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논란 통해 드러난 토호세력
지방 유지로 그간 그들만의 권력 누려
선출직 공무원은 근절 못 시켜
시민단체 활성화 통해 견제해야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토론회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토론회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사립유치원 비리 논란이 계속해서 증폭되고 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내용을 공개하면서 세상은 경악했다. 설마 이 정도로 썩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를 연구한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끄덕거린다. 1991년 지방선거가 부활하면서 지방정부는 교체됐지만, 실질적 권력인 지방토호는 여전히 지방권력을 장악해오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지난 6년간 전국 교육청에서 실시한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결과, 총 1878개 사립유치원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이들의 비리 형태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전국의 사립유치원 중 일부가 유치원 교비를 갖고 원장 핸드백, 심지어 성인용품을 구입하거나 노래방, 숙박업소 등을 이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다. 이에 맘카페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근절시켜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토호세력의 발호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관련 감사결과 발표가 났을 때도 세상은 분노했지만, 징계를 받은 사람은 20여명에 불과한 등 처벌은 약했다. 이번에도 학부모들을 비롯한 국민은 분노하고 있지만, 그 처벌 및 대책 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방정부는 교체될 수 있지만, 일명 ‘토호세력’은 교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토호세력은 조선시대부터 써왔던 단어다. 고려시대, 국정을 좌지우지한 권문세족을 호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토호세력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그 지방의 모든 권한을 좌지우지했다. 고려시대까지 그 지방은 해당 지방의 호족이 다스렸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조정은 해당 고을에 수령(일명 사또)을 임명했다. 수령의 임기는 조선 초기에는 30~60개월이었다가, 성종 대에 이르러 관찰사는 2년, 수령은 1800일로 규정됐다. 수령은 가족을 동반할 수 없었으며, 자신의 고향에 부임할 수 없었다. 이는 고을 토호세력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해당 고을의 사정을 모르는 수령이기에 그 지역의 향리(6방)들이나 유향소에 의해 업무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향소는 악질 향리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잡기 위한 지방 품관들이 조직한 자치기구였지만, 고을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수령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늘어났다. 즉, 지방정부(수령)은 1800일마다 교체되지만 지방토호(향리·유향소)는 계속 유지되면서 지역의 막강한 권력이 됐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경우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회 및 교육감을 지역 주민들의 손으로 선출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되려 오늘날 지방토호 세력을 막강한 세력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토호세력은 지역건설업자 혹은 학원사업가, 지역언론사 등을 말한다. 이들은 서로 얽히면서 자신들만의 이익집단이 됐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와 결탁하면서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나갔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9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유아교육 평등권 확보를 위한 전국유치원대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9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유아교육 평등권 확보를 위한 전국유치원대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관리·감독에서 벗어난 이들

지역건설업자들은 해마다 예산안 때만 되면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따야 한다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압박한다. 또한 지역구 국회의원 역시 마찬가지 명목으로 각종 SOC 공약을 선거 때마다 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쪽지 예산’이 난무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건설사업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경우, SOC 사업은 지역의 발전과 연계됐지만, SOC 사업이 포화상태에 놓이면서 오히려 SOC 사업을 줄이고 지역 주민의 복지 사업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건설족은 여전히 SOC 사업을 늘리는 것이 지역의 발전을 이루며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건설족은 혈세가 중요한 곳에 쓰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건설사업이 얼마나 떨어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나마 공공공사 등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감사가 철저하게 이뤄지면서 건설족들이 지역토호 세력에서 어느 정도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학원사업자들이다. 지난 2012년부터 누리과정이 실시되면서 국가 예산이 사립유치원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하다. 이들은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면서 정부의 간섭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면서 계속해 교육감과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압력과 로비를 행사해왔다. 그러다 보니 사립유치원의 비리 의혹에 대해 눈을 감아왔던 것이 현실이다. 이에 최근 건설족보다 사립유치원 원장이 새로운 토호세력으로 등장했다. 물론 과거부터 지금까지 토호세력 중 하나는 지역신문사이기도 하다. 지역신문사는 과거에는 건설족과, 최근에는 학원사업자와 연계하면서 이들을 옹호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건설족, 학원사업자, 지역신문사의 연결고리로 토호세력이 발호됐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들을 토호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반론도 있다. 무엇보다 토호세력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단지 이들의 일부 짬짜미만 보고 토호세력으로 규정하고, 적폐 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토호세력이 국민의 혈세를 받으면서 ‘국가의 관리·감독’에서는 벗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근절 방안은

4년마다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있고, 그때마다 입후보자들은 토호세력 근절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바는 없다. 그 이유는 토호세력이 그 지역에서 이른바 ‘방귀 좀 뀐(?)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유권자임은 물론, 유권자들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역신문사는 지역의 여론을 몰고, 토건족은 그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학원사업자는 학부모들을 앞세워 자신이 그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다 보니 지선 입후보자들은 입으로는 토호세력 근절을 외쳐도 결국 토호세력에게 휘둘리고 있다. 선출직 공무원 대다수는 토호세력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토호세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토호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지역 시민단체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들이 토호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자면 그에 걸맞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토호세력을 근절하기보다는 시민단체의 견제로 인해 보다 건전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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