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무료입장 한복기준 논란…소비자, 퓨전한복 선호도↑
현대화·세계화 중인 전통문화…문화 정체성 훼손 우려도
문화변동 불가피…우리 것을 지켜내는 세계화 전략 필요해

2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 하야 문화센터 열린 퓨전국악팀 이어랑의 ‘Sound of Korea’ 공연
지난 2일(현지시각) 요르단 암만 하야 문화센터 열린 퓨전국악팀 이어랑의 ‘Sound of Korea’ 공연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우리는 그동안 ‘과거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이 습득돼야 제대로 된 앎이 될 수 있다’는 조상들의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서를 이어 전통문화를 지켜왔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바뀌듯 세월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방식 등에 따라 현대화·세계화 과정을 거치며 전통문화도 변화했다. 

자국민에게마저도 주목받지 못하던 전통문화의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고, 세계인에게 한국을 알리는 발판이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이는 미래의 전통문화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같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한편 지나친 현대화·세계화가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과연 현대화·세계화는 전통문화를 살리는 청신호일까, 본질을 훼손하는 적신호일까.

<사진 제공 = 종로구청>

종로구청 “퓨전한복 고궁 무료입장 안 돼”

지난 9월 11일 서울 종로구청에서는 ‘우리 옷 제대로 입기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한복 착용 고궁 무료입장과 관련해 “전통한복을 착용한 사람에 한해서만 음식 할인 혜택 등을 주고 고궁 품격에 맞는 무료입장 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문화재청에 적극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2013년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국내 고궁을 방문할 때 한복을 입으면 무료입장이 가능한 혜택을 도입했다. 성별에 맞게 상의(저고리)와 하의(치마, 바지)를 모두 갖춰 입은 전통한복과 여미는 깃의 저고리와 하의(여성치마, 남성바지)만 갖추면 생활한복까지도 무료입장이 혜택 대상에 포함했다.

경복궁과 인사동, 북촌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 등 인근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입어온 한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허리 뒤로 리본을 길게 늘어뜨리고 치마 속에 와이어링(고정장치)를 넣어 풍성하게 부풀린 금박무늬의 화려한 기생풍 퓨전한복이 다수다.

김 구청장은 우리 전통을 지키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혜택을 한복의 정체성이 훼손된 변형 한복에게까지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소비자의 89%가 변형된 디자인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개량한복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설문조사 전문기관 ‘패널나우’가 만14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퓨전한복 설문조사 결과도 ‘전통적인 한복의 정체성을 해친다’는 의견은 3484건(22.6%)이었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한복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은 1만0730건(69.6%)으로 3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퓨전한복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긍정적인 시각이 더 우세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민속촌에서 한복 착용 경험이 있다는 A씨는 “최근에 퓨전한복이 ‘한복의 정체성’을 해친다고 문제 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외국인이 퓨전한복을 보고 전통한복으로 오해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며 “다만 퓨전한복을 전통한복 훼손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기 어렵고, 퓨전한복을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없앤다고 해서 전통한복을 찾게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복궁에서 한복 체험을 해봤다는 B씨도 “그렇게 하나씩 다 따지고 들면 온전한 전통한복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며 “퓨전한복이든 전통한복이든 그것을 계기로 시민들이 한 번이라도 더 우리의 고궁을 방문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상업성 짙은 퓨전한복 뒤에 전통한복이 가려지는 게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C씨는 “궁이나 인사동에서 추억을 목적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지인 중에도 있다. 전통한복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고 과하게 짧거나 화려한 경우가 많다”며 “상업화된 느낌이 강하게 들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어디까지를 전통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봤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종호 교수는 “퓨전한복 중에도 매듭을 맨다거나, 띠를 두른다거나, 한복의 선 등 따지고 보면 한두가지의 전통요소가 분명 존재하는데 이를 두고 ‘전통이다, 아니다’를 논하기는 어렵다”며 “사용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퓨전한복은 만들어지고 있는 전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여 백제고도 이미지찾기 한옥사진(상), 최소리 총감독의 아리랑 파티(하) 최소리 총감독 ⓒ뉴시스

현대화·세계화 바람맞은 전통문화

전통문화 현대화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국제교류가 빈번해지고 한국이 개방화 단계를 밟으며 시작됐다.

또한 2000년대 전후로 형성된 한류열풍은 본격적인 현대화 바람을 일으켰다. 한복뿐만 아니라 한식, 한옥 등 의식주를 비롯해 국악, 탈춤, 전통악기 등 예술분야 등 우리 전통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비싼 주택비용과 유지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꺼려오던 전통방식의 한옥과 달리 현대 생활방식에 맞춰 변형 또는 진화시킨 현대한옥이 늘고 있다. 현대한옥은 관광명소의 숙소로도 활용돼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국내 관광객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 2015년 신라호텔은 우리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 주는 자랑스럽고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인 종가음식을 지키기 위해 전국 40여 고택에 대한 실사 및 숙박 상품 개발 지원 계획 등 종가음식 현대화 사업 계획을 밝혔다.

이 외에도 한국인의 신명과 흥취, 전통적인 아름다움, 역동적 패기가 돋보이는 태권도, 비보이, 타악기, 한국무용이 결합한 종합공연 타악기연주가 최소리 총감독의 ‘아리랑파티’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장 전통적인 것을 현대화·세계화해야”

전통문화의 현대화·세계화는 우리 것을 세계인과 공유하고 널리 전파하는 긍정적 효과를 낸다. 그러나 도를 지나쳐 ‘전통문화 정체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종호 교수는 누구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80%, 현대화·세계화로 인한 새로운 전통이 20% 정도인데, 거센 시대적 흐름의 영향을 받은 20%의 문화 변동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전통적인 것을 지켜내면서도 문화변동을 수용하는 현대화·세계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최 교수는 “생성, 변화, 발전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형성된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조선시대 생활양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짚신을 신고 풀 먹인 모시를 매일 빨아 입을 수 있겠냐. 역사와 전통을 원형 그대로를 보존해야 한다는 건 문화 개념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빔밥이나 불고기처럼 우리 고유의 것을 그대로 세계인에게 알리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세방화) 전략이 가장 고부가가치 효과가 있지만, 더 많은 세계인이 공유하기 위해서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세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가장 전통적인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가능한 우리 것을 살리면서 첨단 물질이나 기술, 생활양식과 문화의 변화를 수용 및 반영해야 한다. 한국적인 것만 고집하는 것은 우리 문화가 숨 쉬지 못하도록 죽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