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사고가 행동을 지배한다.

위의 글은 지성사의 고전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필자가 다니는 수영장 강사 선생님의 메신저 자기소개란에 적힌 글이다. 강사 선생님의 저 자기소개가 필자에게는 매우 재미있었다. 몸을 다듬는 것을 가르쳐주는 수영강사 선생님의 자기소개란에는 행동이 사고의 지배를 받는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사고가 행동을 지배할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사고”라는 단어를 “마음”으로, “행동”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바꿔보자.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라는 구절로 바뀔 것이다. 이 문장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와 반대되는 문장인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어구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어구는 로마 제정기에 유베날리스가 자신의 풍자시 10편에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경구를 사용해 로마인들이 신체의 강건함만을 추구하고 정신적인 단련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한도령,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국웰니스학회지』, 제9권 2호, 한국웰니스학회, 2014.) 로마 당시까지 신체만을 단련하는 것은 비판받을 행동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은 인간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논의할 때 가장 기초적인 구분법이 된다.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은 필자와 함께 진행했던 팟캐스트인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그 근거로 “몸”과 “마음”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음운적 요소를 들었다. 전우용 선생에 따르면 입술과 입술을 맞대면서 발음하는 순음(脣音)은 인간만이 낼 수 있는 발음이며, 가장 기초적인 발음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기가 처음 배우는 단어가 “맘마”, “엄마”, “아빠” 등이며, 해당되는 의미의 다른 나라 글자의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몸과 맘(마음의 줄임말. 예를 들어 ‘내 맘대로 할꺼야!’에서의 그 “맘”이다.)은 순음으로 발음되기 때문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이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고민하는 것도 인간의 원초적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사고방식과 상상력을 가장 잘 담고 표현하는 것이 종교라는 전제 아래, 종교에서 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아보는 것은 몸과 마음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아보는 시작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불교에서는 몸을 껍데기나 허물, 심지어 장애물로 보았다. 즉 사라지면 아무 의미 없는 것, 좀 더 나은 것으로 바뀌면 벗겨져서 사라질 것, 궁극의 행복에 접어들기 위한 방해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석가모니는 해탈을 위한 수련의 과정에서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선정(禪定)에 접어들기 전에 극단적인 고행을 시도했었다. 또한 예수의 경우에도 본격적으로 신의 독생자임을 밝히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지냈는데, 이 때 했던 것이 바로 “단식”이었다. 이러한 모든 모습들은 마음의 궁극의 상태로 가기 위해 몸을 가볍게 여기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불교와 기독교에서 몸보다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중요한 표준이 될 것이다.

유교에서 몸에 대해 다룬 단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대학(大學)』의 구절일 것이다. 이 구절만 보면 집안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하기 위해서 몸을 닦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앞에 등장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이라는 구절은 생략되기 일쑤다. 격물치지는 사물이나 현상의 각각의 이치를 아는 것에 이른다는 것이고, 성의정심은 이렇게 알게 된 이치의 의미를 마음에 바르게 새긴다는 뜻이다. 즉 몸을 닦기 이전에 세상의 이치와 그 의미를 마음속에 잘 두고 난 이후에 그것을 담는 그릇이 몸을 닦아야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도 없이 많이 생긴 헬스클럽과 성형외과를 생각하게 된다. 몸과 얼굴이 멋있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그런데 “멋있거나 아름다운 몸”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속에 마음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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