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등 “농민수당 도입 촉구” 요구 높아져
해남군 “내년부터 연 60만원 농민수당 지급” 발표
스위스, 직접지불제로 농축산물 자급률 상승
중앙정부 나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 인정해야

<사진제공 = 해남군>
<사진제공 = 해남군>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농촌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도시-농촌 간 소득격차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국가가 나서서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경남도의회, 경남 양산시의회, 의령군의회 등에서는 농민의 소득안정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농민수당’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며 전북 고창에서는 지난달 18일 ‘농민수당 도입과 실현방안’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 전남 순천·화순·장흥·담양·함평 등 지자체에서는 농민수당 도입을 위해 농민단체와 협의에 나섰으며 전북 군산, 김제, 부안, 익산 등에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농민수당은 무엇이며 농민들은 어떤 이유로 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농민수당 필요성 커져

농민수당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적 보상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WTO(세계무역기구), FTA(자유무역협정) 등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농민들에 대한 소득보전, 도농간·농민간의 소득격차 완화, 중·소농 육성, 농촌 주민의 도시 이탈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 농가 및 어가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가의 평균 농업소득률은 2000년 55.8%, 2005년 44.5%, 2010년 33.4%, 2016년 33.2%로 꾸준히 감소했다.

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013년 2월 발표한 ‘농가의 절대적 빈곤율과 정부정책 효과’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2인 이상)의 절대적 빈곤율은 2003년 3.4%, 2005년 4.7%, 2009년 5.2%, 2011년 4.4%인 반면 농가의 절대적 빈곤율은 2003년 26.6%, 2005년 23.0%, 2009년 32.2%, 2011년 39.0%로 도시-농촌 간의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가소득의 감소세가 지속되자 농민들의 소득 보전을 위한 정부가 농민의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농업경영체로 등록한 농가를 대상으로 공동체 문화 유지, 농촌경관 보호 등 공익적 활동 의무를 부과하고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의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실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지자체도 생겨났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 <자료제공 = 전국농민회총연합회>
농업의 다원적 기능 <자료제공 = 전국농민회총연합회>

해남·강진 등 지자체 농민수당 도입

전남 강진군은 올해부터 ‘논밭경영안정자금’을 농가에 지급하고 있다. 농업경영체로 등록하고 1000m² 이상 규모의 농사를 하고 있는 농가 7100호에 연 70만원을 지급하는 것인데, 이 중 절반은 현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불러올 수 있다.

또 지난 8월 29일 전남 해남군은 내년부터 군내 전체 농가를 대상으로 가구당 연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해남군은 “농민수당은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결정으로 농업 활성화의 혁신적인 선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해남군의 농민수당 지원대상은 농업경영체 등록한 자로, 지원대상자로 등록하는 연도의 직전 1년 이상 해남군 내 주소를 두고 실경작하는 농업인이다. 지원금액은 연 60만원을 농가별 균등지원하고, 2회에 걸쳐 상·하반기로 지급한다. 해남군은 농민수당에 연간 예산 약 9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밖에도 해남군은 지원금 전액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내 경제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또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지속가능한 농업환경 조성을 목표로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의 보전, 토양유실 및 홍수의 방지, 생태계 보전 등을 위해 친환경농업 실천 등의 의무를 부과했다.

이 같은 해남군의 결정에 농민단체도 환영하고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광주전남연맹은 8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남군의 결정이 전국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며 “정부와 국회도 농업의 공익가치를 인정하라는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인근 들녘에서 경북농업기술원 관계자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일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인근 들녘에서 경북농업기술원 관계자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뉴시스

농업·농촌 역할 헌법 명시한 스위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농민수당을 도입한 국가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스위스의 직접지불제는 공익적 목적에서 우수한 사례로 평가된다.

스위스는 지난 1993년 농업·농촌의 개념을 식량 생산에서 확장해 생물다양성의 보존, 경관보전, 토양과 수자원의 보호임을 명시한 연방헌법을 제정했다.

연방헌법이 정한 스위스 농업·농촌의 주요 임무는 국민에게 식량 공급을 보장하고 미래세대가 비옥한 토양과 깨끗한 물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생산방법을 사용하는 것과 국민의 높은 삶의 질과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경관 보전, 농촌지역 유지 등 네 가지다. 공익적 농업을 농업정책의 새로운 방향으로 인식한 것이다.

스위스는 값싼 수입 농·축산물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농업·농촌을 유지하기 위해 1993년 연방헌법에 근거, 직접지불제를 시행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시행 중인 직접지불제는 크게 일반 직접지불제와 공익형 직접지불제로 구분된다.

일반 직접지불제는 생태학적 성과증명을 준수하면 농가의 영농조건에 따라 직접지불금을 지급한다.

농업의 경우 ▲경작가능 면적당 금액을 지급하는 ‘면적직접지불제’ ▲경사지 농장을 대상으로 경사도와 면적에 따라 금액을 지급하는 ‘경사직접지불제’ ▲경사지에서 포도를 재배할 경우 경사도와 면적에 따라 금액을 지급하는 ‘경사지포도직접지불제’로 나뉜다.

또 축산업의 경우 ▲가축 두수 당 금액을 지급하는 ‘방목직접지불제’ ▲구릉지역이나 산악지역 등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 지급하는 ‘조건불리축산직접지불제’로 구분된다.

‘공익형 직접지불제’, 자연보호·동물권 향상 기여

공익형 직접지불제는 다시 생태적 직접지불제와 동물복지 직접지불제로 나뉘는데, 생태적 직접지불제에는 ▲자연보호법에 근거한 자연보호 규정에 따라 이행조건을 준수할 경우 지급하는 ‘생태보상직접지불제’ ▲정부기관이 추천한 곡물을 생장조절물질이나 살균제, 자연기능 조절제, 살충제 등을 쓰지 않고 20a(2000㎡) 이상 경작하면 면적당 금액을 지급하는 ‘조방적 곡물생산직접지불제’ ▲유기농업 법령에 근거해 작물을 생산하고 보증기관의 감독을 받는 경작지에 대해 지급하는 ‘유기농직접지불제’ ▲생태적 수준을 향상시키거나 생태적 네트워크 구축 계획의 요구조건을 만족할 경우 지급하는 ‘환경규정이행직접지불제’ 등이 있다.

동물복지 직접지불제에는 ▲규정된 사육시스템을 준수할 경우 가축의 종류와 연령, 두수에 따라 지불금을 지급하는 ‘동물복지형 직접지불제’ ▲5월부터 10월까지 한 달 최소 26회 이상 야외 방목과 11월부터 4월까지 월 최소 13회 이상 방목할 경우 금액을 지급하는 ‘정기방목직접지불제’ ▲여름 동안 일정 기간 이상 산중방목을 이행하면 가축의 종류나 두수에 따라 지불금을 지급하는 ‘여름방목직접지불제’가 있다.

스위스는 이처럼 다양한 직접지불제를 도입하고 생태적 성과증명을 통해 철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고 위반에 대한 벌칙 부과 시스템을 도입했다.

직접지불제도 시행 결과 스위스는 1999년 이후 식물성 식품은 40%, 동물성 식품은 90% 이상의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다.

농업부문 부가가치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성장률이 낮지만 직접지불금이 지원되면서 스위스의 농가소득은 유지 혹은 소폭 증가하고 있다. 농가 소득이 안정되면서 농가 인구·면적 감소세도 완화됐다.

직접지불제는 농업의 유지는 물론 환경보전이라는 공익적 효과를 불러왔다. 구릉지대와 산악지대의 농업생산 활동이 유지되면서 환경보전·경관 유지가 가능해진 것이다.

또 2002년부터 생태직접지불금 제도의 시행으로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경작지와 생태보전 지역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화학비료 사용량도 줄어 토양 보전의 효과도 보게 됐다. 아울러 온실가스 배출량도 감소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민중당 관계자들이 '농민수당 전국적실현을 위한 전농-민중당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민중당 관계자들이 ‘농민수당 전국적 실현을 위한 전농-민중당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창출에 대한 사회적 보상으로 2조4000억원 규모의 농민수당을 도입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국내 직접지불제 공익형으로 개편 필요

한국도 WTO, FTA 등 대외적인 여건변화로 농산물 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농업을 통한 국산 농산물의 공급, 식량안보, 농촌경관, 지역사회유지 등 공익적, 경제적 가치 유지를 위해 직접지불제도를 통해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2012년 한국의 직접지불제 예산은 1조4948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공익형 직접지불제는 친환경농업 직접지불제 506억원, 조건불리지역 직접지불제 436억원, 경관보전 직접지불제 76억원 등 총 1018억원으로, 한국의 공익형 직접지불금은 스위스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때문에 공익형 직접지불금 비중을 확대하고 생산에 기반을 둔 직접지불제를 감소시킨 스위스의 직접지불제를 강화하고 곡물자급률 향상을 위해 밀, 보리, 콩 재배에 대한 직접지불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접지불제의 내용과 예산을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증진을 위해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8월 13일 취임사에서 “직접지불제를 공익형으로 전면 개편하겠다”며 “농업인에게 생태·환경보전의 역할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한편, 소규모 농가에게 더 많은 직불금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현재 운영 중인 다양한 직불제의 성과와 보완점을 검토하고 기초소득보장제, 농민수당 등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연말까지 대안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전농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북지역 농가는 9만8949가구로 농가당 월 2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할 경우 약 2374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올해 전북 본 예산 6조5685억원의 3.6%가량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하면 지자체의 부담을 줄이면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전농 김기형 사무총장은 “지자체 차원에서 농민수당을 검토하고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나 예산상의 문제가 있으니 중앙정부에서 나서야 한다”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함께 분담한다면 농민에게 지원되는 금액은 늘어나고 지자체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농 광주전남연맹 이무진 정책위원장은 “해남군의회에서 조례를 만드는 과정에 증액 필요성이 제기돼 논의가 되고 있다”며 “다만 전국에서 농민 인구가 가장 많은 해남이 월 5만원씩 지원한다 해도 100억원 정도가 필요해 군에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의회나 공청회를 통해 논의가 되면 현재 예고된 5만원보다는 증액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도에서 각 10만원, 중앙정부에서 20만원 총 40만원을 제안했다”며 “농민수당은 농민들이 농산물과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더 증진시키고 국민들 입장에서는 더 질 좋은 가치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에서 농민수당 도입이 활발히 이뤄지는 만큼 중앙정부도 이에 발맞춰 농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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