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첫 베이비박스 설치한 이종락 박사
2009년 문 연 난곡동 베이비박스…1490명 거쳐가
미혼모 아이 비중 가장 커…혼외 자녀 증가 추세
베이비박스 아동 유기 조장? 근거 없는 주장일 뿐
입양특례법 개정 시행 후 베이비박스 아이 늘어
UN 산하 베이비박스 세계 협력기구 만들고 싶어

이종락 목사 ⓒ투데이신문
이종락 목사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딩동’ 벨소리가 울리면 평화롭던 교회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교회 한편에 마련돼 있는 박스의 문을 열면 핏기도 채 가시지 않은 아기 천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작은 박스 안에 놓인 아이들은 그곳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양육이 어려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기들을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한 ‘베이비박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2009년 이종락(65) 목사가 국내 최초로 설치한 이 베이비박스에는 한 달에 많게는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이 목사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베이비박스 설치를 결심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바깥에 버려져 죽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런 안타까운 얘기들이 신문이나 뉴스에 한 번 나오고 묻혀버리더라고요. 아이들이 그렇게 버려지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교회 앞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살리자는 마음이었는데 시야가 넓어지고 귀가 열리다 보니 우리나라에 버려지는 아이가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죠. 그러던 중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를 접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무방비로 버려지는 게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구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고 용기 내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게 됐죠. 그게 2009년 12월입니다. 고민을 시작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난곡동 베이비박스 <사진 제공 = 주사랑공동체>

처음에는 인큐베이터를 가져다가 아이를 받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한 끝에 가로 60cm, 세로 45cm, 높이 70cm 크기로 양면 모두에 문이 달린 지금의 베이비박스를 고안해냈습니다. 부모가 바깥에서 문을 열어 아기를 넣으면 ‘딩동’ 벨소리가 울리고 반대쪽 문을 열어 아이를 구조할 수 있습니다. 베이비박스 안은 아이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따뜻하게 유지됩니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이가 들어왔다는 벨소리가 울리면 한 사람은 아이를 보호하고 한 사람은 밖으로 나가 부모를 만나러 나갑니다. 부모와의 만남이 성공하면 우선 마음을 안정시킨 후 다시 아이가 부모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설득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아이와 부모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도움을 줍니다. 부모와 떨어지게 된 아이들은 우선 112에 신고합니다. 신고를 접수하고 지구대가 방문하고 나면 3~4일 후 구청에서 찾아와 아이들을 데려갑니다.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장애가 있는 아이는 장애인 시설로, 장애가 없는 아이는 영아일시보호소에서 머물다 자리가 생기는 보육원으로 보내집니다.”

미혼모 아이를 비롯해 외국인노동자 아이, 외도로 태어난 아이까지 베이비박스를 찾아온 저마다의 사연도 다양합니다.

“초창기에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55~60% 정도 차지했어요. 지금도 미혼 부모의 비중이 가장 높지만 혼외 자녀 비중도 19%로 늘고 있는 추세에요. 또 장애가 있는 아이의 수도 많이 줄었습니다. 산전검사를 통해 장애 판명이 나면 낙태가 가능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외에도 외국인노동자 아이,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생긴 아이 등도 있습니다.”

이 목사는 자신의 품을 거쳐 간 수많은 아이 한 명 한 명 모두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아이야 많죠. 그중에서도 엄마가 산속에서 구덩이를 파서 홀로 출산해 태어난 아이가 있어요. 엄마에게 ‘왜 구덩이를 팠느냐’고 물으니 아이를 낳자마자 파묻으려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출산 후 묻기 위해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아이를 천에 돌돌 말아 싸서 베이비박스를 찾은 거예요.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팠던지 몰라요. 또 아이를 죽이려고 목을 눌렀는데 죽지를 않아서 데려왔다던가, 3층 높이에서 아이를 던지고 자신도 투신자살하려고 했다던가, 말하자면 끝도 없어요.”

이종락 목사 ⓒ투데이신문
이종락 목사 ⓒ투데이신문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무조건 거두기보다는 부모를 설득해 같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가 상담을 받고 아이를 데려가는 부모도 30% 정도 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경우가 많아요. 쌀이나 기저귀, 분유, 옷, 장난감 등 물품과 생활비 명목으로 한 달에 20만원씩 지원하는 데 최장기간은 3년입니다. 한 달에 62~63가정을 돕고 있어요.”

그동안 베이비박스를 통해 구조된 아이들은 이제까지 1490명(2018년 10월 24일 기준)에 달합니다. 이 목사는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이 개정 시행된 이후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아이가 훨씬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에서는 신생아 출생신고화를 의무로 규정합니다. 때문에 출생신고가 돼있지 않으면 입양 허가가 사실상 어렵다고 합니다. 양육이 힘들어 아이를 입양 보내려는 부모, 특히 미혼 부모 입장에서는 출생신고로 인해 친자관계가 기록으로 남는 게 꺼려질 테고, 어쩔 수 없이 흔적이 남지 않고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베이비박스를 택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 목사의 설명입니다.

“현재까지 베이비박스를 통해 구조된 아이가 1490명입니다. 오늘(지난 24일) 아침에도 태어난 지 한시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아이가 탯줄을 단 채 들어왔어요. 베이비박스 설치 초기에는 한 달에 2~3명 정도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입양특례법 개정 시행 이후 한 달에 많게는 28~30명 정도 들어와요. 9배 정도가 늘어났죠. 출생신고가 돼있어야만 보육원이나 입양기관에 맡길 수 있게 되다 보니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는 낙태 아니면 유기, 인신매매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래도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베이비박스다 보니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종락 목사 ⓒ투데이신문
이종락 목사 ⓒ투데이신문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위기임신에서부터 출산까지 익명으로 완전하게 보호하고, 친부모가 가명을 통해 출생신고가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외에도 아이와 상대를 버린 미혼 부모를 추적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월급차압 등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 상담기관에 비밀출산 의사를 전하면 본인의 신원을 밝힌 임산부에 한해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비밀출산을 할 수 있는 등을 규정한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비밀출산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비밀출산제는 이미 프랑스, 독일, 체코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친부모를 알 권리’를 박탈시킨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반박합니다.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어떤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인데 베이비박스가 있다고 갖다 버리겠어요. 버려지지 않을 아이들도 베이비박스 때문에 버려진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만든 장본인이지만 결국은 베이비박스가 사라져야 좋은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난곡동 이외에 베이비박스를 더 설치할 생각은 없어요. 베이비박스가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살리고 존중하는 법이 존재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죠. 사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곳에서 버려지는 아이가 많기 때문에 그런 국가에는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국가들끼리 모여 나눈 얘기가 UN(유엔) 산하의 베이비박스 세계 협력기구를 만들자는 거였어요. 베이비박스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는 국가를 돕자는 취지죠.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종락 목사 <사진 제공 =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NPO연대가 베이비박스가 아동인권을 침해한다는 등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유엔 측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죠.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위한 안전장치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베이비박스에 담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 목사의 마음만큼은 곡해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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