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성집단 내부고발이 ‘남페미’ 역할”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성집단 내부고발이 ‘남페미’ 역할”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8.10.27 0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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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페미니즘 독서모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곰탕집 성추행’ 맞불시위, 꽃뱀몰이 등 2차 가해 대응 나서
페미니즘 발화권력 독점 우려…남성 상대 페미니즘 말해야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오는 27일 서울 혜화역에서 개최하는 ‘2차가해 규탄시위’ 포스터. 사진제공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27일 서울 혜화역에서 개최하는 ‘2차가해 규탄시위’ 포스터 <사진제공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9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지난해 11월 대전의 한 음식점에서 남성이 다른 여성 손님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원자는 현장의 CCTV영상을 첨부해 ‘신발장에 가려 신체접촉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며 명백한 증거도 없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3만587명의 동의를 얻었다.

27일 서울 혜화역에서 이 사건을 두고 ‘맞불집회’가 예고돼 있다.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라는 단체는 사법부가 ‘유죄추정’을 했다며 ‘1차 유죄추정 규탄시위’를 열 계획이다. 반면 페미니즘 독서모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은 당당위 측의 시위를 ‘2차 가해’로 규정하고 맞은편에서 반대 집회를 연다.

남함페는 지난해 10월 남성들의 페미니즘 독서토론모임으로 시작돼 현재 남성 8명, 여성 4명이 참여하는 단체다. 이들은 독서토론뿐 아니라 세미나를 비롯해 반(反)사이버성폭력 스티커를 배포하는 등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페미니즘을 알릴 계획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남함페 남성회원 ‘회색세포’, ‘OJ’, ‘페아나로’와 여성회원 ‘은결’을 만나 예고된 맞불집회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9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지난 9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당당위 집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Q. 27일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위하여(당당위)’의 ‘1차 유죄추정 규탄시위’에 대응해 맞불집회를 연다. 맞불집회를 계획한 이유는.

은결: 27일 당일 당당위 측 집회에 몇 명이나 참여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집회밖에 열리지 않는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뿐 아니라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상심이 클 거라고 생각했다. ‘유죄추정 규탄시위’라고는 했지만 당당위 카페를 들어가 게시글을 보면 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비난하고 있다.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했다. 남함페 운영진에는 남성들이 훨씬 많다. 만일 여성들이 맞불집회를 연다고 했다면 성별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지만 남성들이 함께 맞불집회를 연다면 당당위가 틀렸다는 것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색세포: ‘남성이 싼 똥은 남성이 치우자’는 마음으로 나서게 됐다.(웃음)

페아나로: 성범죄만 유독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가 발생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꽃뱀몰이가 발생한다. 이번 사건도 피해자가 합의금을 요구한 적도 없는데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헛소문을 만들어내고 꽃뱀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에 당당위 측의 집회 자체를 2차 가해라고 판단하고 맞불집회를 열게 됐다.

Q. 당당위는 1만5000명 규모의 집회를 신고했다. 양 측 집회 참여도가 높을 것으로 보는지.

회색세포: 우리는 당당위가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하고 운영을 하는지 모르기에 당당위 측 집회에 몇 명이 참여할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니 1만5000명으로 신고하지 않았겠나. 우리는 2000명으로 신고했는데, 그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와주신다면 좋겠다.

Q. 남성들이 젠더이슈로 집회를 여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

은결: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매번 무산되거나 10명 아니면 5명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남성혐오에 반대한다’는 추상적인, 말도 안 되는 주제를 갖고 나왔다. 그들이 말하는 ‘남성혐오’는 그저 온라인상에서 기분이 나쁜 정도의 일이다. 반면 컴퓨터, 핸드폰을 껐을 때 펼쳐지는 세상은 여성혐오가 일상인 곳이다. 그들은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시위에 나올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참여도가 높지 않았던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당당위가 홍보하는 방식은 이번 사건 가해자의 주장으로 픽션을 만들어서 “만일 당신이 ‘실수로’ 여성의 신체와 접촉했는데도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면 남성들이 자신의 일로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전 집회들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회원 ‘OJ’, ‘은결’, ‘회색세포’, ‘페아나로’ ⓒ투데이신문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회원 ‘OJ’, ‘은결’, ‘회색세포’, ‘페아나로’ ⓒ투데이신문

온라인·언론 2차 가해도 심각

Q. 남함페가 집회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회색세포: 말 그대로 ‘맞불집회’이니 당당위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보면 된다. 당당위 측 집회는 ‘유죄추정 규탄’인데, 우리는 오히려 이번 판결이 굉장히 잘 된 거라고 본다. 이전까지의 성범죄 판례들을 보면 형량이 매우 약하게 나와서 사람들이 이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몰랐던 거지, 이번 판결이 법에 어긋난 형량도 아니었다.

또 꽃뱀이라는 말을 하지만 이 사건은 발생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재판도 4차례 정도 있었는데 이에 소요되는 시간이나 비용 등을 생각한다면 절대 꽃뱀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이미 유죄판결이 났는데도 ‘판결이 틀렸다’고 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OJ: 신체접촉에 의한 성추행은 거의 증거가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성추행사건치고는 증거가 많은데도 ‘유죄추정’, ‘꽃뱀’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전의 성추행 사건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은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 특히 기혼여성들이 댓글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했다. 이 사건이 공론화됐을 때 그들이 항상 말하는 것은 ‘피해여성의 말만 들을 게 아니라 가해 남성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인데 정작 그들은 가해 남성의 말만 듣고 이 난리를 친다. 당당위 집회 자체가 2차 가해이긴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공유하는 가치관들이 모두 2차 가해다. 

페아나로: CCTV를 토대로 정황을 분석해봤을 때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된 반면 가해자의 진술은 번복됐다. 재판부는 이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전까지 성범죄는 가볍게 처분된 사건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에만 ‘부당하다’고 나서는 것은 이전의 처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Q. 청와대는 이 청원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회색세포: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군복무 같은 다른 젠더이슈 청원은 입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 이번 사건은 청와대나 국회가 아닌 완전히 사법부의 영역이다. 오히려 많은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 ‘삼권분립에 맞지 않는다’는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는 일이었는데 4분여를 들여 설명했다. 청와대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청원이 어떻게 30만명을 넘었나’하고 놀라지 않았을까.

은결: 답변을 거부한다며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으라’는 재청원도 올라왔더라.

페아나로: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낙태, 차별금지법 관련 청원에 청와대가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놔 불만이 있었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들이 난리를 피우진 않았다. 이들은 ‘무죄 판결을 받도록 하겠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 한은 계속 지금처럼 할 거라고 본다.

Q. 지난 14일 시작된 2차 가해 형사처벌 청원은 약 2만1956명(26일 오후 4시 기준)이 참여한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2차 가해에 대해 말한다면.

회색세포: 이번 사건에 국한하기보다 다른 성범죄까지 넓혀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OJ: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다른 사건이긴 하지만 얼마 전 발생한 ‘최종범 사건’도 피해자인 구모씨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구글 검색 1위에 올라갔다. 심지어 사건 관련 검색이 아니라 동영상 검색이었다.

페아나로: 최종범 사건과 관련해 말하자면, 온라인상에서 ‘이 사건에서 누가 잘못했든 구씨에게는 이미지 실추 등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봐도 (물론 알려지기 전에도 그랬지만) 전혀 문제될 게 없지 않나. 구씨가 잘못한 것도 없고 피해를 받았을 뿐인데 이로 인해 이미지 실추가 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은결: 언론의 2차 가해도 심각하다.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고 피해자가 당한 피해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어떤 부위를 어떻게 맞았고, 어떤 식으로 영상이 찍혔다는 둥 마치 글로 포르노를 만드는 것 같다. 최종범 사건 때도 처음엔 성범죄 피해자의 이름을 기사 제목으로 올리고 가해자의 얼굴은 가리면서 피해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람들이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 성범죄가 아닌 사건에는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하면서 성범죄 사건에만 피해자의 말이 거짓일 거라는 전제를 깔고 가해자를 방어할 증거와 논리를 찾는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쉽게 나서지 못한다. 미투운동이 시작됐을 때도 ‘당당하면 얼굴 까고 나와라’라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나섰지만 돌아오는 건 외모평가와 성희롱이었다.

OJ: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더라도 방관하는 것 역시 2차가해다. 예를 들어 효도르와 일반인이 싸울 때 그걸 가만히 두는 게 중립은 아니지 않나. 최소한 뜯어말리고 타이를 수 있어야 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 저울이 기울어진 상황에서 중립은 성립하지 않는다.

Q. 맞불집회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반응은 어떤가. 이번 맞불집회에 대해 시민들의 후원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회색세포: 사실 페미니즘에 있어 남성이 좋은 위치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게 반응을 해주셔서 놀라고 있다.

은결: 만일 이 집회를 여성이 주축인 단체에서 주최했다면 남성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을 텐데, 그 경우보다 비난이 적은 것 같다. 일단 여성혐오적인 욕은 싹 들어가더라. 그런데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하니까 ‘배신자’라는 말이 많더라. 이걸 보고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또 여성들도 많이 응원해주신다. 다만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의견이 많이 갈리지 않나. 우리가 남성 페미니스트(남페미)라는 타이틀로 나오다 보니 여성들의 발언권을 뺏는 게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당위 측의 주장에 반대하는 남성도 있다’,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함페에 페미니스트분들이 해주시는 비판은 달게 듣고 겸허히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

사진제공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사진제공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페미, ‘강약약강’ 이용해 페미니즘 말해야

Q. 남성들 사이에서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 같은데.

회색세포: 남성들이 왜 남페미에게 배신자라고 부르는지가 흥미로운데, 배신자라는 건 우리가 무언가를 배신했다고 생각해 한 말일 텐데, 그게 무엇인가 보면 ‘남성사회’다. 그들도 수천년 동안 누려온 남성권력과 사회의 암묵적인 남성위주의 룰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배신자가 늘어나면서 여기에 금이 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오히려 배신자라는 말을 들으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라고 확신하게 된다.

페아나로: 남페미라고 나서다 보니 주목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안티페미니즘 쪽에서는 ‘인기 얻으려고 페미니즘 한다’는 등의 비난을 한다. 사실 이런 비난은 저급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잠재적 연애대상’으로만 취급한다는 게 드러나는 것이다. 남성뿐 아니라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의심하는 눈초리가 있다.

OJ: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남페미면 재기하라’는 말들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당사자성이 없다 보니 페미니즘에 100% 공감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남페미 대견하다’는 식의 말은 듣기 좀 거북하다. 차라리 ‘재기해’라는 말이 마음 편하다. 그래서 ‘남페미면 재기하라’는 말을 들어도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긴다.

회색세포: 남페미를 특별하게 보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 권력을 버리려고 하는 운동이 페미니즘인데, 그걸 통해서 다시 권력을 얻으려면 뭐하러 페미니즘 운동을 하겠나.

은결: 배신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방관하고 있다는 증거고, ‘남페미면 재기해’라는 말은 나한테는 전혀 타격이 없지만(웃음), 내 생각에는 ‘올려치기’를 주의하자는 맥락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SNS를 보면 설거지나 요리, 빨래 등 집안일을 조금만 해도 ‘멋있다’, ‘개념남이다’, ‘가정적이다’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회색세포: 왜 ‘재기하라’고 하는지도 이해가 가는 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이라고 해도 남성권력을 다 내려놓지 못하지 않나. 이건 모든 남성에게 통용되는 말인데, 남페미라면 ‘재기해’라는 표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재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웃음), 만일 나 한 명이 재기해서 세상이 성평등하게 바뀐다면 기꺼이 하겠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 성평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생각해보면 재기하는 것보다는 남성사회의 배신자를 늘리고 내부고발자로서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다면.

페아나로: 군복무 시절 동기 한 명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서 대화를 많이 했다. 또 친구들이 페이스북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거나 공유해 찾아보게 됐다. 그러다가 남함페 활동을 하게 됐다.

OJ: 페아나로와 군대 동기인데, 그전까지는 젠더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도 페아나로가 말한 그 친구와 계속 얘기를 하면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당사자성이 없다 보니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군복무 중 휴가 때문에 간부와 갈등이 있었다. 나는 규정 내에서 휴가를 쓰려고 그 간부가 “그건 네 사정이지”라고 말하더라. 그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휴가를 못 나가도 전역은 제때 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화가 많이 났다. 계급의 차이로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 성차별을 이해하게 됐다.

또 해외스포츠를 많이 보는데, 여전히 흑인 선수들에게 바나나를 던진다거나 하는 인종차별이 여전히 극심하더라. 만일 내가 유럽 같은 곳에 가면 나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할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와 연결해 생각해보니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회색세포: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나와 항상 사회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여성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카톡 상태메시지가 ‘여성혐오를 혐오합니다’였다. 이 친구와 얘기하면서 한 번도 여성혐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서 ‘여성혐오가 뭐냐’고 물었다. 그 친구의 설명을 듣고 나서부터 그 친구가 추천하는 글들을 읽은 것이 시작이었다.

은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그저 ‘여성주의’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문제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불쾌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여성혐오, 페미니즘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여고였음에도 페미니즘이나 여성혐오를 말하는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들 똑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걸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묶지 못했을 뿐이다.

대학 입학 후에 단체 톡방에서 얘기를 하는데, 그때 인권 가이드라인 같은 걸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남성 선배가 가이드라인에 대해 여성의 관점에서 단어 하나까지 세세하게 피드백해주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 페미니즘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깨달은 건 대학 입학 후였다. 아무래도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이 있으니 그 후 페미니즘을 빠르게 흡수하게 됐다.

Q. 페미니즘을 말하기 어렵거나 부담되지 않는지.

페아나로: 인간관계에서 불편할 때가 있긴 하다.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있는데, 내가 페이스북에서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걸 보고 불편해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 나는 따돌리기도 한다. 또 새로 사람을 만날 때 친해지다 보면 젠더이슈 얘기가 나올 때가 있다. 그때 ‘페미니즘 얘기를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남성이 겪는 것은 친구관계에서의 불편 정도뿐이다.

회색세포: 나는 페미니즘 관련 포스팅을 계속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더라. 그래서 그 친구들과는 아예 얘기를 하지 않는다. 솔직히 남페미로서 페미니즘을 말할 때 불편함은 없다. 흔히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이라고 하듯, 페미니즘 관련 얘기도 남성이 하면 욕먹을 일이 없다. 또 여성들에게 ‘남자가 무슨 페미니스트냐’라는 말을 들어도, 여성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혔을 때 마주하는 불편과 남성이 겪는 불편은 천지차이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할 수 없다.

OJ: 남페미는 별로 불편할 게 없다.

은결: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티를 내고 다닐 수 있는 게 아직 학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직장생활을 한다면 이렇게까지 티내고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밥줄이 걸린 문제 아닌가.

하지만 의도적으로 페미니스트라는 티를 내려고 한다. 나도 선배들이 페미니즘을 당당하게 말했기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안타까운 건 내가 아끼던 친구가 혐오발언을 했을 때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슬쩍 말을 꺼내 보거나 페미니즘을 소개할 수 있는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렇게 하면 대화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절연한다. 그 정도의 공감능력도 없다면 내게 도움이 되는 친구들은 아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회원 ‘OJ’, ‘은결’, ‘회색세포’, ‘페아나로’ ⓒ투데이신문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회원 ‘OJ’, ‘은결’, ‘회색세포’, ‘페아나로’ ⓒ투데이신문

‘남페미’ 가시화로 가부장제 부숴야

Q.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은 뭐라고 보는가.

회색세포: 나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있던 게 아니라 아예 모르고 있다가 받아들이게 됐다. 내가 친구에게 페미니즘을 배운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르쳐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발화권력이라는 게, 똑같은 말을 해도 남성이 하느냐 여성이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부분에서는 남페미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Q.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페아나로: 페미니즘 이슈에서 항상 논쟁이 되는 군대 얘기를 하자면, 물론 군대에서 고생은 하지만, 그것이 여성 객체화·상품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군대 가는 것이 억울할 수는 있지만, 여성들이 군대에 보내는 것이 아니지 않나. 또 여군·여경들에게 ‘체력도 약한데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여성들도 군대 가라’고 하는 건 모순이지 않나.

회색세포: ‘뷔페미니즘’이라며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챙기려 한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는데, 군대를 갔다 와야 ‘인권’이 생기는 거라면 ‘군권’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나, 아직 군대를 안 갔다 온 나는 아직 인권이 없는 것인가.

OJ: 세상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남자들도 물론 힘들지만, 그보다 더 힘들고 위험한 삶을 사는 것이 여성이다.

은결: 애초에 남성만 군대에 가도록 만든 것은 1등 시민의 자격이 남성에게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희생하는 것의 보상은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 더 타당하고 현실적이다.

Q.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본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OJ: 애초에 남성들이 먼저 남성을 성범죄자로 몰아갔다. ‘밤길 조심해’, ‘택시타면 차 번호 보내’, ‘남자는 다 늑대야’라는 등의 말로 다른 남성들을 성범죄자로 몰아 놓고서는 여성들이 ‘너도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그 남성들 중에 하나야’라고 하니까 ‘난 아니야’하고 화를 낸다. 자신만 쏙 빼놓고 말하는 것이다.

회색세포: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이 밤늦게 애인과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장면을 상상하겠나. 골목길 같은 곳에서 어떤 남성이 애인을 뒤따라가는 걸 상상하지 여성이 쫓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진 않지 않나. 성범죄 수치로만 따져도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페아나로: ‘남성의 성욕이 강한 것은 자연적이다’라고 말하면서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말에 반대하는 것도 모순이다.

은결: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여기는 게 여성의 입장에서 전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여성들도 주변의 남성들이 잠재적 성범죄자가 아님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자신을 ‘잠재적 성범죄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Not all men, but Yes all women’이라는 말이 있는데, 수많은 남성들 중 성범죄자는 소수겠지만, 당장 내 뒤를 따라오는 남성이 성범죄자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것이다. 또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말에 기분 나빠할 수 있는 것도 부러운 게, 나는 나를 잠재적 성범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건 굉장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자주 드는 비유가 있는데, 내 집 앞마당에 지뢰가 딱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한다. 성범죄자는 소수일 것이고, 여성들도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조심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Q. 각자가 생각하는 평등은.

회색세포: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성별을 가졌든, 장애가 있든 없든 그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남성이라고 이득을 보지 않고 여성이라고 차별받지 않으며 장애가 있다고 불편하지 않은 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페아나로: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장애인이든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은결: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평등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가 평등한 사회다.

Q.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회색세포: 페미니즘은 여러분을 잡아먹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대한 온도차가 왜 이렇게 큰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OJ: 인권이라는 건 호두파이가 아니다. 누가 가져간다고 해서 내 몫이 뺏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왜 자꾸 다른 사람마저도 깎아내리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페미니즘이 사회에 정착된다면 본인들도 남성다움의 족쇄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삶과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보디가드가 되지 말고 깨부수는 데 동참해준다면 좋겠다.

페아나로: 타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고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자신의 남성성이 공격당하는데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은 절대 잠재적인 연애대상이 아니다.

은결: 남페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번 시위에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많이 모여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도 있다는 것을 가시화하면 좋겠다. 그게 남페미가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