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비용 절감 효과 내는 ‘무인화 열차’
서울교통공사, 8호선 전자동운전 추진
일자리 감축 및 승객 안전 가능성 우려
인간과 기계가 하는 노동 분리돼야

인천지하철 2호선 ⓒ뉴시스
인천지하철 2호선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 2016년 4월 8일 새벽 서울도시철도 수색승무사업소(6호선 운행)에서 근무하던 기관사 김모(당시 51세)씨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김씨는 평소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수년간 매일같이 어두운 지하터널을 오가는 탓에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기관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2005년 무렵부터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왔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2015년 9월부터 상태가 악화됐다. 사고가 발생했던 해 4월 김씨는 병가를 신청했지만 비극을 피하진 못했다.

이 같은 지하철 기관사의 인명 사고와 지하철 안전사고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무인화 운행’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 국내에는 일부 열차의 출발부터 정차, 출입문 개폐 등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무인운전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하철 무인화는 시민의 안전과 기관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이신설 경전철 ⓒ뉴시스
우이신설 경전철 ⓒ뉴시스

기계가 움직이는 ‘무인열차’

열차운행은 자동화 등급에 따라 기관사가 운전의 모든 과정을 직접 조작하는 수동운전인 ‘NTO(Non-automated Train Operation)’, 열차의 가·감속 조절은 자동이지만 위험 상황 발생 시 비상 정차나 안전한 출발은 기관사가 수동으로 조작하는 ‘STO(Semi-automated Train Operatio)’, 운전업무는 자동이지만 이상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조치와 고객의 안전을 담당하는 기관사가 탑승한 전자동운전 ‘DTO(Driverless Train Operation)’ 운행의 모든 과정이 자동화인 무인운전 ‘UTO(Unattended Train Operatio)’ 등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천 2호선, 대구 3호선, 부산도시철도 4호선, 신분당선, 우이신설 경전철, 의정부 경전철, 용인 경전철 등과 같이 비교적 승객이 많지 않고 곡선이 적은 짧은 노선에서만 설계 단계부터 무인운전을 도입해 운행 중이다.

우이신설 경전철, 신분당선 무인전동차 등을 제작한 철도 전문업체 현대로템에 따르면 1980년대 첫걸음을 뗀 지하철 무인화 개발은 ‘안전성과 정확성’ 강화를 목표로 했다.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도 늘어나게 됐다. 이에 따라 열차 이용 과정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높아지고 정시성은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열차와 지상 관제센터 간의 통신을 활용한 신호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인운전은 관제실에서 열차의 흐름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살피며 각 열차의 운전사에게 운행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열차가 정차하면 기관사가 육안으로 승강장의 상황을 살핀 후 열차문의 개폐를 결정한다. 승객이 많이 몰릴 경우 자칫 확인하지 못한 부분의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인운전은 차량 자체가 지상에 설치된 시스템과 상호 통신해 열차의 운행 간격 및 소통, 위치 등을 자동으로 통제한다. 미리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열차가 움직이며 만약 안전사고 위험을 감지할 경우 출입문이 닫히지 않고 열차도 출발하지 않는다.

이 같은 무인운전은 안전성과 비용 절감, 수익 증대라는 장점이 있다. 초기 시스템 개발 및 구축 과정에서 비용은 필요하지만 이후 운영비용에서 절감이 가능하며 인간의 실수에 따른 사고 위험 감소, 상황에 따라 열차가 가감속을 조절하고 출입문 개폐 시간을 조절하는 등 자동회보운동 기능에 따른 정시성 상승, 열차 운행 빈도 확대 등의 효과를 낸다는 게 현대로템의 설명이다.

실제 2015년 철도사고 발생현황 및 통계분석에 따르면 무인열차인 신분당선에서는 단 한 건의 사망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무인화 시스템으로 설계된 신분당선과 달리 기존에 있던 유인열차를 무인화로 바꾸어 운영한 사례는 아직까지 국내엔 없다. 때문에 승객이 많지 않고, 곡선이 적고 짧은 노선에서 주로 운영되는 무인화 시스템을 승객이 많고 , 곡선이 많고 긴 노선의 기존 유인열차에 적용했을 때도 사고 위험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무인으로 운영 중인 열차에서 여러 사고가 발생하기도 해 무인열차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5월 인천도시철도 2호선 인천시청역에서는 부모가 유모차에 탄 14개월 아이를 먼저 태운 뒤 열차에 오르려고 했으나, 순간 문이 닫혀 부모가 타지 못한 상태에서 열차가 출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 해 4월 16일 가정중앙시장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으며, 2016년 8월에는 인천도시철도 2호선 독정역에서 3살짜리 아이의 발과 유모차가 승차장과 출입문 사이에 끼는 바람에 다른 승객들이 비상 스위치를 눌러 문을 강제 개방하는 사고도 있었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 이용객 2053명을 대상으로 한 ‘2016년도 도시교통 기초조사 및 동향분석’ 용역 설문조사 결과 승객들이 열차 이용에 불편을 느끼는 요인(중복선택)은 ▲열차 내 혼잡 27.3% ▲편함이 없음 26.1% ▲무인운전·운영불안 21.7% ▲역내 편의시설 불편 15.2% ▲소음·진동12.5% ▲배차간격 8.0% ▲역사·열차 내 환경 7.7% ▲기타불편 7.5% ▲ 환승이용불편 6.9% 등으로 무인운전·운영불안에 따른 불편함이 상위 3위를 차지했다.

무인운전 중단 및 김태호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서울교통공사노조원들 ⓒ뉴시스
무인운전 중단 및 김태호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서울교통공사노조원들 ⓒ뉴시스

 “일자리 감축·안전 위협” vs “긴급상황 대비 기관사 탑승”

서울교통공사(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메트로, 이하 교통공사)는 2013년부터 무인운전 시스템 도입을 추진해왔다.

당시 서울시가 컨설팅 업체 맥킨지-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실시한 ‘시정 주요 분야 컨설팅’에서 무인운전이 거론됐다. 맥킨지는 서울시가 2022년 8호선, 2026년 6호선, 2029년 7호선에 순차적으로 UTO 방식을 도입할 경우 2030년에는 약 59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게 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다만 시민의 불안요소를 감안해 도입 초기 지원인력 1명이 탑승하는 DTO 방식을 도입할 것을 추천했다.

올해 3월 교통공사는 세계적인 지하철 운영기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TMB와 손을 잡고 무인운행시스템 등 기술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6월 15일과 20일, 28일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8호선에서 DTO 시험운행을 했다. 아울러  5호선 군자역을 대상으로 무인역사(스마트 스테이션) 시범운영도 예고했다.

이에 대해 기관사들은 ‘무인운전은 사고예방과 안전운행에 역행하고 노동 인력을 감축하는 행위’라고 공사 측에 반기를 들었다.

6월 26일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시민안전을 우선하고 안전인력을 충원하라고 했더니 공사는 엉뚱하게도 DTO와 스마트 스테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 없는 자동화로 지하철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승객 없는 시범운전을 통해 전자동운전, 즉 무인운전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시장의 치적 쌓기에 급급해 운전취급규정까지 바꿔가며 무인운전 추진을 이어가고 있다. 공사는 8호선 영업열차를 시작으로 2019년 이후 전자동운전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기관사와 차장이 열차에 탑승하는 것은 운전뿐만 아니라 사고예방과 즉시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무인운전은 사고발생 후 사후조치만 가능하다”며 “컴퓨터는 열차운행 중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모든 열차 기능을 중단시킬 뿐 그 어떤 비상조치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화려한 영상으로 역사 및 시설물을 조망할지라도 사람이 직접 조치하지 않으면 지하철 안전사고는 대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는 이미 전자동 무인운전 시험과 무인역사 관리시스템 구입비에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 공사계획대로 1~8호선 전체로 이를 확대할 경우 소요되는 예산은 수천억원”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하철은 무인 제조업 공장이 아니다. 공장은 컴퓨터가 고장 나면 단순히 상품생산이 멈추지만 하루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자칫 수많은 사상자를 낳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지하철 자동화와 무인화보다는 사람중심, 안전중심의 시스템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통공사는 현재 8호선에서 추진 중인 전자동운전 DTO는 무인운전 시스템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교통공사는 같은 날 “현재 8호선에서 추진하고 있는 전자동운전 DTO는 비정상적이고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기관사가 운전실에 탑승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무인운전이 아니다”라며 “현재 DTO는 8호선 외에 다른 노선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노조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DTO 시스템을 확대 적용하면 기관사 운전업무 부담이 완화될 뿐만 아니라 DTO 운영기술 보유로 해외 도시철도 운영사업에 진출하게 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 “스마트 스테이션은 분산된 운용 설비들을 지능형 CCTV 기능과 3D 입체화면을 기반으로 역무실에서 집중 관리할 수 있도록 개선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하철 역사 무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간과 기계 양립할 수 있어야”

무인화를 둘러싼 노사의 갈등은 노조가 김태호 교통공사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청 입구를 무단 점거하고, 윤병범 교통공사 노조위원장이 서울광장에서 김 사장의 퇴진과 무인화정책 중단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이는 상황에까지 치달았다.

그러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1일 DTO와 스마트 스테이션 등 지하철 무인화 사업 추진 여부를 사회적 기구를 통해 논의하는 것으로 노사의 극적인 협상이 타결됐다. 논의는 서울시가 주관하고 시민사회단체, 학계 등이 참여하고, 공사 측이 논의 결과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성사됐다.

교통공사노동조합 정기태 교육선전실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사가 추진하려는 무인화 정책은 지하철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같이 중대한 사항을 공사가 독자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일단 정책을 중단하고 노조와 시민단체 등 전문가의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사가 추진하려는 무인화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추진이나 보완이나 중단을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무인운영은 말 그대로 사람 없이 열차를 운행하겠다는 건데 만에 하나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열차 내 사람이 없으면 시스템 조치가 불가능하다. 기계 스스로가 할 순 없지 않은가”라며 “이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출입문을 열고 닫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실제 이미 무인화가 도입된 일부 경전철에서도 탑승 과정에서의 불편함이 얘기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일자리 관련해서는 “단순히 기관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이롭게 쓰여야 하는데 기술 발전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고 고용을 축소하는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며 “기술발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선전실장은 “열차든 역사든 안전인원을 충분히 보강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안전업무와 관련한 인력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 이와 더불어 공사가 주장하는 기술적 측면도 효용성 있게 쓸 수 있다면 도입해야 마땅하다”며 “(인간의 노동과 기계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도 “무인화 내지 자동화,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체하려고 하다 보니 범사회적으로 일자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무인화와 자동화가 과연 사회 효용성을 높일 수 있는지는 우려스럽다. 균형감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건강에 이롭지 않은 힘든 노동이 기계로 대체 가능하다면 굳이 그 노동을 인간이 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 판단하고 감시하고 평가해야 하는 탈숙련화 되지 않는 노동은 인간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