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배 의원, ‘재벌범죄 백서’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발간
관대한 처벌·관리, 재벌범죄 적용되는 특수한 문제점 지적
“불법행위 총수 취업·이사 제한 등 규제 실효적 방안 필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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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지금으로부터 30년전 이맘때쯤(1988년 10월 16일) 탈주범 지강헌이 서울 서대문구 북과좌동 한 가정집에서 일가족을 인진로 잡고 외친 말이다. 당시 지강헌은 빈곤한 생활을 이기지 못해 남의 집에서 556만원을 훔쳐 17년형을 선고 받았던 반면 공금 7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징역 7년에 벌금 2억원, 추징금 9억원을 선고 받았다. 이마저도 수감 2년 만에 대통령 특사로 사면 복권된다. 결국 이 차이에 대한 분노가 이 같은 말을 낳게 됐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치 권력자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크게 무뎌진 반면 자본가, 이른바 재벌 총수의 범죄에 대해서는 ‘재벌 총수는 죄를 지어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석방된다’는 이른바 ‘3·5법칙’이 여전히 통용되는 등 여전히 돈과 권력앞에 사법부가 관대하다는 비판이 이어져 오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지난 19일 발간한 ‘재벌범죄 백서’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따르면 최근 5년간 재벌 총수일가에 대한 재판 결과 여전히 상당수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진 것으로 집계됐다. 또 구속 수감 중에도 재판 진행과 무관한 ‘집사 변호사’의 잦은 접견 등 총수 일가에게 과도한 사법적 편의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백서에서는 지난 2013년 1월 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5년 9개월간 선고가 내려진 형사사건 중 재벌 총수 일가가 사건에 연루돼 금고형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정리했다.

분석대상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SK 최태원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증여세 포탈 등 경영비리 사건, 한진그룹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등이다.

‘3.5법칙’ 여전, 그나마 높아진 구속률

이들 재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채 의원은 재벌범죄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문제점들을 몇 가지 짚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재벌총수들의 범죄행위에 따른 재판 결과 이른바 ‘3.5법칙’으로 3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를 풀려나는 문제다.

현행법에서는 범죄이득액 규모가 50억원 이상인 경우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재벌 총수 일가의 범죄의 경우 50억원이 넘어 천문학적 수준에 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죄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백서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재벌범죄 분석대상 12개 대기업집단의 18명 총수 일가 중 형이 확정된 경우는 8명으로 나머지 10명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이 종료된 8명 중 실형이 선고돼 실제 구속수감 된 경우는 SK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등 3명뿐이고 나머지 5명은 1심 내지 항소심 결과에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구속수감 된 이력이 있는 경우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과 신영자 이사장, 한진 최은영 전 회장, 태광 이호진 전 회장, STX 강덕수 회장 등 6명이고 단 4명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결과적으로 여전히 ‘3‧5법칙’은 지켜지고 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용 부회장은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았고 최 전 부회장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신동빈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신영자 이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자료=채이배 의원실
자료=채이배 의원실

재판이 마무리된 한화 김승연 회장은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지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땅콩 회항’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미공개 이용 및 회사자금 유용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대법원 재판이 남아있지만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은 조현준 회장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았다.

태광 이호진 전 회장의 경우 2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이 선고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보석이 허락돼 7년여간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대법원의 파기환송심도 재차 돌려 보내져 불구속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채 의원은 분석대상 18명의 재벌 총수 일가 중 13명(72%)이 재판 중 또는 재판 결과 구속수감돼 과거와 달리 법원이 재벌에 대해서도 엄중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채 의원은 “2012년 이후 ‘3.5 공식’ 근절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를 명문화하는 법 개정은 아직 실현되지는 못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 요구로 재벌총수라 하더라도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 2013년 이후 재벌범죄 대부분은 구속재판 또는 실형이 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재벌범죄에서 총수 일가가 법정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실형이 선고돼 형기를 절반 이상 채운 것은 2013년 입소한 SK 최태원 회장이 최초 사례다. SK 최재원 부회장과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의 경우 형기의 3/4가량을 채운 뒤 가석방됐다. 한화 김승연과 한진 조현아 등 재판 중 구속수감 된 일수가 각각 140일 이상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현재 상고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삼성 이재용 또한 구속 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353일간 수감됐고 롯데 신동빈도 1심 선고로 법정 구속돼 233일간 구속재판을 받았다.

반면 상당한 범죄 혐의에도 불구하고 효성, 금호석유, 웅진의 총수 일가는 구속을 면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제한 없이 총수에 봉사하는 ‘집사변호사’

인신구속으로 인해 피의자 인권 보호와 방어권 보장 때문에 가족과 지인과 달리 변호인에 대한 저변은 횟수와 시간제한 없이 보장된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일부 권력자와 재벌 총수 일가 등 기업가들이 단순히 말동무를 해주거나 잔심부름을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집사변호사’ 문제도 지적됐다.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농단 사건 주요 인사의 특별면회 및 변호인 접견 현황’을 보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된 353일 동안 총 439회 변호인을 접견해 1일 평균 1.24회를 기록했고 롯데 신동빈 회장은 233일 동안 총 282회, 1일 평균 1.41회 접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인 접견 기록을 확인한 결과 이 부회장과 신 회장의 하루 최대 변호인 접견 회수는 각각 6회에 달했다. 특별면회 즉, 장소변경 접견도 각각 14회와 13회 가진 것으로 적시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0회, 안종범 전 수석이 6회인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과도한 변호인 접견은 이 부회장이나 신 회장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지난 2013년 이후 구속 수감된 총수 일가 변호인 접견 현황을 보면 SK 최재원 부회장은 1035일에 1467회, 롯데 신영자 이사장은 819일에 300회, 최은영 회장은 314일에 328회,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1088일 897회, 강덕수 546일 612회에 달했다. 최태원, 김승연, 조현아, 이재현, 이선애, 이호진 등은 자료가 없어 확인되지 않았다.

대부분 총수 일가가 구속수감 중 1일 평균 한 차례 이상 변호사를 접견했고 접견이 금지된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평균 접견 횟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서는 “재판 준비와 무관한 편의 제공이나 외부와의 연락 등을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반복적‧규칙적으로 변호인 접견을 하는 것은 공정한 형집행제도에 반한다”고 지적하며 “과도하게 변호인 접견권을 허용하는 것은 권리를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집사변호사’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료=채이배 의원실
자료=채이배 의원실

구속 중에도 총수는 이사직 유지

불구속 재판 중일 때는 물론이고 구속수감돼 재판을 받는 경우 이사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음이 명백하지만, 재벌 총수 일가의 경우 대부분 회사의 이사직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재벌범죄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353일간 구속됐던 이 부회장은 ‘경영 공백 우려’를 이유로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롯데 신동빈 회장도 1심 선고 후 법정구속 됐지만 롯데지주는 물론 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제과, 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음료, 롯데건설,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류션, 에프알앨코리아, JSC Lotte RUS 등 10개 계열사와 롯데문화재단 이사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신 회장의 경우 경영진도 비리 등 사유로 실형 선고받았을 때 사임하는 관례에 따라 일본 롯데홀딩스, 치바롯데마린즈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것과 달리 임기가 만료된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 국내 계열사 이사로는 재선임 되는 ‘이중 잣대’를 보였다고 백서는 지적했다.

2013년 이후 구속된 대부분 총수 일가는 자진해서 이사직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부분 회사로부터 막대한 보수까지 수령했다는 점도 꼬집었다.

채 의원은 “재벌 총수 일가가 범죄에 연루돼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경우 사회와 주주로부터 경영활동 사퇴 압박을 받는 게 일반적인데, 대부분 총수 일가는 그 요구를 따르는 것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 오히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이사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물리적으로 경영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임원이 스스로 물러나는 관행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규율로 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채 의원은 백서를 통해 경영진이 회사와 관련된 범죄로 처벌을 받는 경우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방안 검토, 유죄판결을 받은 자에 대해 임원의 결격사유로 규정하는 정관개정은 물론 재취업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규 제정이 필요하고 제안했다.

더욱이 현행법상 규정된 규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현행법상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가법)을 위반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경우 일정 기간 취업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가 지난 10년간 취업제한이나 허가 등 금지 대상 사실을 통보하거나 이를 위반한 사안에 대한 시정이나 제재를 요구한 것인 단 한 건도 없었고 재판 결과를 파악하고 관리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국정감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형 집행 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 중 취업제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점이나 공범이나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체 취업을 제한하고 있어 총수 일가의 경우 자신이 출자한 기업체나 그 기업체가 출자한 기업체는 취업이 제한되지 않는 등 규제 범위가 재벌 총수 일가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에 중대 경제범죄로 취업 제한되는 기업체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범죄자의 경영 참여에 대한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등 취업제한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채 의원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기에 앞서, 현행법상 존재하는 제도가 주무 부처의 방치로 사문화돼 있는 것을 정상화하는 것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현행 특경가법에 따른 취업제한 및 허가 등 금지제도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사를 경영에서 배제하기 위해 아무리 촘촘한 규제로 엮는다 하더라도 이를 집행할 기구의 의지가 없다면 별다른 소용이 없다”며 “이사 자격 제한 규제는 국회와 정부가 함께 실효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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