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산신신앙의 형태가 다양화된다. 국가적인 공동체 신앙 중심에서 개인신앙 또는 마을신앙 단위로 확산되었다. 특히 조선 중기에 이르면 명산은 물론 주, 군, 현 단위로 산악제를 주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산을 신성시 여기는 것이 인류에게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고, 한국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많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고대의 산악숭배 신앙은 집단, 즉 국가·부족·마을 단위 형태의 신앙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로는 개인과 마을 단위의 신앙으로 변모하게 됐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산은 우리에게 사람의 생존에 꼭 필요한 산소, 각종 음식과 자원을 제공하며, 휴식과 운동의 장소도 된다. 가을의 산과 단풍을 즐기면서 우리 마음속 깊이 있는 “신이 사는 장소”인 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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